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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명태, 왕의 귀환을 기다리며...

[취재파일] 명태, 왕의 귀환을 기다리며...
“아, 인터뷰 싫다는데 왜 자꾸 귀찮게 해...?”
“방송에서 와서 찍어 가면 나오던 것도 안 나온단 말야... 빨리 가 ~ ”

지난 13일 강원도 고성군 아야진항. 기자의 취재 요청에 어민들 대다수는 이런 반응을 보였다. 거짓말 조금 보태 ‘집나간 자식 보다 더 애타게 기다렸다’던 명태가 다시 돌아와 그물에 잡히기 시작한 그 기쁜 날, 어민들은 야박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야박했다기 보다는 간절했다. “방송 카메라와 물고기의 말도 안 되는 상관관계”조차 강하게 믿을 만큼 절박했다. 10여 년 만에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 명태가 다시 사라지지 않을까? 반가운 내색조차 불경스럽다고 여겨 마음과 행동 가짐에 조심, 또 조심을 기했다.

강원도 고성군 일대에 이 달 초부터 명태가 조금씩 잡히기 시작했다. 어린이날을 전후해서 명태 전용 그물도 아닌 대구와 가자미 잡이용 자망에 몇 마리가 걸리더니 며칠 뒤부터는 100~200마리씩 잡혔다. 물론 어선 한 척 당 치면 수십 마리밖에 되지 않을 만큼 적은 양이지만 명태가 다시 잡히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어민들은 크게 반기고 있었다. 한꺼번에 수십 마리의 명태가 그물에 잡힌 게 무려 10여 년 만이다. 그 것도 명태의 주철인 겨울이 아닌 봄철에 잡혔으니 어민들이 얼마나 반갑고 설레었겠는가? 열흘 정도 어획량이 500kg을 넘었다. 마릿수로 치면 1천 마리가 조금 넘는 숫자. 금액으로도 얼마 안 되지만 어민들은 그만큼 명태를 간절히 기다려왔다.

강원도 고성은 우리나라 명태의 본산이나 다름없다. 남북으로 분단돼 있는 현실에서 고성은 남한의 최북단에 위치해 한류성 어종인 명태가 가장 많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명태는 1930년대에 15만 톤이 넘게 잡혔다. 그 때를 정점으로 조금 줄기는 했지만 80년대까지도 풍성하게 잡혔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조금씩 감소세를 보이기 시작해 고성지역에서는 86년 어획량이 2만 톤까지 떨어졌고, 이후 수 천 톤 단위로 떨어졌다.

2000년 처음으로 931톤으로 떨어지면서 백 단위 톤까지 감소했다. 다시 2000년대 중반이 되면서 더욱 급감해 2004년부터는 수십 단위 톤으로, 다시 2007년부터는 연간 어획량이 아예 1톤에도 미치지 못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25년 만에 2만분의 1까지 급감했으니 어민들의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버릴게 하나 없는 명태 덕에 다양한 일거리가 있었지만 명태가 잡히지 않으면서 어촌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계속된 침체로 인구는 감소했다. 일자리 감소와 인구 감소는 서로 악순환하는 반면 기름값은 크게 올라 어민들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명태는 국민들의 선호도나 소비량에서 생선 가운데 단연 으뜸이어서 국민생선의 위치에 있었다. 명태가 많이 잡히기도 했지만 많이 먹어도 질리지 않는 담백한 맛, 거기에 버릴 것 하나 없는 명태의 쓰임새 때문이기도 했다. 명태는 고기뿐 아니라 내장과 알, 껍질까지 모든 게 음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명란과 창란, 알탕, 명태 식해를 포함해 명태를 이용해서 만들 수 있는 요리가 3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과거 함경도에서는 명태 내장의 기름을 이용해 등잔불까지 켰다고 하니 정말 버릴게 없는 물고기다.

