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마지막이 된 챔피언의 레이스

15중 추돌 대참사를 돌아보며

[취재파일] 마지막이 된 챔피언의 레이스

얼마 전 (14일~16일) 전남 영암에서 포뮬러원, F1 코리아 그랑프리가 열렸습니다. 스피드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이렇게 눈이 즐거운 스포츠가 또 없겠죠?
 
오늘은 미국판  F1이라고 불리는  '인디카 시리즈' 경기와 관련된 얘기입니다.  인디카 시리즈는 F1보다 시속 100km이상 빨리 달리는 초고속 경기로 유명합니다. 두 가지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미국 내에서만큼은 F1 못지않은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피드 축제라고 합니다.

현지시간으로 지난 17일, 일요일이었죠.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인디카 시리즈 월드 챔피언십 대회가 열렸습니다.  경기는 경주차 34대가 2.4킬로미터짜리 서킷을 200바퀴 도는 방식입니다. 총 483km를 달리는 것이죠.

대회를 관전하는 중요한 포인트는 무엇이었을까요? 미국에서 가장 '핫'한 레이스, 인디카 500종목에서  최근 우승을 거둔  '댄 웰돈' 선수를 지켜보는 것입니다. 올해 33살의 댄 웰돈은 세계 3대 자동차 경주로 꼽히는 인디카 500마일 종목에서 2005년에 이어, 두 차례 정상에 오른 베테랑 선수입니다. (참고로 인디카 500마일 종목은 세계 3대 자동차 경주로 손꼽히는데요. 나머지 두 경주는 F1의 '모나코 그랑프리',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입니다.)

웰돈은 우승 당시 상금 256만 7천 달러, 우리돈으로 27억 이상을 받기도 했는데요.  2005년 우승을 차지한 뒤 6년만에 다시 재기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웰돈은 올해 이 우승을 차지한 뒤 이번 시즌을 '개점휴업' 상태로 보내고 있는 중이었는데요. 팬들은 웰돈이 이번엔 과연 어떤 경기를 펼칠 지 궁금해 했습니다.

드디어 경기가 시작됐습니다. 웰돈은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출발 신호와 함께 무한 질주를 시작합니다.  불의의 사고가 발생했던 운명의 순간, 12바퀴째가 되기 전까지 팬들은 그의 우승을 강력하게 예감했습니다.

                

누구도 뜻하지 않았던 그날의 사고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웰돈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레이스를 하던 차량 한 대가 커브 구간을 질주하다 트랙을 벗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뒤따르던 차량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이 차량을 그대로 들이박습니다 . 차량 두 대가 그대로 추돌하면서, 경기장 벽면까지 날아갑니다. 곧 벽면과 차량이 충돌하면서 불길이 치솟았고, 주변에 있던 차량들도 중심을 잃으면서 뒤엉키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15대의 차량이 사고를 당했습니다.

웰돈의 차량도 그 15대 중 한 대였습니다. 차량은 순식간에 하늘로 붕 떴다가 추락했고,  불과 1분도 안되는 시간 동안 경기장은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부푼 마음으로 챔피언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슬로우 비디오라고 할까요? 웰돈의 팬 눈에는 아마도 당시 사고 장면이 그렇게 느리게 지나갔을 것입니다.

모두가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지만, 웰돈은 선수들 가운데 부상 정도가 가장 심각했습니다. 그는 헬기로 이송돼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고,  물론 경기는 중단됐습니다. 그렇지만 수천 관중과 동료들은 누구하나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마음을 졸이며 챔피언의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기다림이 무색하게도 두시간 뒤, 대회 주최측은 불과 두 시간만에 웰돈이 숨졌다고 발표하게 됩니다.   웰돈은 추락하면서 머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레이싱 팬들은 웰돈이 가족 사랑이 남달랐다며 더욱 마음 아파하기도 했습니다. 웰돈은 사고 전날 아내와 함께 서로의 이름을 손목에 문신으로 새겼다고 합니다. 자신의 손목에는 아내 수지의 이니셜인  S.W.를, 아내의 손목에는 자신의 이니셜인 D.W.를 새기면서, 대회의 우승을 다짐했었겠죠.

웰돈의 영상 자료를 찾다보니, 2살난 아들을 안고서 우승 소감을 이야기하며 웃던 모습이 있었습니다. 지난 5월 인디카 500에서 우승하고 나서 한 인터뷰였습니다. 아이를 꼭 안고서  벅차하는 모습이 여느 젊은 아빠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웰돈의 사망 사실이 발표된 뒤, 동료 드라이버들이 서킷을 다섯 바퀴 돌면서 추모 주행을 펼쳤습니다. 그 동안 이별 이야기를 담은 '대니 보이(Danny Boy)' 같은 음악이 흘렀고, 전광판에는 웰던의 선수 번호 77이 새겨졌습니다.  한 인디카 부품업체는 자신들이 생산한 부품 일부에 영원한 대회 챔피언, '댄 웰돈'의 이름을 넣기로 결정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