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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국(백두산)호랑이', '시베리아 호랑이' 어느 게 맞나?

[취재파일] '한국(백두산)호랑이', '시베리아 호랑이' 어느 게 맞나?

지난 5월 21일, 시베리아에서 호랑이 암수 한 쌍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습니다. 한-러 수교 20주년 기념으로 푸틴 러시아 총리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기증한 '백두산호랑이'였습니다. 서울동물원에 새 보금자리를 튼 호랑이들은 지난 23일, 한 달 동안의 검역과 건강검진을 마치고 시민들에게 첫 인사를 했습니다.

러시아에서 호랑이가 들어왔다고 하자, 제 주변에서도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셨습니다. 아무래도 호랑이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동물이기 때문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질문 가운데 가장 많았던 건 과연 '한국(백두산)호랑이'와 '시베리아호랑이' 중에 어느 게 맞는지 궁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시베리아호랑이'가 맞습니다. 학문적으로 호랑이는 모두 9종이 있습니다. 벵골호랑이, 시베리아호랑이, 인도차이나호랑이, 말레이호랑이, 수마트라호랑이, 남중국호랑이, 발리호랑이, 자와호랑이, 카스피호랑이 이렇게 9종입니다. 그 가운데 발리, 자와, 카스피호랑이는 멸종해, 안타깝게도 더 이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흔히 '백두산호랑이', '한국호랑이'라고 부르는 종의 정식 명칭이 '시베리아호랑이'입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한국(백두산)호랑이가 시베리아호랑이로 분류된 건 아니었습니다. '한국(백두산)호랑이'란 이름이 논의되기 시작한 건 1844년 네덜란드 동물학자 콘라드 제이콥 테밍크가 '아무르호랑이'를 새로운 호랑이의 아종으로 학계에 발표하면서부터입니다. 그런데 사실 테밍크가 '아무르호랑이'라고 주장했던 호랑이가 잡힌 곳은 한반도였습니다. 어쨌든 테밍크에 의해 '시베리아호랑이'와 다른 종으로 '아무르호랑이'가 학계에 보고가 됐습니다.

그 후 브라스란 학자는 1904년 한국의 호랑이가 '아무르호랑이'보다 넓고 뚜렷한 줄무늬가 있고, 붉은 빛깔이 도는 아름다운 가죽을 지니고 있다며 '한국호랑이'라는 별개의 아종을 발표했습니다. 결국 호랑이 종은 '시베리아호랑이' 한 종에서, '아무르호랑이', '한국호랑이' 이렇게 세 가지로 늘어나게 된 것이죠.

그렇게 처음 학계에 보고된 '한국호랑이'란 아종명은 1965년까지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무역에 관한 협약(CITES)'목록에도 올라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DNA분석 등을 거쳐 이 세 종의 호랑이는 다시 '시베리아호랑이'로 통합됐습니다. 실제로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가 야생동물유전자자원은행과 국립생물자원관이 박물관에 보관된 백두산호랑이 표본을 이용해 실험한 결과, 시베리아호랑이, 아무르호랑이와 한국호랑이 사이에 유전적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한마디로 "한국(백두산)호랑이=시베리아호랑이=아무르호랑이"란 등식이 성립한다는 얘기입니다.



