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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인기 있는 책은 "언제나 대출중"

필요한 책 없는 대학 도서관

[취재파일] 인기 있는 책은 "언제나 대출중"

'미친 등록금'이 화제입니다.

한 해 천만원에 가까운 등록금 때문에 매일 아르바이트를 하고, 제대로 된 밥 대신, 대충 끼니를 때우고, 대출에 졸업 전부터 빚더미에 올라앉는 대학생이 숱합니다.

('그러려면 대학 가지 말든지' 혹은 '장학금 타면 되지'라는 반론은 사양하겠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 졸업장'을 포기하는 데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데다, 장학금 수혜자는 한 학과에서 손에 꼽을 정도인 게 현실이니까요.)

등록금 마련에도 허리가 휘는 학생들에게 한 권에 몇 만 원씩 하는 비싼 대학 교재들은 또 얼마나 부담이 되겠습니까. '책 없는 대학 도서관' 기사는 이런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대학 졸업한 지 10년이 넘은 저로서는, 요즘 대학생들이 어떤 책을 많이 빌리는지, 교재로는 어떤 책을 쓰는지 가늠이 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학 세 곳의 학생 세 명과 함께, 해당 학생들이 직접 듣고 있는 과목에 필요한 책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경제학을  전공하는 학생과 함께 7권을 찾아봤지만, 대출 가능한 건 3권 뿐이었습니다.

'미시경제학'(법문사)- 대출중
'Calculus'(Anton, 8판)- 비치 안됨.
'맨큐의 경제학'- 대출중
'경제 경영 수학 길잡이'- 대출중
'한국의 경기변동: 이론과 실제'-대출가능
거시경제학- 대출가능
수치 응용수학- 대출가능

또 다른 학생의 경우(위 학생과는 다른 학교입니다) 재무관리 수업에 쓰이는 'essential of  corporate finance' 는 5, 6판의 경우 대출중이고 최신판인 7판은 아예 없었습니다. 경영정보 시스템 수업의 'using MIS' 역시 2판은 대출중이고, 최신판인 3판은 없더군요.

또 예나 지금이나 경제학과 전공 학생은 물론이고, 교양으로 경제학을 듣는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맨큐의 핵심 경제학' 역시, 최근 몇 년 사이 나온 것들은 모두 대출중이었습니다.

방송을 보신 뒤, "기자는 전공 서적을 찾아본다고 했는데, 화면에는 왜 교양서적만 나오냐"는 질문을 게시판에 올려주신 분도 계셨는데요, 저희가 찾으려 했던 책들은 서가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전공'과 '교양'을 구분해서 "이건 전공책, 이건 교양책"이라고 나누는 건 좀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같은 과목도 특정 학과의 '전공'으로 개설되기도 하고, 불특정 다수를 위한 '교양'으로 개설되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제 경우에는 관심 있는 다른 학과의 전공과목을 '교양'삼아 듣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이 많이 찾는 책, 인기 있는 책이 없는 건, 학교가 책을 비치해 놓는다 해도 2~3권이거나, 발빠르게 필요한 책을 구비하지 않기 때문인데요, 각 대학들이 도서관 자료(종이책, 전자책, 학술저널 등 포함) 구입에 쓰는 돈은 한 해 예산의 극히 일부분이었습니다.

몇 곳만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가나다順)
먼저 4년제 대학, 서울대를 빼고는 대부분 1% 안팎입니다.

건국대 1.1%
경남대 0.7%
경원대 0.5%
경희대 1.5%
고려대 1.2%
단국대 0.9%
서강대 1.4%
서울대 3.2%
성신여대 0.5%
연세대 1.2%
이화여대 1.1%
조선대 0.9%
청주대 0.9%

(전국 대학의 모든 수치는 인터넷 '대학정보공시센터'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문대는 더 심해 대부분 0.1~0.2% 정도입니다. (물론, 전문대는 등록금이 4년제보다 적고,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책이 다를 수 있겠지만, 예산의 0.1~0.2%는 학생 1인당 만원도 안되는 돈입니다.)

취재진이 찾아갔던 광주의 한 전문대 관계자는 툭 털어놓고 "학교 건물을 새로 짓다 보니, 도서관에 돈 쓸 여력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서는 "통계에 전자책이 빠져서 그런 거다. 우리 학교는 전자책 쪽으로 많이 사고 있다"고 했지만, 통계는 전자책도 포함된 수치입니다. 

전,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마인드라고 생각합니다.'학생들 책을 왜 학교가 책임져야 하냐'는 생각 말입니다. (실제로 캠퍼스에서 만난 대학생 중 일부도 "책을 사면 되지, 왜 도서관에서 빌려요?"라고 취재진에게 반문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대학은 사실상 입시에 얽매여 보내는 중고교 생활을 끝내고,  비로소 넓고 깊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대학 도서관은 학생들이 책값 걱정 없이, 필요한 책을 찾아서 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등학생처럼 지정된 교과서와 몇 가지 참고서로 공부하는 게 아니라, 이 책에서 저 책으로 가지치기 하듯 탐구해 가는 대학 공부의 특성상, 필요한 수많은 책을 학생이 제 돈 주고 다 사기란 불가능하니까요. 

학습 수요가 많은 책을 그만큼 많이 확보하고, 비싼 원서는 더더욱 앞장서서 비치해 준다면 학생들의 어깨가 훨씬 가벼워지지 않을까요. 학생의 이 인터뷰처럼 말입니다.(방송에는 나가지 못했던 인터뷰입니다.)

"책을 사고 싶은 사람도 있고, 빌리고 싶은 사람도 있겠죠. 최소한 빌리고 싶은 사람이 빌릴 만큼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게 좀 안타깝습니다."

당초 기사에는 있었지만, 방송 당일 뉴스 시간이 넘쳐 안타깝게 편집된 참여연대 안진걸 민생희망팀장('미친 등록금의 나라' 공동저자)은 "등록금 천만 원 시대, 지난 해 기준으로 적립금 10조 원을 쌓아 놓은 대학들이 건물 짓고 외양 가꾸는 데만 신경쓸 게 아니라, 교육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인기 있는 책은 많이 좀 사달라"는 요구가 지나친 걸까요?

'미친 등록금'의 나라에서, 이 정도는 누려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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