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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정당방위 8계명

남의 싸움에 끼어들 때 알아둬야 할 8가지

[취재파일] 정당방위 8계명

한밤에 방송사에 걸려오는 제보 전화 가운데 빈번한 것 중의 하나는 "남의 싸움 말렸을 뿐인데, 괜히 경찰서까지 같이 끌려왔다"는 하소연입니다. 이런 억울함을 호소하는 분이  자주 있다 보니 사실 야근 기자들이 일일이 취재할 수 없는 정도이지요.

우리 사회에는 은연중에 "싸움은 말리지도 참견하지도 말아야 한다"거나 "맞는 게 상책"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남의 싸움에 끼어들어봤자 좋을 것 없다는 건데 여기엔 우리 경찰의 오래된 업무 관행에도 원인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치고받고 싸웠다고 한다면 경찰은 십중팔구 두 사람 모두 '폭력' 혐의로 입건해왔습니다. 왜 싸움이 시작됐는지, 누가 먼저 폭력을 휘둘렀고 원인을 제공했는지 등을 따지는 게 당연하지만 일단 입건해놓고 보는 게 관례였습니다.

이렇다보니 먼저 폭력을 휘두르는 상대방에 맞서 싸우거나, 남의 싸움을 말리다가 억울하게 파출소 신세를 지는 사람들이 많았던 겁니다. 자연히 남의 불의를 보고도 이를 제지하기보다 조용히 자리를 피하는 사람이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경찰이 이런 관행을 고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무턱대고 입건을 하기 전에 '정당방위'에 해당하는지 따지겠다는 겁니다. 사실 '정당방위'는 형법이 보장하는 내용으로, 정당방위가 인정되면 처벌받지 않습니다.

경찰청은 '정당방위'에 해당하는 요건 8가지를 정해 일선 지방경찰청에 내려보냈습니다. 앞으로 파출소에 끌려가더라도 정당방위에 해당하면 죄를 묻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럼 정당방위는 어떤 경우에 성립할까요.

1. 침해 행위에 대해 방어하기 위한 행위일 것 = 여기서 침해 행위란 남이 시비를 걸거나 선제 공격을 해오는 경우라고 보면 됩니다. 또 침해의 대상이 꼭 자기 자신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누군가 '나에게' 또는 '제3자에게' 시비를 걸거나 선제 공격을 할 때 나 스스로 방어하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제3자를 지키기 위한 행위이면 됩니다.

2. 침해 행위를 도발하지 않았을 것 = 남에게 먼저 시비를 걸어서 그 사람의 공격을 유발한 뒤에 자기가 그 사람에게 물리력을 사용하는 것은 정당방위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3. 먼저 폭력 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 = 먼저 주먹 들지 말라는 얘기죠.

4. 폭력 행위의 정도가 침해 행위의 수준보다 중하지 않을 것 = 상대방이 내 멱살을 잡고 욕을 했는데, 내가 주먹으로 얼굴을 때린다면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하겠죠.

5. 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 = 상대방이 주먹으로 때렸는데 내가 흉기나 둔기를 들면 안 된다는 겁니다. 다만 상대방이 흉기를 들었을 경우, 자신도 도구를 사용하는 정도는 정당방위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6. 침해행위가 저지되거나 종료된 후에는 폭력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 = 누군가 자신을 괴롭히다가 그만둔 상태라면 이쪽도 폭력을 써서는 안 됩니다.

7. 상대방의 피해 정도가 본인보다 중하지 않을 것 = 앞의 6가지를 다 만족한다고 해도, 상대는 전치 3주, 나는 전치 2주 나왔다면 정당방위 인정 못받습니다.

8. 치료에 3주 이상을 요하는 상해를 입히지 않았을 것 = 아무리 정당한 방어라고 해도 상대가 전치 3주 이상 나오면 절대로 정당방위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막상 8가지를 적어놓고 보니, '정당방위' 인정받기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의 시비나 공격에 맞서는 긴박한 상황에서 위 8가지를 숙지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불합리한 관행을 뜯어고치려는 경찰의 노력은 높이 평가할 일이 분명하지만, 지침 만들어 내려보내는 걸로 끝나는 것은 아닌지, 실제 현장에서 제대로 반영되고 적용되는지 꼭 지켜봐야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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