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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어민들이 항구가 무섭다고?

[취재파일] 어민들이 항구가 무섭다고?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공현진항. 동해안의 여느 어촌처럼 소형 어선이 많이 있는 작은 어항이다. 어민들은 이른 새벽 조업에 나섰다가 아침이나 낮 시간에 항구로 돌아와 그날 잡아온 물고기를 팔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하루에 적게는 두 번, 많게는 4 번씩 항구를 드나드는데 최근 이 마을 어민들에게 큰 걱정거리가 생겼다. 어민들에게는 집과 같은 항구를 드나드는 일이 바다에서 파도와 싸우는 일 못지않게 두려워졌다고 한다. 바로 좁아진 항구 입구 때문이다.

이 항구 입구에는 최근 어마어마한 양의 모래가 쌓이고 있다. 항구 입구는 원래 수심이 5미터가 넘던 곳인데 3-4미터 높이까지 모래가 쌓이면서 얕은 곳은 수심이 1미터를 조금 넘을 정도다. 항 입구 전체 폭의 절반 이상은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까지 모래가 쌓였다.  물 속에는 모래 언덕이 생겼다.

어민들은 모래가 쌓이지 않은 10여 미터의 좁은 통로 사이로 배를 몰아야 한다. 이른 새벽 어둠을 헤치며 바다로 나갈 때도 조심 조심, 다시 조업을 마친 뒤 항구로 돌아와야 할 때도 조심해야 한다. 무게가 가벼운 1-2톤 선박의 스크류도 모래에 닿을 듯 위태롭기 때문에 5톤이 넘는 큰 어선들은 여간 불안한 게 아니다. 조업을 나가는 어선과 조업을 마치고 귀항하는 어선이 동시에 교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맞은편에서 오는 배도 신경 써야 한다. 특히 바람이 불어 파도가 거센 날엔 아예 조업을 포기해야 한다. 방심은 사고로 이어진다. 실제로 어민들은 몇 차례 사고가 있었다고 증언한다. 스크류와 배 바닥이 모래에 걸리면서 어민들은 가벼운 타박상을 입었고, 어선은 수리가 필요했다고 한다.

강원도 강릉의 영진항에도 공현진항과 똑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항구 입구에 모래가 쌓인 곳의 수심이 50cm 안팎, 어른 무릎을 조금 넘는 정도다. 배가 드나들 수 있는 항구 진출입로의 폭이 10미터 남짓 남아 있기에 이 좁은 틈으로 항구를 드나들어야 하는 이 곳 어민들 역시 하루 하루가 불안의 연속이다. 이 항구에 있던 어선 30여 척 가운데 20여 척은 아예 이 곳을 떠나 인근의 주문진항으로 이동했다.

그렇다면 모래는 왜 쌓이는 걸까? 어민들은 방파제 공사 때문이라고 한다. 공현진항의 경우 4년 전 방파제 공사가 마무리 됐는데 그 이후 파도의 흐름이 바뀌면서 모래가 쌓인다는 게 어민들 주장이다. 2007년 말 항구 방파제가 확장된 이후 모래가 쌓이면서  2008년 처음으로 항구의 모래를 퍼냈고, 2010년 다시 한 번 준설했다고 한다. 2번에 걸쳐 퍼낸 모래 양이 6만 톤 가까이 되고, 비용은 6억 원 가까이 들었다. 그러나 채 1년도 안 돼 또 모래가 쌓인 것이다.

영진항도 방파제 공사가 원인이라고 어민들은 주장한다. 이 곳 역시 2007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지난해 말 방파제 공사를 마쳤다. 그리고 6개월 사이 모래가 쌓였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렇게 항내에 모래가 쌓이는 곳이 강원도 동해안에서 15곳이나 된다. 이들 지역 대부분은 대형 구조물이 항 주변에 지어진 뒤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바닷가에서 모래의 침식과 퇴적은 어찌 보면 자연스런 현상이다. 특히 동해안의 경우 여름과 겨울, 바람 방향이 바뀌게 되면 파도도 바뀌면서 침식과 퇴적이 계절마다 반복된다. 그러나 1년의 과정을 놓고 보면 침식과 퇴적이 계절의 흐름에 따라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춰간다. 그렇기 때문에 해안선도 늘 비슷한 형태를 유지하게 된다. 가끔 이상 파랑으로 침식이 크게 일어나 모양이 많이 바뀌는 때도 있지만 몇 년이란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보면 해안선은 다시 조금씩 원래의 모양을 회복해 간다. 그런데 이런 곳에 구조물이 들어서면서 이 흐름이 흐트러졌다.

인위적인 구조물은 계절마다 반복되는 이런 패턴을 방해하게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구조물 때문에 물 흐름이 달라지면서 한 쪽은 일방적으로 침식만 진행되고, 다른 곳은 반대로 퇴적만 반복되게 된다. 앞서 언급했던 공현진 항이 대표적인 곳이다. 이 항구 내에는 계속 모래가 쌓이지만 주변 마을의 해수욕장에는 모래가 없어 해수욕장 개장을 걱정하게 되는 현상이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방파제를 건설할 때 철저하게 살피지 못한 잘못이 크다. 방파제 건설 예정지의 계절별 조류흐름과 모래 이동을 관찰하고 이를 설계에 반영했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굳이 적은 예산과 짧은 설계기간을 핑계로 삼을 일만은 아니다.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수산인과 수산당국 모두가 무지했다.

이 들 항구에서는 현재 모니터링이 진행 중이다. 모래가 어떤 과정을 통해 항구에 쌓이는지, 쌓일 때마다 추가 예산을 들여 계속 퍼내주는 게 맞는지, 아니면 추가로 구조물을 설치해 줘 흐름을 바꿔 주는 게 맞는지 모니터링을 마친 뒤 판단하겠다는 게 수산당국의 입장이다. 사실 백억 원씩 추가 예산을 들여서 또 다른 구조물을 설치하면 모래 퇴적을 막을 수도 있지만 그것 또한 옳은 방법인지, 예산은 어느 쪽이 더 적게 드는지 등은 지금 단계에서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다.

정확한 조사가 마무리되면 해결책은 어떤 식으로든 찾아내겠지만 그 동안 어민들이 겪어야할 고통이 걱정이다. 어민들은 하루 벌이 삶을 산다. 그 날 조업에서 잡은 물고기가 고스란히 하루 소득이 되기에 하루 조업을 포기하면 그만큼 수입은 줄게 된다. 평소보다 바람이 심해 파도가 커진다면 어민들에게 좁아진 항구는 두려움에 대상이다. 그렇다고 쉽게 조업을 포기할 수 도 없는 터라 모래 쌓인 항구를 바라보는 어민들의 고민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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