일부에서는 한국호랑이가 막연히 우리 것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의 소산이라고도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분명 학문적으로도 한국호랑이를 따로 구분한 연구 결과가 있었습니다. 이는 비록 결과론적으론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것으로 판정이 됐지만, 서식 환경에 따라 외형이나 습성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의미 있는 연구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시베리아호랑이'는 그 이름과 달리 시베리아에 살았던 적이 없으며, 현재도 살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시베리아호랑이'는 주로 한반도를 비롯해서 만주와 몽골 북부, 러시아 극동지방에 걸쳐 분포합니다. 러시아에서는 우랄산맥 동쪽에서 태평양 사면의 하천 분수령까지를 '시베리아'라고 부르고, 태평양 사면 부분을 '극동'이라고 하여 두 지역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시베리아호랑이는 시베리아가 아닌 극동지역에 살았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그럼 왜 '시베리아호랑이'란 이름이 붙었을까요? 과거에 러시아 극동 지방이 개발되지 않아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았고, 그래서 뭉뚱그려 극동지방을 시베리아와 구분하지 않고 부르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그 지방 호랑이를 '시베리아호랑이'라고 부르면서 '시베리아호랑이'란 이름이 생긴 겁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많이 받은 질문은 반달가슴곰이나 야생여우처럼 야생에서 호랑이를 볼 수 있냐는 겁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야생호랑이를 보기는 어려울 전망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더 이상 우리나라에선 호랑이가 야생에서 서식할 공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호랑이의 행동반경은 대게 50~10km에 이릅니다. 호랑이 무리가 서식하려면 최소 지리산 크기의 야생 환경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개체 수가 늘어나면 경기도 면적의 야생 공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개발이 많이 된 상황에서 호랑이를 위해 그 만큼 넓은 공간을 제공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또 호랑이의 공격성을 고려하면 야생방사는 더욱 어렵습니다. 대게 야생동물들은 배가 부르면 특별히 위협을 느끼지 않는 한 다른 동물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호랑이의 경우는 다릅니다. 호랑이는 눈앞에 낯선 게 보이면 바로 공격하는 강한 야수성을 보입니다. 그래서 먹이가 없을 때는 민가로 내려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든지 농경지를 파괴하는 등의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호랑이를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물론, 호랑이 방사에 대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경기도 연천군은 2008년에 멸종된 시베리아호랑이를 복원시키기 위해 호랑이 3마리를 고대산에 방목방식으로 복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를 위해 1억5천 원을 들여 고대산 평화체험특구에 6천여㎡에 이중 펜스를 설치하고, 그곳에 호랑이를 방사할 계획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생태학자들의 반응은 매우 회의적이었다. 결국 한강유역환경청의 수입허가를 받지 못해 계획은 무산됐습니다. 또 강원도 양구 펀치볼 같이 특유의 고립된 지형에 호랑이를 방사하는 방안이 검토되기도 했지만 역시 같은 이유로 실현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럼 이번에 러시아에서 들어온 호랑이는 어떤 식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요? 물론 앞서 말씀드릴 것처럼 한-러 수교기념을 기념하는 외교적인 의미도 매우 큽니다. 그리고 생태학적인 면에서 우리나라에 있는 호랑이의 종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데 더 의의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서울동물원을 중심으로 45마리의 호랑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비슷한 지역에서 들어왔고, 근친교배로 혈통의 다양성이 낮은 상태입니다.



이번에 러시아에서 들어온 두 마리는 할아버지 세대가 야생에서 잡힌 개체로 기존의 호랑이와 혈통이 다릅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아직 야생성이 강하게 남아 있어 호랑이의 혈통을 보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전망입니다. 비록 우리나라 야생에서 호랑이를 직접 방사할 수는 없지만, 동물원 같은 곳에서 호랑이를 잘 보존하는 것도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을 보호하는 건 몇몇 나라의 노력만으로는 이룰 수가 없습니다.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하는 문제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혈통의 호랑이를 보전한다는 건 멸종위기 동물을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노력들이 계속되면 나중에 우리가 러시아나 다른 나라에 호랑이를 선물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글을 마치기 전에 조금 더 본질적인 질문을 해보고 싶습니다. 과연 우리는 왜 이렇게 멸종위기에 놓인 동물을 보호하고, 아껴주는 걸까요? 이것이 과연 우리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쉽게 답하기 어려운 철학적인 질문입니다.

제가 학부생일 때 예방의학을 전공하신 지도교수님께서 제게 물어보셨습니다.

"자네는 왜 수의사가 동물을 치료하고 보살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저는 제대로 된 답을 찾지 못해 머뭇거렸습니다. 그러자 교수님께선 당신 생각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난 사람이 동물을 아끼고, 보살피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네. 힘세고, 강한 존재가 상대적으로 약한 존재를 아끼고 보호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니겠는가?"이번 호랑이 취재를 하면서 교수님의 말씀을 다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우리가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을 아끼고 보호하는 건 어쩌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 이전에 이렇게 왜 이 동물들이 멸종위기까지 처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 모든 게 우리의 지나친 욕심이 부른 안타까운 결과입니다. 동물의 가죽을 벗기고, 뼈를 발라내고, 박제를 만들어 장식용으로 사용하고, 이 모든 게 우리가 저지른 부끄러운 행동들이었습니다. 동물이 건강하게 살지 못하는 환경에서는 우리 인간도 행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취재를 하면서 우리의 모습도 돌아보게 됐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동물이 멸종위기에 놓이게 만들었듯이, 우리 사회의 약자들에게도 똑같이 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과연 우리는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고, 아껴주고, 그들과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성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 말입니다. 아픈 동물이 없는 또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있는 이웃을 보듬어 줄 수 있는 그런 따뜻한 세상을 그려봅니다. 어쩌면 이것이 멸종위기에 놓은 호랑이가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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