그 쓰임새만큼 명태는 다른 생선들이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별칭을 가지고 있다. 선도 상태에 따라서 생태, 선태, 동태. 크기에 따라서 대태, 중태, 소태, 노가리(명태 새끼). 건조 상태에 따라서 북어(건태), 바람태(바람에 널러 말린 것), 코다리 (코를 줄로 끼워서 말린 것), 반건태(반쯤 건조한 것), 깡태(딱딱하게 말린 것) 황태. 잡는 시기에 따라서 동태, 춘태, 추태. 잡는 방법에 따라서 망태(그물로 잡은 것), 조태(낚시로 잡은 것). 잡히는 장소에 따라서 강태(강원도), 지방태(동해안 연안), 원양태(원양선이 잡은 것)...  가히 생선의 왕이라 부를 수 있다.

실제로 2008년 기준으로 명태의 연간 소비량은 35만 톤으로, 27만 톤인 오징어(2위)와 16만 톤인 고등어(3위)를 크게 웃돌고 있다. 국내 명태 어획량이 1톤에도 못 미치기 때문에 국내 소비량 전량은 수입이나 원양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명태는 왜 동해안에서 사라진 것일까? 전문가들은 명태 급감의 원인을 크게 3가지로 보고 있다. 우선, 남획을 주된 이유로 들 수 있다. 과거 ‘노가리가 명태 새끼냐 아니냐’를 놓고 지루한 논쟁이 벌어졌을 정도로 우리는 명태의 생태에 대해 무지했다. 이 시기 명태 치어는 노가리라는 전혀 다른 종으로 불리며 대량으로 남획돼 선술집이나 호프집에서 안주로 활용됐다. 75년부터 97년까지 어획된 명태의 55%가 소형어였고, 특히 80년대 초반까지 70%이상 소형어가 어획됐다는 게 농림수산식품부의 자료다. 그렇게 많은 치어를 잡았는데 어찌 개체수가 줄지 않을 수 있을까?

여기에 환경변화도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 1968년부터 2003년까지 한반도 주변 해역의 평균 수온은 섭씨 0.7도 증가했다. 명태가 좋아하는 수온대인 섭씨 3~5도인 곳을 찾아 더 깊은 수심이나 북쪽으로 이동했거나 회유경로를 조금 바꿨을 수 도 있다. 북한 해역에서의 강도 높은 조업도 명태 자원 감소의 한 원인으로 추정된다. 함흥 앞바다는 예로부터 명태의 주 산란장으로 유명한데 최근 중국 어선들은 거의 연중 북한 해역에서 조업하며 동해안 어민들을 애태우게 하고 있다.

급감한 국민 생선 명태의 자원 회복을 위해 정부가 뒤늦게 2009년부터 뛰어들었지만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 어미명태로부터 알을 채취해 인공수정을 시킨 뒤 치어를 방류하려는 계획이었는데 어민들이 알을 채취할 수 있는 성숙어를 신고하면 시가의 10배에 해당하는 현상금을 내걸었다. 직접 어선을 타고 명태 포획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어민들의 신고는 3회에 그칠 만큼 명태는 얼굴 보기조차 힘들었고, 그나마 3번의 신고도 모두 명태가 죽은 상태여서 채란이 불가능했다. 어선을 타고 직접 바다로 나가서도 명태 확보는 불가능했다. 겨울마다 간간히 3~4마리씩 잡혀 항구로 들어오는 명태에서는 도저히 알을 구할 수 없었다.

현재로서는 명태가 스스로 다시 돌아오기를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 올 봄부터 강원도 동해안의 어획고가 급감해 지난해의 52% 수준에 그치고 있다. “잡을 물고기가 없다”는 푸념과 “30년 전에 사라진 보릿고개를 다시 겪는다”는 하소연이 어민들 입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그렇기에 아주 적은 양의 명태에 거는 어민들의 기대는 각별하고 절박하다. 다 크기가 작고 성숙하지 못해 채란은 불가능하지만, “조금씩 명태가 돌아오는 전조는 아닐까?” 어민들은 진정한 왕의 귀환을 간절히 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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