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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100년 만의 폭설? 최대 폭설은?

[취재파일] 100년 만의 폭설? 최대 폭설은?

지난 겨울 내내 강원도 동해안 지역은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다. 지난해 11월부터 2월 9일까지의 강수량은 평년대비 27% 수준으로 1971년 이후 40년 만에 가장 적었다. 건조일수는 역대 최고였다. 강릉으로만 국한시켜 보면 같은 기간의 강수량이 1942년 이후 60년 만에 가장 적었다. 올 1월 4일부터 2월 9일까지 무려 37일 동안 비나 눈 한 방울도 오지 않는 무강수일이 계속됐다. 그러나 2월 10일부터 상황은 급반전됐다. 

약간의 빗방울과 눈송이가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11일 새벽부터 12일 오후까지 폭설이 쏟아졌다. 14일에도 폭설이 이어져 2월 10일부터 14일까지 하루 하루 내린 눈의 양을 산술적으로 합치면 강릉는 108cm, 동해는 무려 134.7cm에 달했다. 기상관서가 없는 삼척은 비공식적이지만 174cm였다고 삼척시가 밝혔다. 단순히 쌓여 있었던 기준으로 봐도 강릉에는 82cm가 동해에는 102.9cm까지 쌓여 있었다.

어마어마한 눈 폭탄에 피해가 속출했다. 12일 새벽 동해안 7번 국도 양양과 삼척, 울진 구간에서 차량 수백 대가 폭설에 고립됐다. 운전자들은 춥고 긴 밤을 차에서 보내거나, 주유소와 숙박업소를 찾아서 눈길을 걸어야 했다. 강원 동해안에서만 18개 지역 1200여 명의 주민들이 고립됐고, 7개 시군 180여 개 노선에서 버스가 결행했다. 주택 14동과 비닐하우스 800여 동, 축산시설 87동, 공장건물과 학교 체육관 등이 무너져 현재까지 248억 원의 재산피해가 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100년 만의 폭설'이란 제목으로 모든 방송과 신문이 눈 피해를 보도했다.

그러나 일부 시청자들, 엄밀히 말하면 강원 동해안 주민들의 항의가 많았다. 강원 동해안에는 가깝게는 2005년 3월에도 1미터 가까운 폭설이 쏟아졌고, 1990년 2월에도 1m 30cm가 넘는 폭설이 내린 적이 있기 때문에 '100년 만의 폭설'이란 표현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5년 동해시에는 '적설'이 90cm였고, 강릉도 1990년 2월 1일 138.1cm의 적설을 기록한 적이 있다. 이를 근러로 본다면 이번 폭설은 '100년 만의 폭설'이 아닌 셈이다. 왜 '100년 만의 폭설'일까?

               



이 표현은 강릉의 '일 최심 신적설'을 기준으로 나온 표현이다. '일 신적설'은 하루 동안 내린 눈을 말하며, '최심'이란 가장 깊었을 때의 값이다. 즉, 하루 동안 내린 눈 가운데 가장 깊었을 때의 값이 '일 최심 신적설'이다. (눈은 스스로의 무게에 눌리거나 온도가 올라가 녹기 때문에 눈이 계속 내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깊이가 줄기도 한다.)

지난 2월 11일 0시부터 24시까지 강릉에 내린 눈의 높이 가운데 가장 높았던 최심 신적설은 77.7cm였는데 이 값은 1911년 강릉에서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높은 값이다. 그래서 '극값'이라고 부른다. 강릉의 기존  '최심 신적설 극값'은 1990년 1월 31일 67.9cm다. '적설'이란 표현도 있는데 이는 눈이 단순히 쌓여 있는 깊이를 나타낸다.

