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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소셜 커머스,'짝퉁' 팔고 나몰라라

소비자만 봉?

[취재파일] 소셜 커머스,'짝퉁' 팔고 나몰라라

매번 쓰는 기사, 그런데 쓸 때마다 2~3분이라는 방송 뉴스의 길이는 참 짧게만 느껴집니다. 생생한 인터뷰, 복잡한 배경, 꼬인 관계를 짧은 시간으로 압축하다 보면, 뭔가 빠지는 내용이 생기게 마련이죠. 다행히 압축이 잘 되는 경우가 있는 반면, 눌러담기가 힘든 기사도 있습니다.

지난 주말 SBS 8뉴스에 방송된 "소셜 커머스 업체의 가짜 화장품 판매" (☜다시보기 클릭)와 관련해, 방송에서 다 못 썼던 내용과, 취재 뒷얘기를 들려드릴게요.

-  '그 가짜 크림들은 어디서 사 왔을까?'

분명, 위메프 홈페이지에는 '위메프가 직접 미국 매장에서 산 제품'이라고 돼 있습니다.과연 그럴까요? 먼저, 택배 포장지에 적힌 발송지를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뉴저지 주소였는데, 전화를 걸었더니 공교롭게도 한국 사람이 받더군요. 자신들은 배송대행업체라고 합니다. 일산과 미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모씨가 주문한 키엘 크림을 한국으로 배송하고 있는데, 하나씩 개별포장 하느라  바쁘다고 했습니다. '일산과 미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모 씨' 는 위메프와 제품 공급업자 사이의 중간 거래상으로 추정됩니다.

그럼 이 중간 거래상이 물건을 떼오는 곳은 어디일까요. 이 부분을 확인하는 데는 한 블로거의 힘이 컸습니다. 이번 키엘 크림 건을 면밀히 분석해둔 한 블로거는 위메프 측이 올려놓은 문서를 토대로 'Smooth Liquidations Inc.' 라는 회사를 지목했는데요, 플로리다에 위치한 이 업체를 확인한 결과, 키엘 크림을 공급한 곳이 맞더군요. (네티즌 수사대의 위력을 확인했습니다. ) 회사 이름처럼(liquidation), 망한 업체의 물건을 넘겨 받아 판매하는 곳인데, 키엘 크림 역시 파산한 업체를 통해 건네받았다고 합니다.

키엘 본사는 망하지도 않았고, 정식 대리점을 통해서만 유통하고 있으니, '파산한 업체'는 제품의 정식 공급자는 아니었던 듯 싶습니다.

- "의약품 수출입 협회를 통해 진위를 밝혀내겠다"?

제품 구매자들 사이에서 '가짜'라는 주장과 환불 요구가 거세지자,  위메프 측은 홈페이지에 '의약품 수출입 협회에 분석을 의뢰해 진위를 밝혀내겠다'는 공지를 한 동안 내걸었습니다. 그런데 '의약품 수출입 협회'는 제품의 겉포장만을 검사하는 곳으로 "내용물의 진위 판단과는 관계 없는 곳"이라는 게 협회의 설명입니다. 위메프는 제품의 진위 판단과는 전혀 관계 없는 기관의 이름을 걸어 소비자를 현혹하고 시간만 질질 끌었던 셈입니다.

               



- 가짜 화장품은 유통되도 진위 밝혀낼 방법이 없다?

저는 이 취재에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제조사에 진위 판별을 의뢰하거나, 분석기관에 맡기면 쉽게 알 수 있겠지 싶었습니다. 그러나 일은 생각처럼 쉽게 풀리지 않았습니다.

제일 먼저 접촉했던 키엘 한국지사는 진위 확인을 거부했습니다. 자체적으로 성분 분석을 하기 위해 식약청 같은 공공기관과 사설 기관, 대학의 화장품과학과 등 7곳과 접촉했지만 모두들 난색을 표했습니다. 안 된다는 이유는 한 가지였습니다. "A와 B 화장품의 성분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은 알아 낼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실만으로 '위조됐다' 혹은 '가짜다'는 결론은 내릴 수 없다. 위조 여부는 오직 제조사만이 밝힐 수 있는 사안이다"라는 겁니다.

답답한 노릇이었습니다. "다르긴 하나 위조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는 건데, 이 논리대로라면, 국내에 그 어떤 가짜 화장품이 유통된다 하더라도, 제조사가 나서서 "저건 가짭니다. 쓰지 마십시오"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가짜라고 밝혀낼 수가 없는 게 현실이었습니다.

물론 우여곡절 끝에 키엘 코리아의 협조로 제품이 미국 본사에 전달됐고, 부사장에게서 "당신이 보낸 제품은 포장과 내용물 모두 위조품이 맞다"는 답을 받긴 했지만, 언론사가 아니라 개개인 소비자의 힘으로 위조품의 진위를 밝혀내기는 쉽지 않은 실정입니다. 또 다른 가짜 화장품이 팔린다 해도, 소비자들이 '가짜'임을 입증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건데요, 저는 이 점이 가장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언제든 또다른 가짜 화장품 판매가 가능하고, 판매업자가 "정품이 아니라는 증거를 대봐라"고 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니까요.

- 그 와중에도 '정품'을 받은 소비자가 있다?

위조품을 확보하기 위해 카페나 블로그에 글을 올린 구매자들과 쪽지를 주고받다가 눈에 띄는 답장을 보게 됐습니다. "백화점 정품을 받았다"는 구매자였습니다. 모두가 미국발 가짜를 받는 와중에, 이 소비자는 한국 유명백화점에서 산 정품을 받았던 겁니다. 이 사람은 "나는 정품이든 가품이든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으니, 얼른 제품을 보내달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또 업체가 당초 내걸었던 배송 기한을 몇 차례 어긴 걸 지적했고, 업체 측에서 직접 백화점 크림을 사갖고 왔다고 하더군요.

이 소비자는 정품 크림만 받은 게 아니라 배송이 늦어진 데 대한 보상 측면에서 '포인트'도 추가로 적립받았습니다. 이 구매자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비자가 더 많은 정보를 갖고 더 많이 대응할 수 있는 준비를 하지 않으면 결국 피해를 보는 건 소비자라는 거죠."

그러나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소비자는 업체와 대항할 만큼 정보와 시간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번 사건의 소비자들이 가장 분통을 터뜨리는 건, 위메프가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가짜를 팔았다는 것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이 '가짜'라는 의혹을 제기했을 때 취한 업체 측의 태도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업체측이 약속한 '진정한 사과'와 '재발방지'를 과연 어떻게 할지 두고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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