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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미 FTA, 냉정하게 다시 한 번...

[취재파일] 한미 FTA, 냉정하게 다시 한 번...
'한미FTA 국회 비준 처리가 언제 어떤 형식으로 될 것인가? 혹은 결국 무산될 것인가?'를 두고 하루하루 다른 전망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최대한 합의처리를 하겠다는 여야 원내대표들의 의지와 강행처리로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면 기존의 정치권이 다같이 국민들에게 외면 당할 것이라는 우려가 합쳐져 국회 본회의는 아예 열리지도 않고 있습니다. 예정된 본회의를 개최할 경우, 한미FTA를 혹시 강행처리할지도 모른다는 야당의 경계심이 고조되기 때문에, 그런 불필요한 긴장 고조를 방지하려는 조치라고 합니다.

한미FTA라는 게 나라의 명운이 걸린 중차대한 일이라는 데는 동감합니다. 그러나 그 일 하나를 못할 바에야 본회의를 열어서 무엇하겠냐는 식으로 본회의를 아예 열지 않고 있는 것은 문제입니다. 오랜기간에 걸쳐 논의되고 상임위를 통과한 뒤 국회 본회의 처리를 기다리고 있는 다른 많은 법안은 찬밥신세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국회 일이라는 게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차근 차근', '꼼꼼히'와는 거리가 멀더군요. 아무리 수백 개의 법안이 산적해 있어도, 본회의 통과를 기다리는 법안이 얼마나 많이 있어도, 여야가 정치적으로 합일점에 이르는, 득과 실이 균형을 이루는 순간이 오면, 한꺼번에 휘리릭 처리됩니다. 제목만 나열된 법안을 보고, 자세한 사항은 단말기를 참조하시는지 어쩌시는지 표결은 일사천리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법안들이 쌓여 있어도 국회의원들은 걱정을 안 하는 걸까요?

그렇다면, 너무나 중요해서 여야가 '올인' 하고 있는 한미FTA 논의라도 국민들이 무릎을 칠만한 합의점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 내내 국회 내 분위기는 좀 다르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실시한 재협상으로 이익의 균형이 깨졌다며 조목조목 재재협상을 요구하던 야당도, 최대한 가능한 만큼 야당의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협상에 열심이던 여당도, 이제는 더이상 FTA 내용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습니다. 물론, 한나라당 원내지도부는 사실상 더 이상 야당이 요구할 것도 없을 만큼 합의 상태에 이른 것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민주당은 ISD 조항의 재협상 약속 등 추가 보완책들을 주장해온 상황이었습니다.

                      


외통위 점거가 길어지고 본회의가 무산되면서 논의는 여야가 FTA에 대해 제기된 이견들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보다는 여야가 어떻게 서로 상처주지 않으면서 처리할 명분을 만들 것인가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국회에 찾아와 여야 원내대표를 기다려 만나겠다는 소식이 전해진 11일 아침, 국회는 술렁였습니다. '대통령이 '뻗치기'를 하겠다는 것인가?'하는 말들이 오갔습니다. '뻗치기'는 기자들이 주로 쓰는 말인데, 취재원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나 중요한 사안의 발생을 최대한 빨리 알기 위해, 무작정, 하염없이 기다리는 취재 방식입니다. '뻗치기'를 하다 보면 기다리는 정성이 갸륵하여 인터뷰를 거부했던 사람들이 인터뷰에 응해 주기도 하지요.

11일 오전 민주당은 대통령을 만나지 않겠다고 통보를 했는데도 대통령이 오는 것에 대해서 '무언의 강행처리 재촉'이 아니냐며 반발했습니다.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국회에 오는 것은 대화가 아니라, 압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몇시간 만에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대통령이 국회에 직접 왔는데 만나지도 않겠다고 하는 것은 국가원수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민주당의 태도에 국민들이 마이너스 점수를 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졌습니다. 결국 APEC 회의를 마치고 대통령이 귀국한 뒤 15일 국회를 찾아오면 만나겠다는 절충안을 내놨고 국회의장과 협의해 청와대에 전달했습니다.

                      


청와대도 받아들였습니다. 혹시 대통령의 국회 방문이 '국회에 떼쓰기'로 비쳐질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고 합니다. 또 못 만난다고 했는데도 굳이 와서, 대통령이 이렇게 노력했는데도  야당이 만나주지도 않았다며 강행처리하려는 '명분 쌓기'로 인식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제 대통령의 국회 방문은 하와이 APEC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만난 뒤로 미뤄졌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미 대통령 간에 FTA에 대한 대화가 오갈 가능성이 높은 만큼, 대통령이 야당에서 요구하는 어떤 처리의 '명문'이 될만한 '말'을 선물로 가져올 수 있게 됐습니다. 예를 들어 'ISD 재협상'을 얼마든지 하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말을 이 대통령이 직접 전해준다면, 민주당도 움직일 여지가 생긴다는 게 정치권 인사들의 얘기입니다. 민주당이 최소한 한미FTA 비준동의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을 막지 않고, 표결에 참여해서 반대표라도 던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는 겁니다.

한미FTA라는 전통적 이념 대립의 주제를 놓고 여야가 몸싸움이 아닌 냉정한 표결로 대결할 수 있게 된다면, 이번 일은 상당히 상징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 일로 한국 국회의 대표적 이미지가 된 본회의장 점거와 국회의장석 쟁탈전이 그야 말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국회의 여야 의원들이 냉정을 되찾는 '그 날'이 온다면, 성급하게 비준안 처리부터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냉정함을 가지고,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는 같은 마음으로, 차근차근 한미FTA 발효에 앞서 더 필요한 조치는 없는지 머리를 맞대었으면 좋겠습니다. '떼쓰듯' 요구하고 '선심쓰듯' 수용하는 협상이 아니라 서로의 지혜를 구하는 협상을 다시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힘 자랑, 머릿수 자랑 국회'를 보다 더 완벽하게,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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