이 기준으로 본다면 강릉의 극값은 1990년 2월 1일 138.1cm다. 하루 뒤인 1990년 2월 2일과 하루 전인 1월 31일에도 '적설 극값'기준으로는 역대 3위와 4위에 기록돼 있다. 이는 그 당시에 며칠에 걸쳐 많은 눈이 내렸고, 오랫동안 많은 눈이 쌓여 있었다는 의미다. 1990년 폭설을 기억하는 시청자들 입장에선 이번 눈에 언론이 붙인 '100년 만의 폭설'이란 표현이 잘못됐다고 생각했을 법도 하다.

'신적설'과 '적설'은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신적설'은 하루에 새로 내린 눈의 양이고, '적설'은 내린 시기와 상관없이 관측 현재 쌓여 있는 눈의 깊이다. '적설'이 생활의 불편이나 건설현장의 작업 여건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다면 '신적설'은 눈이 얼마나 집중적으로 왔는지 설명해준다.

같은 1미터의 적설도 일주일 동안 내린 것과 하루 만에 내린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번 폭설의 '최심 신적설 극값'을 경신했다는 의미는 그 만큼 단기간에 폭설이 쏟아졌다는 의미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변화는 충격을 동반한다. 그동안 웬만한 폭설에도 피해가 없던 동해안에 이번 폭설로 막대한 피해가 생겼다. 2월 11일 밤부터 12일 새벽 사이에는 시간당 10cm의 눈이 2-3시간씩 쏟아졌다. 게다가 내린 눈도 워낙 많아 피해가 불가피했다.

이번 폭설은 특히 습설이어서 피해가 컸다. '습설', 말 그대로 습기를 머금은 눈인데 마른 눈인 '건설'에 비해 무게가 최대 3배 가까이 나가기 때문에 피해가 크다. 가로 1미터, 세로 1미터, 높이 1미터로 눈이 쌓였을 때 '건설'은 100kg 정도. 하지만 '습설'은 300kg까지 나가기도 한다. 눈이 내릴 때도 피해가 크지만 눈이 그친 뒤에도 피해는 계속됐다. 삼척의 중앙시장 비가림막 붕괴가 대표적이다.

               


폭설은 14일 마지막으로 모두 그쳤다. 이틀 동안 낮 기온이 영상 5-6도까지 오르면서 눈이 녹기 시작했다. 녹은 눈의 양만큼 무게가 가벼워졌지만 구조물은 이틀 뒤인 16일 오후 붕괴됐다. 눈이 녹기 전에는 눈의 하중이 아치형 구조물에 골고루 분산됐지만 눈이 녹기 시작하면서 눈 녹은 물과 눈이 곡면을 따라 미끄러지면서 가장자리로 쏠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조물의 피로가 누적된 것도 한 원인으로 추정된다. 이 구조물 붕괴 뒤 다시 이틀 뒤에도 동해의 중앙초등학교와 묵호여중의 체육관이 붕괴됐다. 폭설이 그친 뒤에도 지붕의 눈을 빨리 치워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눈이 내린 것은 언제, 어디, 얼마나일까? 바로 울릉도인데, 1955년 1월 20일 울릉도에는 하루 동안 무려 150.9cm의 눈이 내렸다. 2위와 3위 값도 역시 울릉도다. 울릉도 이외 지역으로는 대관령인데 '일 최심 신적설 극값'으로 치면 4위에 해당한다. 1992년 1월 31일 대관령에는 하루에 92cm의 눈이 내렸다.

'최심 적설'기준으로 하면 어떨까? 이 역시 울릉도가 극값을 보유하고 있는데 62년 1월 31일 울릉도에는 무려 2m 93.66cm의 눈이 쌓여 있었다. 2위부터 5위 값 역시 62년 1월 30일, 27일, 28일, 2월 1일 울릉도가 보유하고 있다. 1962년 당시 울릉도에는 며칠에 걸쳐 어마어마한 폭설이 내렸다는 의미다. 울릉도를 제외한 지역으로는 역시 대관령인데 1989년 2월 26일 대관령에는 1m 88.8cm의 눈이 쌓여있었던 적이 있어 그나마 이름값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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