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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기름값 '그들끼리 논란'에 소비자는 지친다

기름값 3개월 한시적 인하조치가 남긴 것

[취재파일] 기름값 '그들끼리 논란'에 소비자는 지친다

정유사의 100원 기름값 인하 조치가 끝난 후, 정부는 낙관했다. GS칼텍스를 필두로 '점진적으로 인상하겠다'는 방침을 밝힌만큼 연착륙할 것이란 해석이었다. 하지만 낙관은 그냥 낙관에 그쳤다. 기름값 내릴 때는 재고 때문에 느릿느릿 행보를 보였던 주유소들은 올릴 때는 신속했다. 값이 쌀 때 받은 재고가 분명히 남아있겠지만 주변이 오르니 덩달아 올렸다.

현재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값은 리터당 2천 원을 돌파했고, 서울 강남은 2천299원으로 2천300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계속해서 어록을 남기고 있다. 정유사들이 공급가를 한꺼번에 올릴 경우 물가부담이 커질 것을 우려해 "아름다운 마음으로 공급가를 내렸듯이 같은 마음으로 서서히 연착륙해달라"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마음이라..' 가슴이 답답해졌다. 일부에선 '그럼 그런 아름다운 마음으로 정부는 왜 유류세를 좀 내릴 수가 없는 거냐'며 비아냥도 흘러나왔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도 거들었다. "환원조치 후 기름값 리터당 2,000원 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우회적으로 정유사와 주유소들을 압박했다. 박 장관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이미 서울시내에선 2천 원 미만의 주유소를 찾는 일이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

이번 기름값 인하조치, 처음엔 기름값 원가를 계산해보겠다는 걸로 시작됐다. 왜 국제유가 오를 때는 반영하고 내릴 때는 반영 안 하느냐며 "기름값이 묘하다"는 대통령의 한마디가 발단이었다.

기름값 원가, 실제로 모호한 측면이 많다. 정유사들이 제공한 자료만을 근거로 조사하다보니 한계가 있었고, 결국 비대칭성이 항상 연속적으로 발생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내가 회계사'라며 원가 계산을 자신했던 최중경 장관은 그 때 이후로 원가 얘기는 거의 거론한 적이 없다.

이후 정부 정책의 초점은 정유사들의 이윤을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돈도 많이 버는데 좀 내놓으라는 것이다. 꺼내든 카드가 정유사들의 '자발적'인 100원 할인 조치였다. 아무도 자발적이라는 걸 믿지 않지만, 지식경제부는 '자발적'이라는 것을 누차 강조했다.

하지만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공급가를 100원 내렸지만 주유소들은 그만큼 내리지 않았다. 주유소들도 이유가 있다. 이윤 내서 장사하는 사람들이니만큼 정유사의 권유, 도덕적으로 참여해달라는 말은 영향을 미치는데 한계가 있었다. 주변 주유소들 가격변동폭도 봐가면서 끊임없는 눈치 작전을 벌였다.

소비자단체는 실제 효과는 56원에 그쳤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추정이긴 해도 나머지는 주유소들의 이윤으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야속하긴 해도 시장경제 속에서 경쟁자 눈치봐가며 찔끔 찔끔 가격 내린 주유소들을 싸잡아서 비난하기만도 어렵다.

이런 과정에서 유통시장 교란도 일어났다. 싼값에 공급하니 사재기 현상이 일어나는 건 당연할 터, 주유소들의 기름 주문이 몰리면서 수급에 차질이 빚어졌다. 기름을 쟁여놓고 일부러 풀지 않는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할인 정책 3개월 말미에 가서는 일부 지역에선 경유가 부족해 팔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GS칼텍스는 이런 과정에서 자사 공장의 고장으로 인한 공급부족까지 몽땅 주유소 탓으로 돌리는 상도의에 어긋나는 일을 저질러 비난을 샀다. 정유사와 주유소, 견제와 협력을 균형있게 이어가야 할 관계에 불신이 가득 쌓였다. 정상적으로 시장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경제주체들이 보여줄 수 있는 비상식적인 행동이 종합선물세트로 나열됐다.

