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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전기료 다음달 평균 4.8% 올린다

정부, "원가 이하 공급에 에너지 왜곡 심해"

[취재파일] 전기료 다음달 평균 4.8% 올린다

매년 그렇지만 올해만큼 전기료 인상안을 놓고 정부 각 부처가 고민을 거듭한 적이 없었다는 게 정부 고위 관계자의 전언이다.

연초 시작된 농수산물발 물가 상승은 기대 인플레 심리를 높여 서비스물가 등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3%대 물가상승률을 장담했던 정부는 목표치를 4%대로 상향 조정했고, 하반기 경제운용 목표도 '성장'에서 '물가 안정'으로 급선회했다.

이런 마당에 전기료 인상은 물가에 전방위로 압박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상당히 부담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부담이 늘어난다고 계속 지금 수준에서 전기 요금을 묶어놓는 것은 나중에 더 큰 부담을 안기는 '조삼모사'의 전형이라는 판단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원가 이하로 공급되고 있는 전기 요금은 누적 인상 요인이 16.2%나 쌓여 있다. 하지만 일단 물가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3분의 1 수준인 평균 4.8% 수준에서 인상률을 묶기로 했다. 나중에 단계적으로 인상해나가겠다는 장기 계획을 짜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올 하반기에서 내년은 선거에 임박한 때라 아마 전기료의 단계적 인상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다.

대신 서민과 자영업자, 중소기업을 배려한 차등 요금 조정을 시행하겠다는 게 정부의 복안이다. 약자 배려 원칙에 따라 소득 대비 전기요금 부담이 큰 계층은 인상률을 최소로 가져가고, 에너지 과소비 부문은 크게 올리겠다는 뜻이다.

전기요금이 싸다보니까 비닐하우스 난방을 전기보일러로 하는 농가가 많은 것이 에너지 낭비의 대표적 사례로 지적돼 왔지만, '약자 배려' 원칙에 따라 농업용은 동결하기로 했다. 주택용은 물가 상승률 절반 이내인 2% 인상하고 호화주택에는 할증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호화주택의 범위를 어느 정도로 가져갈지는 조율 중이다.

산업용 전력의 경우에도 일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용 저압 요금은 2.3% 정도 소폭 올리고, 대형 건물과 대기업용인 고압 요금은 6.3% 상대적으로 큰 폭 조정한다.

교육용 부문의 전기 낭비도 심하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교육용 전기가 싸게 공급되다보니 초등학교 교실에 앞다퉈 전기 소비가 큰 시스템 에어컨을 설치하는 등의 사례가 그것. 이에 따라 지난해 5.9% 인상한데 이어 올해도 6.3% 교육용 전기 요금을 올릴 방침이다. 교원단체의 반발이 예상된다.

물가부담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전격적으로 전기료 인상을 결정한 이유는 뭘까. 우선적으로는 지금 가격 수준의 지금 수요량으로는 올여름과 겨울에도 전력부족 사태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미 폭염이 시작돼 전기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일부 과부하가 걸린 건물이 정전되는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결국 소비패턴을 바꾸려면 가격을 올리는 수밖에 없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전기가 상대적으로 싸다는 인식 속에 우리나라는 에너지 왜곡 현상이 심한 편이다. 실제로 2002년 이후 등유 소비는 꾸준히 줄고, 도시가스 소비도 완만하게 늘고 있지만 전력소비는 상당히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항만의 컨테이너 크레인 동력을 과거 경유로 쓰던 것에서 경유가 비싸지니까 전기로 바꾸는 사례, 산업시설 가운데 주물공장 동력도 석탄이나 경유를 쓰던 것을 전기로 바꾸는 일, 농산물 건조에 전기를 쓰는 농가가 늘어난 것들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결코 전기는 싼 에너지가 아니다. 석탄 등 화석연료를 사다가 태워서 전기에너지로 바꾼 것을 다시 열에너지로 바꿔서 쓴다는 것은 효율이 극히 떨어지는 일이다. 그런데도 겨울에는 열 발산하는 전기 난방기를 몇시간씩 틀어놓는 일이 허다한 현실이다.

경제 주체는 자신에게 직접적인 경제적 부담이 왔을 때에만 소비 패턴을 바꾸는 경향이 나타난다. 전기 소비를 줄이자고 아무리 캠페인을 해도 불을 켜놓은 채 방을 비우는 경우, 반팔 아파트 사례도 여전하다.

전세계가 녹색 성장을 캐치프레이즈로 대체에너지 개발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경제성이 담보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상당 기간은 화석 연료에 의존하면서 청정에너지를 늘려가는 쪽이 답이 될 것이다. 때문에 전기 에너지에 대한 낭비는 심각한 국가 경쟁력 위협 요소가 된다. 수출산업에서 전기를 많이 쓰는 중공업 비중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기료 인상을 통해 에너지 절감 생산기술을 개발하는 동기를 부여하고, 이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또 의미가 있다.

나 부터도 전기요금 내야 하는 소비자 중에 하나지만, 그런 점에서 전기요금 인상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에너지 가격 현실화는 에너지의 소중함을 인식시키는 일종의 충격요법이 될 수 있다.

다만 물가에 급진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전기료 인상에 기댄 제품과 서비스 요금 인상 추이를 예의주시하는 것도 정부가 할 일이다. 이미 기대 인플레이션이 확산되면서 너도나도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손해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는 것이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마당에, 전기료 인상이 그런 '묻지마 물가 인상'에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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