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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여행 중 사고 '나몰라라'

해외여행 중 사고 보상 약관 있으나 마나

[취재파일] 여행 중 사고 '나몰라라'

# 사고 내고 나몰라라

지난해 12월말 부부 동반으로 인도 여행을 떠났던 권점규 씨. 퇴직 후 큰 맘 먹고 동료들과 함께 떠난 여행이 악몽으로 남았습니다.

힌두교 성지 바라나시를 구경한 뒤 카주라호로 이동하던 버스가 자전거를 들이받고 급정거하면서 권 씨가 차 안에서 나뒹굴면서 큰 부상을 당한 겁니다.

현지인이 몰던 버스는 사고를 내고도 도주하다가 1시간 반쯤 뒤 현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이후에도 시간을 끌면서 버스는 호텔에 사고 6~7시간 뒤인 밤 10시쯤 도착했습니다. 그 사이 권 씨의 남편은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자고 요구했지만 여행사는 이런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가까운 곳에 병원이 없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이후에도 여행사는 권 씨를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고 나머지 나흘간의 일정을 강행했습니다. 권 씨는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느라, 권 씨 남편은 권 씨를 보호하느라 나머지 일정은 여행이 아닌 고통의 시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권 씨는 귀국하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결과를 듣고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갈비뼈 3개가 부러져 전치 6주의 진단이 나온 겁니다. 이 때부터 권 씨와 여행사인 하나투어의 지루한 싸움이 시작됩니다.

권 씨는 여행사의 잘못으로 사고가 났고, 여행사의 무책임한 대응으로 여행을 망쳤으며 제 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며 여행 경비의 전액 환불과 치료비, 위자료 등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여행사는 여행 경비의 50%만 보상해주고, 치료비나 위로금도 권 씨가 예상한 정당한 액수에 턱없이 못미쳤습니다.

# 약관, 갈등 해결은 커녕 갈등의 시작

공정거래위원회가 만든 국외여행 표준 약관이라는 게 있습니다. 국내 여행업체들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약관인데, 14조에 아래와 같이 적시돼 있습니다.

"현지여행업자 등의 고의 또는 과실로 여행자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여행사는 여행자에게 손해를 배상해야한다"

번듯한 문구이긴 하지만, 이 약관만으로 갈등이 원만하게 해결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치료비 산정 기준이나, 위로금, 여행 경비는 얼마나 환불할지에 대한 기준이 없어 사고를 당한 피해자는 여행사와 길고 긴 줄다리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약관에는 분명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돼 있지만 손해를 어떻게 얼마나 보상한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여행사 맘대로 보상액을 정할 수 있습니다. 아예 약관을 지키지 않아도 여행사에게 돌아가는 불이익은 없습니다.

여행사는 거대 기업인 경우가 많고 피해자는 힘없는 개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여행사가 제시한 보상 액수가 못마땅할 경우 소송을 제기해야 하지만 대다수 개인은 배 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상황을 원치 않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보상을 수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 여행업법 제정, 약관 구체화, 특별 보상제도 도입

현재 여행업계에서는 여행업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현재 여행과 관련한 각종 규제와 진흥책은 관광진흥법으로 함께 다루고 있는데, 여행 산업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여행업법을 따로 만들어 보다 구체적인 규율과 의무를 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선언적인 문구만 내건 표준 약관을 좀 더 구체화해 보상과 관련한 소모전을 줄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합니다.

여기서 일본 여행업계가 채택한 특별보상제도가 눈길을 끕니다. 일본 여행업계는 특별보상제도를 만들어 해외 여행 때 불의의 사고로 죽거나 장애를 입을 경우 그 정도 별로 보상금과 위로금 액수를 못박아 놨습니다. 이를테면 해외 여행 중 사고로 다쳐 1주일 이내를 입원하면 4만 엔, 1주일 이상 90일 미만을 입원하면 10만 엔을 입원 위로금으로 지급하도록 약관에 못박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한 해 1천200만 명의 국민이 관광 등 목적으로 출국하는 여행 대국입니다. 하지만 여행 소비자 권익 측면에서는 아직 갈 길이 먼 게 사실입니다.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를 풀고, 재충전을 위해 떠난 여행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일도 없어야겠지만, 혹시 그런 일이 있더라도 소비자가 제대로 된 보상을 받는 시스템이 하루 빨리 구축돼야만 진정한 여행대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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