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두 장의 사진, 40년의 세월이 준 교훈은?

[취재파일] 두 장의 사진, 40년의 세월이 준 교훈은?

제가 몸담고 있는 SBS 보도국 뉴미디어부는 딱히 출입처가 없다고 생각하기가 쉬운데요, 사실은 어느 누구보다 방대한 출입처를 갖고 있습니다. 바로 인터넷과 SNS입니다.

오늘은 출입처를 돌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사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1967년 이전에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어느 공원의 사진입니다.

양 옆으로는 나무가 울창하게 푸르름을 드러내고 잘 정돈돼 있는 화단 옆으로 산책로가 널찍하게 조성돼 있습니다. 화단과 화단 사이에는 싱그러운 수초를 품고 있는 수로가 일직선으로 뻗어 있고, 멀리 수로를 가로지르는 하얀 색 다리도 보입니다. 자연스럽게 돋아나 있는 꽃과 풀 사이에 드리워진 나무그늘에는 벤치도 보이네요. 화면 앞쪽에는 한가롭게 휴식을 즐기며 미소짓고 있는 한 여성이 앉아 있습니다. 단정한 머리스타일의 이 여성은 옅은 옥색의 세련된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붉은 색 클러치로 한껏 멋을 냈습니다. 그 앞에 서서 무언가를 손에 들고 들여다보고 있는 여성은 짙은 감색 스커트와 하늘색 블라우스, 그리고 큰 선글라스를 착용했습니다. 풍성한 금발이 인상적입니다.

사진 속 장소는 어디일까요? 유럽이나 미국의 도시 속 공원일 것 같지만 실은 '아프가니스탄'입니다. 수도 카불의 패그만 공원(Paghman Garden)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사진을 한 번 보시죠.



듬성듬성 풀이 난 황량한 벌판입니다. 영어 설명이 붙어 있네요. 좌측부터 시멘트 구조물, 자갈길, 잔디, 다리, 물이라고 돼 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두 사진은 같은 곳, 즉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패그만 공원을 찍은 사진입니다.

꽃과 나무, 멋진 수로와 벤치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공원, 여성들이 세련된 차림으로 찾아와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던 공원이 이렇게 황량하고 삭막한 곳으로 변했습니다. 구글 이미지로 사진을 검색해 설명을 보니 두 사진 사이에는 40년이라는 세월이 가로놓여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난 40년 동안 대체 무엇이 이렇게 악독한 변화를 가져온 것일까요? 잠깐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위키트리 검색을 참고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았고, 냉전 이후에는 미·소 어느 진영과도 동맹을 맺지 않았습니다. 비록 북쪽에 소련이라는 강대국을 두고 있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중립적 지위를 고수하며 미·소 양측의 투자를 끌어들여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해 나갔습니다. 1960년대 말에는 수많은 여행자들이 새로 건설된 2차선 도로를 '히피 여행 경로'로 이용하며 오갔다고 하는데, 첫번째 사진이 촬영된 시기가 대략 그때 쯤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1979년 4월 정변을 통해 소련에 우호적인 정권이 들어서고, 이들이 종교의 자유와 토지제 개혁, 여성의 참정권 확대 등 사회주의 정책을 확대합니다. 이에 반기를 든 전통 이슬람 세력은 도시를 피해 지방으로 숨어들었고, 미국이 이들을 비밀리에 지원하면서 긴장이 고조됩니다.

결국 보다 못한 소련이 내정에 개입(서방에서는 '침공'이라고 합니다)하면서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이슬람 세력(무자히딘)과의 지리한 내전이 본격화됩니다. 1980년대 들어 소련 공산주의가 점차 힘을 잃어가면서 아프간에 개입했던 소련군도 1988년에 철수하고, 이에 따라 친소 정권도 몰락하지만 불행히도 평화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무자히딘 내부에도 노선과 지역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아프가니스탄 전역이 군벌 내전 상태에 빠져든 겁니다. 이 와중에 이슬람 분파 가운데 가장 완고하고 보수적인 원리주의 세력이 '탈레반(학생)'이라는 이름으로 세력을 키워, 결국 1996년에 수도 카불이 이들에 의해 장악됩니다.

내전에서 사실상 승기를 잡은 탈레반은 점령지역 내에서 폭압적인 공포 정치를 자행하며 정권을 불안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무자비하게 제거합니다. 그 이후의 역사는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죠. 탈레반이 급진적 테러세력인 '알 카에다'를 지원해서 결국 9.11사태로 분노한 미국의 보복을 자초하고, 결국 아프가니스탄 전역이 다시 포화에 휩싸이게 됩니다. 즉, 30년이 훌쩍 넘도록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매일 포성이 울리고, 땅이 뒤집어지고, 나무가 쓰러지고, 누군가는 피를 흘려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처음 보여드린 초록 가득한 공원의 사진이 더 마음에 사무칩니다. 원하는 옷을 마음껏 차려입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표현하며 한적한 공원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이 여성들의 웃음을, 행복을 무참하게 파괴할 수 있는 권리 따위는 애당초 누구에게도 없었을 겁니다. 사진에 찍힌 이후의 이 여성들의 삶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저로서는 도저히 알 방도가 없지만, 여성들이 잠시 머물렀던 이 공간이 40년 후에 어떤 모습이 됐는지를 감안하면, 그들의 삶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문제가 단지 멀고 먼 외국의 일일 뿐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나의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가능한 한 오래도록 보호하고, 나 뿐만 아니라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보다 바람직한 행복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 바로 정치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총과 칼과 쇠처럼 순식간에 모든 것을 망가뜨리는 무자비한 폭력이 아닌, 이상을 향한 의지와 실천의 힘…최근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로 엄청난 영향력을 갖게 된 김어준 씨의 베스트셀러 제목이 '닥치고 정치'인 것은, 그 표현의 거칠고 성근 표면을 차치하고라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넷을 통해 찾아간 아프가니스탄 여성 혁명 연합(RAWA) 홈페이지의 하위 페이지를 소개하면서 짧은 글을 마칠까 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고 있는 사진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rawa.org/temp/runews/rawagallery.php?mghash=dc96d38caecd6694eb17fc894bb73212&mggal=5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