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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타짜' 택시의 위험한 질주

[취재파일] '타짜' 택시의 위험한 질주
지난달 말 서울의 한 택시회사 직원 가족을 자처하는 분이 방송국에 하소연을 해왔습니다. 남편이 회사에서 도박에 빠진 것 같아 걱정이라는 제보였습니다. 택시기사들이 도박을 한다고 해봤자 얼마나 크게 하겠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설명을 들을수록 그게 아니었습니다.

사실 확인에 나서기로 했는데 문제는 현장을 포착하는 일이었습니다. 택시기사들이 도박을 한다더라는 전언만으로는 기사화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수습 한세현 기자가 며칠을 공들인 끝에 회사 내부 고발자를 섭외했습니다. 도박의 폐해를 너무나 잘 아는 분이어서 선뜻 취재에 협조했습니다.

1월27일과 2월10일 두 차례 택시 회사를 찾았습니다. 믿기 힘든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택시회사 안의 기사 휴게실이 거대한 도박장으로 쓰이고 있던 겁니다. 테이블 마다 화투판과 카드판이 벌어지고, 판돈도 만 원짜리 뭉칫돈이 오갔습니다. 어떤 기사들은 5만 원권 지폐 다발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도박판은 자정 가까운 시간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계속됐습니다. 중간 중간 일을 나가는 기사도 있었지만, 아예 운행을 포기하고 도박에 매달리는 기사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 회사는 하루 약 12만 원의 사납금을 내도록 돼 있습니다. 열심히 운행을 해서 벌어들인 돈 가운데 그 정도를 회사에 내고 나머지를 자기 소득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도박에 빠진 기사들은 아예 도박판에서 사납금을 벌어가려고 한다고도 했습니다. 다행히 운좋아 돈을 따면 가능한 일이지만, 많은 기사들은 돈을 잃고 사납금 낼 돈이 없어 대출을 받는 실정이었습니다.

한 기사에게 물어봤더니 상태가 심각했습니다. 회사에선 일주일에 두 번 상습적으로 밤샘 도박판이 벌어지고 있으며 하루 수백만 원씩 따거나 잃는 사람이 많다고 했습니다. 요즘 케이블 TV에서 광고를 많이하는 대출업체에서 돈을 빌려 도박에 나서는 기사들도 많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회사 안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회사가 손을 놓고 있든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이런 자리를 주선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취재팀은 현장 취재를 모두 마친 뒤 회사를 직접 찾아가 회사의 해명을 들었습니다. 회사는 "이렇게 큰 도박판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고 했습니다. 다만 새벽 운행을 마친 기사들끼리 해장국 내기용으로 작은 규모의 도박을 하는 건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번 일을 계기로 직원들이 도박을 하지 못하도록 강력히 단속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백번 양보해 회사 말을 믿더라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밤샘 도박에 빠진 사람들이 보통 회사원도 아니고, 시민들을 실어나르는 택시기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기사는 "밤샘 도박으로 수백만 원을 잃으면 운전하기 싫어지니 과속과 불법 주행, 승차 거부를 하는 일이 잦아진다"고 증언했습니다. 도박이 승객의 안전과 직결됨을 시사하는 말입니다.

보도가 나간 뒤 회사는 다시 한번 도박을 하다가 적발되는 직원은 퇴사 조치하겠다고 알려왔습니다. 경찰과 서울시청도 자체적으로 택시회사들의 도박 관행을 점검하겠다고 전해왔습니다.

취재 중에 만난 한 택시기사는 "기사들의 도박 문제는 비단 한 회사에 국한된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직원들이 모이면 그런 유혹에 빠지기 쉬울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택시기사들의 인생을 망칠 뿐만 아니라 승객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기사들의 도박. 회사와 경찰, 지자체 모두가 매달려 근절시켜야 하는 중요한 사안입니다.

* 이 리포트의 취재와 제작에 한세현 수습기자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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