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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구글 회장의 한국 '예찬'이 씁쓸한 이유

유명인의 칭찬은 다 좋다?

[취재파일] 구글 회장의 한국 '예찬'이 씁쓸한 이유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이 지난 주 자신의 구글 플러스(Google +)계정에 사진 한 장을 올렸습니다. 구글 플러스에 있는 슈미트 회장의 계정에 가니 해당 사진이 있었습니다.

슈미트 회장이 게시한 이 사진은 강남 포스코센터 1층의 화장실에 붙어 있는 경구(警句)를 찍은 거라고 하는데요, 용무를 보면서 눈 앞의 경구에 주목한 슈미트 회장은 이 사진을 올리며 간단한 설명을 첨부했습니다. 대락 이런 내용입니다.

"이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 사무실에 붙어있던 문구다. 한국인들은 인상깊을 정도로 생산적인데, 그들은 50년대의 처절한 전쟁에서, 경제적 기적을 현실로 이끌어냈다."

슈미트 회장이 사진을 올린 뒤 지난 토요일 몇몇 언론에서 이 사진을 기사화했습니다. 기사는 슈미트 회장이 한국인의 생산성을 언급하며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선 한국인을 '극찬'했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습니다.

그런데 슈미트 회장의 '단상'의 근거가 된 이 글, 즉 "이기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이기기를 원하는 것은 중요하다"라는 격언은 포스코센터 1층 화장실을 관리하는 포스코 측에서 만든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미식축구 프로리그(NFL) 그린베이 패커스의 전설적인 감독 빈스 롬바르디(Vince Lombardi)가 남긴 격언입니다.

빈스 롬바르디는 1950년대 말에 그린베이 패커스의 감독으로 취임해서 만년 하위팀을 대대적으로 혁신해 명성을 쌓았고, 1966년 미국 풋볼리그(AFL)와 전미풋볼리그(NFL)가 통합된 뒤 1967년부터 열린 챔피언 결정전 '슈퍼볼' 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해 '명장'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프로리그 우승팀에게 주어지는 '슈퍼볼(Super Bowl)'을 아예 '빈스 롬바르디 컵'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런 이력으로 인해 롬바르디 감독은 스포츠 리더십에 대한 수많은 콘텐츠에서도 단골로 언급되는 인물입니다. 결국 슈미트 회장이 한국인의 '생산성'을 주목하게 한 계기가 된 문장은 원래 미국의 유명한 격언이라는 얘기입니다.

포스코 측에서도 화장실에 게시할 격언을 고르면서 출처를 표시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해당 문구를 구글에서 그대로 검색하면 격언을 모아둔 사이트 여러 곳이 결과로 나옵니다.

물론 포스코도 설마 슈미트 회장이 회사 1층 화장실에서 본 문구를 찍어서 SNS에 올리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겠죠. 슈미트 회장이 개인적으로 이 격언의 출처를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슈미트 회장의 게시물에도 출처에 대한 언급이 한 마디도 없는 것에 대해 한 국내 네티즌은 '구글 회장도 그 문구의 출처를 몰랐던 것 같은데, 구글 검색 한 번만 했더라면...'하면서 취재를 통해 출처를 제대로 언급하지 않은 국내 언론의 기사 생산 방식을 비웃기도 했습니다.

어떤 식으로 슈미트 회장의 SNS 포스팅이 기사화됐는지, 한 포털 사이트에서 찾아봤습니다. 슈미트 회장이 찍어 올린 이 문구가 빈스 롬바르디 감독이 남긴 격언이라는 언급은 없었습니다.

사실 이런 기사의 유형은 이미 우리에게는 익숙한 것입니다.

관심있는 분이라면 느끼셨겠지만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종종 공식 석상에서 한국의 '경쟁적인 교육 시스템'을 배우자고 열변을 토하는 것이 기사화되곤 하죠. 물론 미국의 유력 인사, 심지어 대통령이 한국을 특별히 언급한 것이 기사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 사람이 한국의 경우를 예로 들었을 때는 본인이 원하는 '특정한 반응'을 이끌어 내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다분합니다.

그걸 앞뒤 전후의 사정을 다 제치고 '저 큰 나라의 유명한 사람'이 '우리를 칭찬'했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면 결국 우리가 만들어 낸 시스템이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위험한 자만에 빠질 가능성이 큽니다. 또 그 자만은 '외국의 유명인'도 칭찬하는 시스템에 공공연하게 '반기'를 드는 사람들에 대한 무시와 비난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결국 우리 내부의 비판적 문제제기 능력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저도 언론에 종사하고 있지만, 우리 언론은 우리를 보는 '외부의 시각'에 지나치게 민감한 것 같습니다. 좋은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뭔가 발생하면 '이걸 남들은 어떻게 볼까?'에 대한 일종의 인정 욕구(혹은 인정에의 강박)가 일단 크게 작용하는 겁니다. 게다가 앞서 말씀드린대로, 때로는 이런 외부의 시각을 우리의 시각 앞에 둬 내부의 판단과 성찰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결국 남들이 칭찬하면 그제서야 안심하고, 남들이 비난하면 그제서야 분노하는 수동적 언론 문화가 아직도 만연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그 '남'이라는 존재가 대개 서구의 강대국임을 감안하면 어쩌면 우리 언론은 아직도 '언론적 사대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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