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 조사 결과가 조금 이상했다. 정확히는 발표가 애매했다. 발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해당 매트리스에서 라돈이 검출됐지만 라돈에 의한 외부피폭방사선량은 기준치 이하로 나타났다. (연간 0.15mSv, 기준은 1mSv) 그러나 호흡으로 인한 내부피폭 영향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간 총 0.5mSv) 내부 피폭에 대한 기준은 국내외적으로 없다. 하지만 인체 피폭이 확인됐으니 이번에 원인물질로 밝혀진 모나자이트 사용을 제한하거나 천연방사성물질 성분 함유 표시를 의무화하는 등의 제도 개선을 실시하겠다. 안전성 여부는 판단할 수 없다."
(* 외부피폭은 피부 등을 통해 방사선에 피폭되는 것이고 내부피폭은 호흡 등을 통해 몸 안에 들어온 방사성 물질에 의한 피폭을 뜻한다)
복잡하다. 기준치 이하라서 안전하다는 건지, 아니면 그래도 내부피폭이 확인됐으니까 위험하다는 건지, 또 기준치 이하라면서 왜 못 쓰게 하겠다는 건지, 도통 헷갈린다.
● 기준이 없는데 기준치 이하?…핵심은 '내부피폭'
앞에서도 밝혔듯 원안위는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 15조에 따른 가공제품 안전기준에 따라 해당 침대에서 검출된 연간 외부피폭방사선량이 기준 범위 내였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저희가 가진 기준에는 넘지 않는다"고 답했다.
당연한 이야기다. 해당 법령에는 가공제품에 따른 외부피폭에 대한 기준만 정하고 있다. 원안위 관계자 역시 "다만, 계속 말씀드렸지만 저희들이 가공제품 안전기준으로 한 것은 외부피폭이 고려된 부분이지 내부피폭이 고려된 부분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내부 피폭에 대한 기준이 없으니까 기준치를 넘는다, 넘지 않는다를 판단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번 이슈에서 문제가 되는 건 외부피폭이 아닌 내부피폭이다. SBS 보도에서도 처음부터 줄곧 호흡기를 통한 내부 피폭 가능성과 위험성을 지적했다. 상식적으로도 발가벗고 맨 침대 위에서 자지 않는 이상 피부를 통한 외부 피폭 가능성은 낮다. 문제는 자는 동안 들이마시는 호흡을 통해 라돈 가스가 신체로 유입된다는 사실이다. 외부 피폭보다 내부 피폭의 위험성이 훨씬 크다는 건 인터넷만 검색해도 다 나오는 상식이다.
● 뜬금없이 국제 권고치는 왜?…부랴부랴 자료 수정
원안위가 '내부 피폭도 기준치 이하'라고 대놓고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다. 국내외적으로 기준이 없다고 설명은 했다. 문제는 보도자료에는 그런 내용이 나와있지 않다는 거다. 대신 보도자료 5페이지에 "내부피폭선량은 연간 총 0.5mSv로 평가되었다"라고 쓰고 아래 줄에 ※ 표를 달아 ' IAEA(국제원자력기구), ICRP(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에서는 라돈 방호 최적화의 기준점으로 10 mSv를 권고'한다고 달았다.
(*독자의 정확한 판단을 위해 보도자료 원문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원안위 홈페이지 URL을 첨부한다)
☞ 원자력안전위원회 '라돈 침대' 중간조사 결과 발표 보도자료
(http://www.nssc.go.kr/nssc/notice/report.jsp?mode=view&article_no=44238&pager.offset=0&board_no=2)
이 대목만 보면 마치 국제 기준은 10mSv인데 침대에서 확인된 내부피폭선량은 0.5mSv니까 안전하다는 것처럼 들린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해했다. '라돈 방호 최적화 기준점'이라는 개념 자체가 복잡하지만, 쉽게 말하면 자연적으로 노출되는 방사선이 이 정도되면 줄이려고 관리해야 한다'는 정도의 개념이다. 심지어 이 권고치는 실내 공기에 관한 기준이다. 즉, 이번 경우처럼 제품에서 나오는 방사선 기준과는 아예 다른 개념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왜 이런 내용을 내부피폭선량 아래 붙였냐고 물으니, "내부피폭선량에 대해서는 아무런 국내외적 기준이 없어서 그나마 관련성이 있고 참고할 만한 국제 권고치를 붙여 놓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엄밀히 관계없는 내용이 아니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답했다.
