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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그 치마 속에 들어가고 싶다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 ① 아무송(Aamu Song)

선정적인 제목입니다. "이거 낚시 아냐?"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글을 보시면 분명히 ‘치마 속’에 들어가고 싶으실 겁니다.

며칠 전 머리를 하러 미용실에 갔다가 한 잡지를 보게 됐습니다. 여자들은 머리를 하는 데 은근히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패션잡지, 여성잡지를 봅니다. 여느 때처럼 화려하고 예쁜 옷과 액세서리에 정신을 빼앗긴 채 책장을 막 넘기고 있는데, 순간 눈이 번쩍 뜨이는 사진이 나타났습니다. 잡지 뒤쪽 한 페이지에 자그마하게 찍힌 사진이었는데, 시선을 확 끄는… 매력을 넘어 마력이 있는 듯한 작품 사진이었습니다.



치마폭이 어마어마하게 넓은 빨간 드레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나 나올법한 드레스 사진이었습니다.
이런 옷은 누가 입을까.

드레스를 입은 사람은 ‘앨리스’가 아닌 여가수였습니다. 그런데, 이 여가수의 드레스 치마 속으로 무려 2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파고들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여기서 뭐하는 걸까요.

이 빨간 드레스는 일종의 ‘공연장’입니다. 드레스 몸통 부분은 가수의 무대이고, 치맛자락은 관객석입니다. 말 그대로 치마폭에 폭 둘러싸여 공연을 감상하는 것입니다.

이 빨간 드레스 공연장의 진짜 이름은 ‘REDDRESS', 만든 사람은 한국 출신 디자이너 아무송(Aamu Song, 송희원-‘아무’는 우리말 ‘아무나’, '아무개' 할 때 그 ‘아무’라고 합니다)입니다. 아무송은 핀란드에서 디자인 공부를 하고, 현재 핀란드에서 활동 중입니다. 이 드레스는 대학원 졸업 작품으로 만든 건데, 2005년 독일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에서 첫 전시를 했고, 지금은 헬싱키디자인박물관이 영구 보관하고 있습니다.

레드 드레스는 높이만 3미터, 치마폭은 20미터, 무게는 1.5톤, 다 펼치려면 400평의 공간이 필요한 대형 작품입니다. 관객은 무려 238명 수용이 가능하니까, 공연장으로 쳐도 웬만한 소극장 규모입니다. 가수가 치마 안에 들어가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얼굴을 내밀면 무대에 선 것이고요. 관객들은 각자 치맛자락에 자리를 잡고 들어가면 입장 완료입니다.

아무리 좋은 공연장이라고 해도, 관객석 의자는 집에 놓은 소파나 침대만큼 편할 수는 없죠. 가끔씩 앉은키가 큰 사람이 앞에 앉으면 무대가 보이지 않아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야 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레드드레스 공연장에서는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앉아 있어도 되고, 누워도 되고, 연인끼리 손을 잡고 있어도 되고- 편안한 마음으로 가수의 노래를 들으면 됩니다. 위에서 연주자를 내려다보는 여느 공연장과 달리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기 때문에 시선에 방해가 되지도 않고요. 코만 골지 않으면 잠을 자더라도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공연장에 가서 공연을 본다는 것은 명연주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연주자와 한 공간에서 음악을 매개로 느낌을 공유한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일 것입니다. 반면 집에서 명반을 들으면 공연장의 열기나 분위기는 몸으로 느낄 수는 없지만,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편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고요. 이 레드 드레스 공연장은 이 두 가지 장점을 모두 갖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이 치마 속에 들어가고 싶지 않나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정말 사진을 보며 감탄에 감탄만 거듭하며 머리 손질이 다 끝날 때까지 페이지를 넘기지도 않고 이 사진만 한참 동안 들여다봤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아무송 디자이너의 다른 작품을 샅샅이 찾아봤습니다. 하나하나 찾을 때마다 기발함에 웃음과 감탄이 동시에 튀어나왔습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Dancing Shoes, Riding Pants, Hood Bag, Safety Skirt

누구나  ‘이 제품은 이랬으면 좋겠는데..’, ‘이건 이게 참 불편하네..’라는 모호한(?) 생각을 자주 합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그걸 어떻게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을지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죠. 아무송은 그 선을 한참 넘어 섰습니다.

그냥 단순히 기능만 좋아진 게 아니라, 디자인에 유머와 위트까지 덧입혔습니다. 저는 이런 예술가들을 볼 때면 "그 머릿속에 한 번 들어가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들하고 뭐가 달라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한 거죠. 아무송 매장이 핀란드 헬싱키에 있다는데, 헬싱키로라도 달려가야 할까요.

* 아무송 인터뷰와 REDDRESS 현지 영상 - 유튜브 http://youtu.be/YrApHtZda7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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