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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부실감사·분식묵인…회계법인 책임없나? ①

검찰과 금융당국, 회계법인 '정조준'

부산저축은행 비리 사건을 계기로 허술한 회계감사 관행에 대한 비판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저축은행의 엉터리 거짓 회계장부를 제대로 살피지 않고 '적정' 의견 도장을 찍어준 회계법인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 감사만 제대로 했어도 부정을 조기에 적발할 수 있었고,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감독 당국 못지 않은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저축은행들, 해당 회계법인 거의 대부분이 이들에 대해 지난해 회계년도에 감사 결과를 '적정'이라고 냈다. 부산저축은행에 대해서는 심지어 영업정지 처분 나흘 전에도 '적정' 감사 의견이 나왔다.

검찰도 회계법인들이 자신들의 본연의 업무를 망각하고, 저축은행의 분식 회계 등을 제 때 적발하지 못해 부실을 눈덩이처럼 키웠다는 점에서 회계법인의 잘못이 간단치 않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검찰은 부산저축은행 부실을 눈가림식으로 감사한 회계법인을 형사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각종 불법 행위를 회계사가 묵인한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보해저축은행을 감사한 회계법인에 대해 압수수색에 들어간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금융감독 당국도 강도 높은 대안을 마련중이다. 이번 사태의 공범으로 낙인 찍힌 감독기관으로서 명예 회복을 해야 한다는 절박함도 작용했다는 분석인데, 앞으로 저축은행 분식회계 등 불법 사항을 알아내지 못한 회계법인은 다른 금융기관 감사도 맡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사실상 영업정지'효과가 있는 강도 높은 제재책이다.

삼화저축은행 등 저축은행 예금 피해자들은 금융당국 뿐 아니라 저축은행을 감사한 회계법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제기돼 형사 처벌과 별도로 민사상 응징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피해자들은 "몇 년간 감사하면서 분식 회계를 몰랐다는 게 말이 안 된다. 회계법인이 계속 회계를 맡으려고 부산저축은행과 공모했을 것"이라고 연루설을 주장하고 있다. '부실감사', '눈먼감사' 논란은 저축은행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태양광 선두주자로 주목받다가 퇴출당한 네오세미테크라는 회사. 2008년 인덕회계법인으로부터 '적정' 감사 의견을 받아 우회상장을 했지만, 새로 감사를 맡게된 대주회계법인이 '의견거절'을 내버리자 상장폐지 절차에 들어가게 된 것. 투자자들은 A 회계법인 결과보고 투자했다가 B 회계법인 결과에 뒤통수를 심하게 맞았지만 어디에 하소연조차 할 수 없다.

왜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가.

회계법인의 부실 감사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엄격히 묻지 않아왔기 때문이다. 현재 회계법인에 법적 책임을 물으려면 '고의성' 을 입증해야 한다. 즉 회계사가 부실을 발견하고도 눈감아주거나 불법에 같이 공모한 정황이 있어야 한다는 뜻. 회사 측이 작정하고 장부를 조작했거나 분식 회계에 나섰다면 회계법인에 '단순과실'이 적용돼 책임론에서 대부분 벗어난다.

이런 맹점 때문에 회계법인에 강도높은 처벌이 이뤄지지 않아 결과적으로 시장에 큰 교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2006년 이후 19개 회계법인이 부실 감사로 징계를 받았지만 모두 해당 저축은행 감사를 1~3년 제한받는 처분에 그쳤던 것도 그 때문이다.

회계법인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회사측이 작정하고 속이는 회계장부에 대해선 자신들도 발견해내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회계법인들은 수수료 수입을 올리려고 기업을 상대로 치열한 수임경쟁을 벌인다. 대기업 회계감사는 경쟁이 더 치열하다. 그러다 보니 회사 측 입장에서 감사를 진행하거나 때로는 분식 회계를 묵인하고 때론 분식 회계에 직접 가담하거나 조언하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것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미국 에너지 대기업 엔론이 회계 부정으로 파산했을 때 엔론의 회계 부정을 눈감아줬던 세계적인 회계법인 아더 앤더슨도 공중분해되면서 다시 한번 회계 부정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회계 부정, 부정 감사는 시장경제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중대범죄라는 사실, 다시 한 번 인식해야 할 때다. 미국 업계에 회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던 엔론 사태의 전말, 다음 취재 파일에서 상세하게 짚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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