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GS칼텍스의 꼼수…고장은 '쉬쉬' 주유소 탓만

열흘 넘게 생산 차질... 25일쯤 정상화될 듯

[취재파일] GS칼텍스의 꼼수…고장은 '쉬쉬' 주유소 탓만

지난 14일 인천과 부평지역 일대에 일부 GS 칼텍스 주유소들이 기름을 공급받지 못해 영업을 중단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정유업계에서는 전쟁이나 천재지변 같은 일도 없는데 기름 공급이 안 되는 일은 비록 국지적이라고 할지라도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이었다.

이에 대해 GS칼텍스 측은 기름값 100원 인하시점이 종료되는 7월 6일 이전에 주유소들이 기름을 더 많이 싸게 받아놓고 나중에 비싸게 팔려고 '사재기'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내놓았다. 주유소들의 말은 달랐다. "저장탱크 용량이 뻔한데 뭘 얼마나 사재기를 한다는 것이냐. 좀 더 사놓을 수는 있지만 기름 공급이 중단될 정도로 할래야 할 수도 없다"고 항변했다. 오히려 주유소들은 GS칼텍스가 이익이 많이 남는 수출용으로 생산량을 돌리고 국내 물량은 줄이고 있다는 의혹의 시선을 던졌다.

도대체 기름은 어디로 간 걸까 의문이 이어졌다.

부평 일대를 취재한 기자들은 공통적으로 기름 공급이 줄어든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GS 측에서 의도적으로 기름 공급을 줄였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기름값 할인 때문에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본다는 말이 맞다고 치더라도 일부 지역에 기름을 안 주면서까지 수익을 보전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유는 오리무중. 지식경제부도 사재기 조사에 나서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분석에 착수했다.

그런데 취재 결과, 기름이 부족하게 된 주요한 원인이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 기름 도매상이 "요새 GS칼텍스 공장 쪽에 뭐 문제가 있는 것 같던데.."라는 풍문을 전해왔다. 취재에 착수했지만 GS칼텍스 쪽은 완강하게 부인했다. 완전히 정상 가동하고 있고 일부 수리하고 있는 것은 정기적으로 순서대로 정비하는 것일 뿐이라는 말이다.

특히 기자에게 거짓말 하겠느냐며 시설을 완전히 정상가동 하고 있고, 지금의 공급 차질은 주유소들이 앞다퉈 사재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반복했다. 그 증거로 최근 들어 경유 주문량이 40% 가까이 늘었다며, 100원을 카드 할인해주는 SK에너지와 달리 GS칼텍스는 공급가를 낮춰준 방식을 택했기 때문에 주유소들이 기름을 빨리 달라 아우성이라는 것이다.

해당 기업이 부인하는 사실을 제보자의 말만 듣고 기사로 쓸 수는 없는 노릇. 이곳저곳 취재를 시작했다. 결국 현재 GS칼텍스 여수공장 생산시설 일부가 고장나서 가동을 멈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장은 완전 정상 가동이라던 GS칼텍스 측, 불과 30여분만에 입장을 번복했다. 공장에 알아본 결과 일부 시설이 가동중단 상태라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정말 몰랐던 건지, 취재에 들어가자 뒤늦게 인정하자 결정한 건지 그 부분은 판단 유보다.

고장을 일으킨 설비는 두 가지. 11일부터 중질유 분해시설이 문제를 일으켰고, 18일에는 경유 탈황장치가 고장을 일으켜서, 각각 45만 배럴과 35만 배럴, 모두 80만 배럴의 등유와 경유가 생산되지 못했다. GS칼텍스의 수출과 내수 물량 합쳐 하루 경유 생산량이 19만 배럴이니까 생산 차질을 빚은 양이 얼마나 많은 건지 알수 있다.

결국 GS칼텍스는 공급 차질이 계속되자 한국석유공사가 보유하고 있는 정부 비축유 87만 배럴을 긴급 임차해서 다음주부터 주유소에 공급하기로 했다. 이래도 공급 중단이 주유소만의 원인이라고 주장할 것인지 궁금하다. 가격 인하 종료를 앞두고 일부 사재기도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일부 공급 중단까지 가져온 사태에 공장 가동이 열흘 넘게 중단된 사실이 중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 열흘 넘게 '쉬쉬' 했나?

취재 중에 드는 의문은 왜 공장 동 중단 사실을 비밀에 부쳤을까 하는 점이다. 공장에서는 사실 설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다시 수리하고,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을 세우고 그런 일들이 반복된다. 이번 일도 일부 라인에서 문제가 발생했고, 수요도 늘어나는 등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쳐 차질이 빚어졌다고 했다면 이렇게 파장이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GS측은 주유소들이 부도덕하다 열을 올리며 문제를 지적했다. 주유소 탓으로 돌렸던 강도가 컸던 만큼 열흘 넘게 자신들의 과실 사유는 싹 덮어버리려 했던 의도가 불순했다는 의심과 비판도 커질 수 밖에 없다.

정유업계에서는 GS칼텍스가 '고도화 설비' 최고 수준을 가장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 때문에 문제를 인정하기 꺼렸던 게 아닐까 해석하고 있다. GS칼텍스는 지난달 12일 여수공장에서 하루 6만 배럴 생산 규모를 가진 제3 중질유분해시설 준공식을 갖고 동시에 2013년 완공 목표인 제4 중질유분해시설 기공실을 가졌다.

고도화시설 4기가 완성이 되면 GS칼텍스는 국내 최대 고도화 능력과 고도화비율(35.3%)를 갖추게 된 것이라고 자부심을 숨김 없이 드러냈다.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은 고도화시설에 상당한 애착을 갖고 수조 원의 돈을 투자하면서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탄소 배출을 줄이는 녹생성장의 기술이자 수출 통해서 국가 경제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소신을 강하게 피력해온 바 있다. 그런 강한 자부심 때문에  일부 공장 고도화시설이 망가져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는 소식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싶었을 수 있다는 게 업계에 도는 얘기다.

또 GS칼텍스 관계자는 "현재 고치는 작업을 벌이고 있고, 조만간 정상화될 줄 알았다. 오래 갈 줄 몰랐다"라고 밝혀 수리를 빨리 끝내면 모르는 채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고 결국 국가에 기름을 빌리는 사태까지 발생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정유업은 IT업종 못지 않은 수출 기여도를 뽐낸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원유를 들여와 고도화설비를 통해 휘발유, 등유, 경유, 중유를 뽑아내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해서 상당한 양을 외국에 되팔고 있다. 우리나라 정유사들의 고도화설비는 원유가 넘쳐나는 산유국들도 부러워하는 상당한 수준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그럴수록 투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문제가 생기면 있다고 인정하고 고치고 재발을 막으면 될 일이다. 굳이 꼼수를 부려 오해를 사고, 시장 불신을 키우는게 더 문제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