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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일 같지 않은 아기돼지의 죽음①

남 일 같지 않은 아기돼지의 죽음①

저희 기자 사회에서 '잔바리'란 년차가 극히 낮은 경우를 말합니다. 바로 저처럼.

그날 오후에도 잔바리들에게나 종종 일어나는 '총'이 내려왔습니다.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서는 '교육과정 개정 방향에 대한 토론회'를 듣던 제게 구제역 취재 지시가 내려온 거죠.

"파주에 친환경 축산 방식으로 돼지를 기르는 농장이 있는데, 예방적 살처분이 오후 4시에 집행될거야. '야마'는 하루 전날 태어난 아기돼지 5형제다. 애잔하게 잘 만들어봐!"

선배와 통화를 마치고 시계를 쳐다봤습니다. 5분을 남긴 오후 3시. '지금 연락을 주면 어쩌란 말이냐...'라는 원망과 함께 저는 주차장으로 뛰어갔습니다. '파주'라는 다소 가까울 듯 느껴지는 지명에 약간의 희망을 갖고는...

네비게이션에 농장 주소를 입력한 순간 꾸웩, 무려 67km. 게다가 예상 도착시각은 6시를 넘길 것으로 표시돼 있었습니다. 이 때부터는 누구를 원망하고 있을 여유도 없습니다. 급한대로 영상취재팀에 연락을 취해 현장에서 합류하기로 하고, 저는 저대로 힘 닫는 데까지 가속 페달을 밟습니다.

물론 위험하게도 선배로부터 받은 연락처로 쉬지않고 전화를 해야죠.

첫 번째 통화는 농장 주인이신 김정호 선생님과 했습니다. 말씀드렸죠. 얘기 들었는데 아기돼지들 너무 딱하고 또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실 어르신은 얼마나 힘드시겠냐....마는 제발 부탁드리는데 저희가 도착할 때까지만이라도, 살처분을 조금만 몇 십분이라도 미뤄 주실 수는 없겠냐고요.

하지만 일이 꼬이려면 자주 그렇듯, 김 선생님은 당시 농장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나와 술로 슬픈 마음을 달래고 계셨습니다. 자식같은 돼지들을 차마 보고 있을 수는 없었던 것이었죠. 첫번째 설득은 실패.

두 번째 전화는 농장에 남아 있는 김 선생님의 아드님과 따님에게 드렸습니다. 동부 간선도로를 달리면서 한 20분은 쉬지않고 떠들었나 봅니다. 전화기를 들고 있는 왼쪽 팔이 아파옵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무조건 그림을 찍어야하니까요.

하지만 어렵지 않을 것 같지만 때로는 현장 상황은 그런 착각과는 달리 움직일 때가 많습니다. 농장 입장에서는 벌써 이틀이나 버틴 상태에서 '이제는 알겠다'며 이미 주인이 마음을 비운 시점이었고, 보상 문제 등도 걸려 있기 때문에 행여나 관계 공무원들과 마찰을 빚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죠.

그 마음 또한 백 번 이해할 수 있기에 "그동안 구제역 기사가 온통 나쁘고 괴로운 내용으로만 나갔는데 비록 슬프기는 마찬가지지만 시청자들의 마음을 좀 더 움직일 수 있는 소재고, 또 이런 보도를 통해서 구제역에 대한 일반인의 경각심이나 축산농가가 처한 힘든 상황을 알리게 되면 개선되는데 보탬이 되지 않겠느냐"며 조심스럽게 설득에 설득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제 설득이 조금은 마음을 움직였는지 더 이상 언론에 노출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던 따님은 그렇다면 빨리 와보시라고 얘기하더군요. 공무원들에게 직접 미뤄달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분위기 봐서 통화만이라도 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는...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순간입니다. 공무원들의 고충도 익히 알고 있지만, 방역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단 몇 십 분이라도 미뤄달라고 해야하나 등등. 그 때가 이미 4시가 가까워 온 상황이었습니다.

한 십 분 정도 열심히 달렸을까요. 이제 거리는 30km 정도로 줄어들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30km 밖에 못 간 거죠. 다행히 목동 회사에서 출발한 영상취재팀은 저 보다 많이 간 상황이었습니다.

다시 전화를 했습니다. "혹시 방역팀 왔나요?" "네, 지금 돼지들 싣고 있어요. 분위기가 살벌해서 바꿔드린다는 말도 못 꺼냈네요."

으윽...큰일났다... 

서론이 무지하게 길었습니다. 이제와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서론은 스킵하셔도 됩니다. 다만 그 날 제 심정이 얼마나 절박했는지, 또 이번 취재가 시작부터 얼마나 간단치 않았는지, 저는 저 나름대로 기록하고 싶었던 거니까요. 본론은 다음 편에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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