'조삼모사 정책', '임기응변'의 전형이 아니냐는 세간의 지적이 이어지자 정부는 또 다급해졌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지난번에 100원 다 내린 것 아니지 않느냐. 그러니까 이번에 100원 다 올리는지 지켜보겠다"고 또 다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정유사들은 시큰둥에 이어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공급가를 내리든, 카드 할인을 해주든 100원은 정유사들로서는 일괄적으로 손실을 본 것이고, 그만큼 안 내린 것은 유통 과정상의 문제인데, 또다시 정유사에 희생을 강요하는 듯한 최 장관의 발언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정부는 물가안정 대책회의에서 또 업계를 강하게 압박했다. 임종룡 기재부 차관은 56원 밖에 인하 효과가 없다는 소비자단체 분석 내용을 인용하며 "정부도 소비자단체의 분석내용이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판단한다. 스스로 약속한대로 기름값을 인하하지 않은 것은 정유사·주유소에 대한 소비자 신뢰를 크게 훼손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또  "국제유가, 환율, 정유사·주유소 마진 등을 감안해 기름값 할인 전과 비교할 때 현재 시점에서 기름값을 올릴 이유가 있는지 극히 의심스럽다"고 꼬집었다. 정부의 시선은 업계가 100원 할인을 통해 사실상 소비자를 속였고, 인하 조치가 끝난 지금도 이익 챙기기에 급급하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정부와 정유업계 공방 2라운드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한국은행도 물가상승률 전망치 4%로 수정할 정도로  물가에 대한 정부의 염려가 크다는 것은 이해한다. 하반기 경제운용목표도 '성장'에서 '물가잡기'로 환원한 마당에 무슨 수단을 못 쓰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정유사들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100원 내렸고, 단계적으로 환원도 하고 있는데, 더 이상 뭘 어떻게 하느냐는 푸념을 늘어놓는다.

이런 정부와 정유업계, 주유소들의 공방을 몇 개월째 지켜보는 소비자들의 마음은 편치가 않다. 이들은 소비자를 위하는 척하며 지루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정작 소비자들은 기름값이 내린지도 잘 모르겠고, 지금은 더 비싼 돈을 주고 기름을 넣고 있다. 물가부담에 숨이 턱턱 막히는데, 별 실익도 없으면서 시끄럽게 분란만 일으키고 있다는 반응이 많다.

결국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번 한시적 기름 값 인하책, 소비자에게 3개월도 안 된 잠깐의 혜택, 이후 상대적으로 더 오른 데서 오는 큰 부담감, 정유사들은 손해봤다고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출하고 있고, 무엇보다 시장 질서가 교란돼 상당한 후유증을 남겼다.

그래서 도대체 이 정책의 수혜자는 누군가?? 곰곰이 생각해본다. 정부일까? 영점 몇 퍼센트 물가 상승률 인하 효과를 3개월 동안 가져온 공로를 과연 인정할 수 있을까?

도통 수혜자를 찾기 어려운 정책이 몇 개월째 시장을 들썩이게 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소비자는 실종된 이상한 형국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정책 실패는 바로 기름 수요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결국 유한한 석유 자원의 특성상 절약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의 기본 목표는 '기름을 쓰되 되도록 아껴 쓰고 동시에 대체에너지를 개발해 석유 의존도를 낮춰나가는 쪽'으로 전개돼야 한다. 그런데 소비자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이번 정책으로 단기적이지만 국제유가가 오르는데도 국내 기름 소비량이 오히려 늘었다. 일관성이 결여된 이번 정책이 절대 박수를 받을 수 없는 이유다.

유류세 수입이 워낙 크다보니 정부가 아름다운 마음을 선뜻 발휘하지 않고 있는데 대한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재정 사정이 넉넉지 않은 것도 이해하지만 업계를 계속 압박하려면 정부도 고통 분담 차원에서 조금이라도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야 명분이 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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