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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전통? 사람이 우선!

400년 전통? 사람이 우선!

위촌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위촌리. 주민 187가구에 주민 450여 명.

여느 시골처럼 노인들이 많이 사는 그저 그런 평범한 마을이다. 그렇지만 이 마을은 전국적으로 꽤나 유명한 마을이기도 하다. 2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K리그 프로축구단인 강원FC와 관련이 있다. 이 마을 주민의 20% 정도는 70세가 넘는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지난 2009년 창단한 강원FC의 열렬한 서포터들이시다. K리그 최고령 서포터즈를 자청하며 강원FC의 홈경기는 물론 전국에서 벌어지는 강원FC의 원정경기까지 빠지지 않고 응원 다니시는 열정적인 분들이다. 대형 관광버스를 전세내 음식까지 공동으로 준비해 갈 만큼 주민들끼리 사이 좋게 지내고 화합도 잘되는 부러워할만한 마을이다.

이 마을을 유명하게 만든 두번 째 이유는 400년 넘게 내려온 설 합동 세배 때문이다. 다른 마을보다 더욱 돈독한 주민 화합의 기본이 되는 전통이기도 한데, 이 마을 주민들은 매년 음력 정월 초 이튿날 오전, 마을 촌장에게 합동으로 세배를 올리는 전통이 있다. 마을의 최고령 어르신을 모시고 출향 인사들까지 마을회관에 모이면 150여 명이 넘는다고 한다.

합동 세배를 일컬어 도배(都拜)라고 한다. 말 그대로 모두 모여 (都) 절을 드린다(拜)는 의미이다. 이 마을 400년 전통의 시작은 조선 중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마을 출신이자 사헌부 감찰과 풍기 군수를 지낸  김상적(金尙績)의 아들인 김세록(金世錄)과, 함상헌, 이수근 등이 대동계를 조직하며 도배의 전통이 시작된다. 김상적의 호는 위촌(渭村)으로 바로 이 마을 이름이기도 한다.

당시 유행하던 향약을 본 떠 향촌 질서를 바로잡고 주민들간의 단합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향약의 규율 대신 주민화합이 강조됐고, 농촌사회에 맞춰 농삿일과 관련된 품앗이 조직과 관혼상제 때 상부상조의 기능이 강화됐다고 한다. 마을 어르신들은 6.25 전쟁 때에도 도배는 거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한다.  대동계가 조직된 이후 400년 넘게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올해 정월 초 이튿날인 지난 2월 4일, 이 마을에서는 그토록 오랫동안 지켜왔던 마을 도배를 치르지 않았다. 바로 구제역 때문이다. 이 마을은 도배 못지 않게 전통 한우마을로도 불릴 만큼 한우 사육농가가 많은 편인데 주민들은 축산농가들의 불안감과 고충을 고려해 올해는 도배를 거르기로 했다. 그래서 외지에 나가있는 자식들에게도 올해는 귀향하지 말라고도 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 손녀가 왜 보고싶지 않았겠냐만은 몇 개월 참기로 했다고 한다.

시골에서 한우는 21세기인 지금도 가장 큰 소득원이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재산 목록 1번이다. 주민들은 전통의 소중함을 알고 있기에 고민도 많았고, 그래서 서너 차례 토론도 했지만 이웃의 재산 또한 전통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400년 넘게 내려온 전통의 엄중한 무게를 왜 모르겠는가만은 그 전통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이웃에게 고통을 강요하며 이어가는 전통이 과연 명예로운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사람이 우선인 것이다. 축산농가들보다 비축산농가들이 먼저 올해 도배를 취소하자고 건의했다고 한다.

400년 넘게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계속됐던 합동세배의 전통은 올해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도배는 내년부터 또 이어가면 된다. 도배라는 형식만 놓고 보면 2011년 한 해를 거른 것이 맞지만 이웃을 소중히 여기고 더불어 살아가려는 자발적 노력이라는 내용면에서 본다면 이 마을의 전통은 단절된게 아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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