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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2011년 대한민국 국회의 아이러니

[취재파일] 2011년 대한민국 국회의 아이러니
한미FTA 비준동의안을 국회에서 처리하는 모습, 여러 언론 보도와 많은 SNS를 통해서 많은 국민들이 보았습니다. 본회의장 안에 최루탄이 등장하면서 외신을 통해 세계 다른 나라 사람들도 많이 보게 됐습니다. 저는 그날 국회에 있었습니다. 한나라당의 본회의장 강행처리도 벌써 세 번째 목도했습니다.

지난해 12월의 예산안 강행처리 때 김무성 당시 원내대표가 직접 나서서 국회의장석을 밀고 들어가 탈환하던 모습. 여러 의원들이 압사 직전이었습니다. 그 전 해였죠, 2009년에는 크리스마스 때까지도, 민주당 의원들이 4대강 예산을 막아 내겠다며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했었는데, 크리스마스를 자축한다며 빨간 목도리를 두르고 앉아 밤을 지새고 있었죠. 한 여성의원은 초록색 터틀넥 스웨터에 빨간 목도리를 둘러 더욱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강행처리의 단상은 때로는 요란하기도 하고, 때로는 평온하기도 합니다.

                 


올해의 한미FTA 강행처리는 뭐니뭐니 해도, 펑 하고 퍼져 나가던 하얀 가루가 기억 속에 남을 것 같습니다. 김선동 민노당 의원이 눈을 감고 서서 최루탄을 견디던 모습과 눈물을 흘리며 본회의장을 하나둘씩 나오던 국회의원들의 모습.

그런데 며칠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날의 국회는 아이러니했습니다.

◆국회부의장은 "비공개" 국회의원들은 "생중계"

먼저, 본회의 비공개 결정입니다. 정의화 국회 부의장은 그 다급한 와중에도 한미FTA를 직권상정 하기 전에 본회의를 비공개로 돌리는 표결을 먼저 진행합니다. 본회의는 기본적으로 공개이기 때문에 회의를 비공개로 하려면 국회의원들의 표결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비공개 결정 때문에 한미FTA를 비준하는 역사적인 장면은 국회 CCTV 방송으로도 볼 수 없었고, 기자석으로 들어가서 볼 수도 없었습니다. 언론사의 카메라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기자석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민노당 당직자들로 추정되는 분들이 유리문을 부숴놓는 바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만, 정상적으로 취재를 했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요.

                   


정의화 부의장은 비공개 결정을 한 이유가, 공개를 해서 국민들이 다 보게 되고 언론사 카메라가 들어오면 야당 의원들이 더 몸싸움을 하는 경향이 있어 이를 막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부끄러운 모습을 전세계에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땠습니까? 그 안에 있던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아이패드로 벌어지는 장면을 생생히 촬영해 트위터에 올리고 페이스북에도 올리고 저희 기자들에게 제보도 해줬습니다. 국회법에 비공개라는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요즘같은 시대에는 있으나 마나한 제도였던 겁니다.

부끄럽다면, 부끄러운 일을 벌이지 않으면 될 일이지, 그걸 비공개로 한다고 해서 비공개가 되는 세상이 아니라는 걸 이번 일로 뼈저리게 느꼈기를 바랍니다.

◆ 최루탄 파편은 국회의원의 손에

또 한 가지는 김선동 의원이 던진 최루탄 파편의 행방입니다. 이 최루탄 파편을 찾아 수거한 사람은 한나라당의 차명진 의원이었습니다. 차명진 의원이 발언대 주변에서 파편을 찾아냈고 자신의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기자들은 차명진 의원의 회관 사무실에 가서 파편을 촬영했습니다. 일련번호가 있고 최루탄의 종류가 무엇이고 하는 것들이 한 국회의원의 증거 채집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저는 발생한 첫날에는 차명진 의원이 들고 있을 수 있지만, 다음날 쯤에는 국회 사무처의 경호 관련 부서나 가까운 경찰서에서 수거해가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아직 아무도 김선동 의원을 고발하지 않았으니 경찰서까지는 아니더라도 국회 경호과 쯤에는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다음 날에도 차명진 의원실에 있었습니다.

◆ 철통 보안도 뚫은 검은 가방

이번에 김선동 의원은 최루탄을 가방에 넣어서 본회의장 안으로 가져왔습니다. 원래 국회 본회의장은 검문검색을 한 뒤 통과해야하는 곳이고 평소에도 국회의원이라 할지라도 가방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 서류 파일 정도를 휴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평소에도 이 검문은 좀 허술했다고 합니다. 무심코 핸드백을 들고 들어가도 저지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사실 국회의원이 직접 하려고만 했다면 최루탄 보다 더 부피가 큰 것도 들고 들어갈 수 있었을 상황이었던 겁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회의원이라 할지라도 규정대로 검문검색을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국회사무처에서 그럽니다. 금뺏지를 달았더라도,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아마도 협조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국회의원을 못 믿나? 하는 어느 초선의원에게 선배의원들이 대대로 알려주겠지요, '응, 예전에 여기에 최루탄을 들고온 국회의원이 있었거든, 너 모르니?' 하고요.

이와 관련해 그날의 아이러니는, 강행처리를 위해 천여 명의 경찰이 국회를 둘러 싸고, 국회의 출입문들이 대부분 막히고, 야당 의원들도 들어가기 위해서 왜 막냐고 소리를 지르며 뚫고 들어가는 일도 있었는데, 기자들 취재를 위한 방청석까지 꽁꽁 잠궈놓았는데도 최루탄이 들어있는 가방은 유유히 본회의장으로 들어갔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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