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도 넘은 '이태원 프리덤'

미군 통금 해제 1년…지금 이태원은

[취재파일] 도 넘은 '이태원 프리덤'

# 사례 1.

지난달 26일(토) 새벽 2시 반, 28살 여성 홍모씨는 이태원 거리를 걷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마주오던 주한미군 P 병장이 갑자기 치마 속으로 손을 넣어 추행한 것. 남자친구 김 모씨가 항의하자 미군은 김 씨까지 폭행했고, 결국 미군은 경찰에 인계됐다.

# 사례 2.

이태원 지구대 소속 윤 모 경장은 지난 5월30일(토) 새벽 4시 반 이태원의 한 바 계단에서 사람이 자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출동했다. 현장에서 누워자던 남성을 깨워 귀가시키려 하자, 이 남성이 영어로 욕을 하며 윤 경장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가해자는 주한미군이었다. 

취재원에게 "요즘 주말이면 이태원이 난리"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어제 오늘 일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왜 그러냐"며 핀잔부터 주었다. 하지만 몇 달 사이 이태원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듣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지난해 7월 해제된 주한미군의 통금 조치와도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도대체 이태원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 2011년 7월1일(금) 20시~7월2일(토) 04시

날이 저물자 이태원은 관광객과 체류 외국인 뿐 아니라 저녁 모임을 위해 나온 내국인들로 북적였다. 휴일 전날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려는 이들로 가득찬 거리에 쿵쾅 쿵쾅 울리는 클럽 음악이 울려퍼지면서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여느 평범한 유흥가와 다를 게 없었다.

저녁을 먹으며 들은 인근 칼국수집 주인 아주머니의 말이다.

"금요일 밤부터 난리가 나요. 우리야 밤되면 문닫고 가니까 큰 위협은 안느끼는데, 주말이면 장난이 아니에요. 술 취해서 널브러진 사람, 고성 지르는 사람..."

자정을 넘긴 이태원은 불과 몇 시간 전과는 딴판이었다. 미군과 외국인이 특히 많이 찾는다는 이태원 소방서 옆 클럽 골목 일대가 특히 심했다. (취재하면서 외국인들의 ID카드를 일일이 확인하지 못했지만, 카투사 출신 후배 기자는 누가 미군이고 누가 체류 외국인인지 대략 구별해낼 수 있었다. 여기선 외국인으로 통칭) 삼삼 오오 무리지어 맥주병을 들고 다니며 소리지르는 외국인들, 차도로 나와 지나가는 차량을 희롱하는 외국인들이 눈에 띄었다. 술에 취해 거리에서 혼자 춤을 추는 외국인, 건물 구석에 누워 자는 외국인 등 무질서가 극에 달했다.

곳곳에서 다툼이 벌어졌는데, 그 때마다 미군 헌병들이 달려와 이들을 제지했다. 미 헌병들은 주말 밤 5~7명씩 조를 이뤄 질서유지 활동을 벌인다. 현장에서 재밌는 점을 발견했다. 미군은 이들 헌병이 출동하면 즉각 돌출 행동을 자제하고 온순해지지만, 미군이 아닌 외국인은 그렇지 않았다. 당연히 미 헌병의 제지를 받을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두려워할 일이 없는 것.

미군과 외국인이 자주 찾는 클럽 골목과 가까운 이태원 소방서를 찾았다. 소방관들은 혀를 내둘렀다.

"말도 마세요. 주말 마다 아수라장이에요. 신고를 받고 출동해야 하는데 술마신 외국인들이 소방차를 툭툭 치며 방해하기도 하고, 소방서 앞에서 널브러져 있기도 해요."

첫날은 이태원의 주말 심야 분위기가 어떤 것이지 파악하는 걸로 만족하고 철수했다.

# 2011년 7월3일(일) 0시~3시

이태원에 도착하자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진다. 하지만 토요일 밤의 열기는 전날보다 더했다. 후텁지근한 날씨에 비까지 내리니 전날과는 분위기가 또 달랐다.

새벽 2시쯤 K 클럽 앞에 외국인들이 모였다. 주한미군과 체류 외국인이 섞인 듯 했다. 갑자기 고성이 들리더니 영화에서나 볼 법한 난투극이 벌어졌다. 동행한 VJ가 재빨리 캠코더 셔터를 눌렀다. 활극이 따로 없었다. 우리 옆으로 난투극 주인공들과 일행으로 보이는 외국인이 다가와 말했다. "찍지 마라. 내 친구들이 오면 너희들 죽일 수도 있다." 섬뜩한 느낌이 들어 우리는 카메라를 내리고, 장소를 옮겨 몰래 촬영을 계속했다.

난투극은 미군 헌병들이 출동하고 나서야 마무리됐다. 클럽 직원은 이런 싸움이 주말마다 꼭 있다고 전했다.


# 미군 통금 해제가 원인?

월터 샤프 주한미군 사령관은 지난해 7월초 미군의 통금을 해제했다. 9.11 테러 이후 미군의 안전을 위해 도입된 통금이었지만, "이제 서울은 거주하거나 가족을 데리고 살기에 안전한 도시"라며 해제했다. 자정이면 부대로 복귀해야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태원은 주한 미군 뿐만 아니라 나이지리아인 등 체류 외국인들도 많이 모이는 곳이어서, 이 곳에서의 일탈을 모두 주한 미군 탓으로 돌리는 것은 맞지 않다. 하지만 주한미군의 통금 해제 이후 일어난 범죄 발생 건수는 통금 해제가 일탈로 연결된 경우가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통금 해제 전후 범죄 현황을 비교해보면 더 명확해진다.




통금 해제가 해악만을 불러온 것은 아니다. 이태원 주변 상인들은 통금 해제로 대부분 매출이 올랐다.

클럽 거리의 한 편의점 사장은 "20% 매상이 올랐다"고 했다. 그리고 흥청거림은 주말에만 있을 뿐 평일은 조용한 편이기 때문에 통금 해제가 큰 문제가 될 것도 아니라고 했다. 이태원 상인협의회도 같은 입장이다.

# '군사동맹'이라도 범죄는 엄벌해야

지난 2월 동두천에서는 미군이 60대 여성을 성폭행하고, 남편을 무참히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 경찰과 검찰은 이례적으로 이 미군을 미 측에 넘겨주지 않고, 우리가 직접 구속해 재판까지 받게했다. 얼마전 1심에서 미군은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피해 부부는 아직도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미군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너희 나라를 지켜주러 왔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니 어느 정도의 일탈 행위가 있으면 어떠냐는 식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군사 동맹이, 그들에게 범죄 저지를 권한까지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 정부는 작은 일탈이라도 엄정하게 벌하고, 따질 건 따져야 하고, 미군도 철저한 교육을 통해 미군의 범죄 발생율을 낮추려는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시점이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