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11일) 뉴스를 제작하면서 기자는 진도에 가지 못했다. 해수부 장관의 서울 담화문 발표와, 실종자 가족들의 진도 중대발표 사이에서 우왕좌왕했다. 때문에 실종자 중 한 명인 단원고 고창석 교사의 부인이 오열을 머금은 채 읽어내려 간 기자회견 모습은 촬영 영상을 통해서만 봤다. 글과 영상을 통해 가족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세월호 사고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지켜본 가족들의 변화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회견이었다.
지난 10월 30일, 고 황지현양이 수습됐을 때도 가족들은 기자회견을 했다. 수색을 계속해 달라고 투표를 통해 결정한 직후였다. 실종자를 찾았으니 재수색 요구는 강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수색 방법에 대한 불만은 있었지만 강한 비난은 없었다. 수색방법 전면 재검토, 11월 수색 계획 수립을 요구한 정도였다. 오히려 잠수사들과 해수부 등에 대해 감사하다며 여러 차례나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바로 전 진도에서 가족들을 직접 만난 것은 무더위가 한창이던 8월 27일이다. 이미 팽목항의 일상은 사소해 진 때였다. 그렇게 싫어하며 밀쳐내던 카메라 앞에 가족들은 스스로 섰다. 봉변이 두려웠고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던 가족 취재는 그래서 수월하게 끝날 수 있었다. 팽목항이나 진도체육관에 머무는 실종자 가족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세월호 뉴스를 보고 있었다. 기사에 달린 댓글을 특히 더 자세히 봤다. 세상과 그렇게 소통하면서 나날이 변해가는 인심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뭔가 결정을 해야 했다.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청와대 비서관을 거친 해양수산부 김영석 차관이 한마디 했다가 수난을 당했다. "수색이 어려운 경우 인양 등 대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원론적인 말이었다. 정치권은 계속 외면했고, 정부는 언론 눈치만 봤다. 기자들과의 사석에서 해수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언론이 말해 달라"고 하소연했다가 "당국자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는 거센 항의만 들었다. 리더십은 보이지 않고 국론은 계속 분열되고 있었다.
지치고 힘든 가족들 중 누가 이 기자회견문을 작성했는지가 궁금했다. 실종자 가족 법률대리인으로 활동하는 배의철 변호사는 전날부터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진도에 있는 해수부 공무원들도 잘 모른다고 했고, 연락이 되는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궁금해서 별 기대 안하고 배 변호사에게 문자를 남겼다. 밤 10시 반을 넘겨서 답이 왔다.
"글은 제가 썼지만 실질적으로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실종자 가족 한분 한분의 의견을 수렴했고, 저는 종합적으로 정리를 하고 다듬은 것뿐이기 때문에 실종자 가족 분들이 함께 작성하셨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답변도 왔다. 문자를 통해서고, 꽤 긴 글이지만 그대로 옮기겠다.
"이전에 군청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 기자들이 "수색계획이 주먹구구식인데 왜 가족들이 무능한 정부를 강하게 성토하지 않느냐"라고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가족들은 직접 나서서 수색계획을 제안하고 다양한 방안을 제출했습니다. 그럼에도 무능한 정부라는 평가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장관님도 "정부의 부족함을 감싸주셔서 감사하다"라고 말씀하셨고요. 그 때 제가 이렇게 답변했던 기억이 납니다.
"기자님들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개인적으로 저는 가족들은 성숙했고 정부는 무능했다는 답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가족들은 정부의 부족함을 성토하기 보다 직접 그 부족함을 메우고 정부의 위신을 세워주고자 했습니다. 참 성숙한 가족들이었죠. 그런 부분이 진도에서의 수많은 기자회견을 관통하는 핵심이었습니다. 오늘 결정도 가족들이 먼저 수색 중단을 요청하고 정부가 받아 결정했고, 그 고통스런 날 속에서도 차분하고 겸손하며, 정제되어 있고 성숙한 가족들이었습니다. 이런 가족들과 함께 했음에 감사할 뿐입니다"
▶ 세월호 실종자 가족 대국민 기자회견문 전문
▶ 세월호 실종자 가족 '수색종료' 수용 배경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