이러한 지적에 원안위는 브리핑이 끝나고 약 3시간이 지난 오후 2시 반쯤 출입기자들에게 문자를 보내 해당 내용을 수정했다. 수정 내역을 그대로 붙인다. (굵은 글씨가 수정된 내역이다)
[수정 전]
※ IAEA(국제원자력기구), ICRP(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에서는 라돈 방호 최적화의 기준점으로 10 mSv를 권고
[수정 후]
※ IAEA(국제원자력기구), ICRP(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에서는 실내 공기 중 라돈에 대한 방호 최적화의 기준점으로 10 mSv를 권고. 라돈은 기체 형태이므로, 국내외적으로 제품별 라돈을 관리하는 기준은 없음
* 잘못된 기사의 예:
"또 매트리스 위에서 사용자가 호흡했을 때 연간 내부피폭선량은 최대 0.5 mSv(밀리시버트)로 국제 권고치인 10 mSv(밀리시버트)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원안위는 전했습니다."
● 같은 라돈인데…라돈·토론 왜 구분했나?
원안위는 해당 침대 매트리스의 라돈 수치를 발표하면서 "라돈 58.5 Bq/㎥, 토론 624Bq/㎥임을 확인"했으며 측정 거리에 따른 매트리스 표면 수치도 라돈과 토론을 구분해서 기재했다. 라돈은 적게 나오고, 토론은 많이 나왔다며 라돈과 토론을 마치 완전히 다른 것처럼 보이게 한 셈이다. 실제로 그런 오해가 쏟아졌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라돈(Rn-222)과 토론(Rn-220)은 모두 라돈의 일종이다. 즉, 토론도 라돈이다. 앞에 붙는 원소기호(Rn)도 같다. 원안위 설명을 보자. 어제 원안위 중간조사 결과 발표 보도자료 6쪽에 나와 있는 설명이다.
"라돈(Rn)은 무색,무미,무취의 자연방사성 기체 물질로서 동위원소는 수십종이며 이중 관련 주요 핵종은 Rn-222(라돈)와 Rn-220(토론)이 있음"
'라돈의 주요 핵종이 라돈'이라니까 이름이 같아서 좀 헷갈리긴 하지만 같은 물질이다. 우라늄(U-238)과 토륨(Th-232)에서 라돈이 생성되는데, 우라늄에서 생기는 라돈은 Rn-222이고, 토륨에서 생기는 라돈은 Rn-220이라고 해서 토론으로 부른다는 말이다. 다만 Rn-222는 반감기가 3.8일이기 때문에 공기 중에 오래 떠다닌다. 그래서 실내 공기질 관리에 대한 기준도 Rn-222을 기준으로 되어 있고, 통상 라돈을 지칭할 때는 편의상 Rn-222를 많이 쓴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토론(Rn-220)은 반감기가 55.6초라서 금방 없어진다. (다만 여기서는 침대라서 문제가 된다) 어쨌든 토론도 라돈은 라돈이다.
SBS 역시 취재과정에서 해당 침대에서 방출되는 라돈 가스의 성분이 주로 토론이라는 걸 확인했고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정밀 핵종 검사까지 거쳤다. 다만 우리가 흔히 아는 무색 무미 무취의 기체, 1급 발암물질의 성격을 띈 물질인 라돈을 설명할 때는 모두 포함되는 것이기에 라돈이라 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안위 발표는 '라돈 수치가 적게 나왔다'고 인식할 여지를 주기에 충분했다. 반감기가 다르고 관리 기준이 다르니까 구분해서 측정하는 건 맞지만 이 경우에는 Rn-222(라돈)와 Rn-220(토론) 모두 라돈 가스라고 통칭한 뒤 'Rn-222는 58.5, Rn-220은 624'라고 그 내역을 설명하는 게 적확하다. 그러나 보도자료에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위에 설명한 자료 6페이지의 첫줄에 조그맣게 기술했을 뿐이다. 모르고 보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역시 어처구니없는 오보가 쏟아졌다. "보도에선 620이 나왔는데, 원안위 검사에선 58.5가 나왔다"는 식이다.
수치가 높게 나온 토론(Rn-222)의 경우 '반감기가 55.6초에 불과해 금방 날아가고 관리가 쉬워 기준이 없다'는 원안위의 설명도 엄밀히 말하면 이번 경우에는 적절하지 않다. 실내 공기를 따질 때는 토론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금방 없어지니까. 하지만 침대의 경우에는 다르다. 발생원으로부터 가까이 코와 입을 두고 자기 때문에 55.6초 안에 충분히 흡입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원안위도 보도자료 5페이지에서 '침대와 같은 호흡 밀착형 제품의 경우에는 모나자이트 사용에 따른 토론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으므로' 관련 조사와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놓고 바로 다음 쪽인 6페이지에 "토론은 방호가 쉬워 규제하는 나라가 없다"고 적은 건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방호가 상대적으로 쉽다면서 '페인트 도포 등으로 차폐 가능'이라고 적었는데, 매트리스에 페인트를 끼얹으라는 말인가.
● '안전성' 판단할 수 없다면서… 리콜은 해라?
결국 사람들이 가장 궁금한 건 바로 이 지점이다. "그래서 안전하냐"는 거다. 그 침대에서 계속 자도 되는지 여부다. 그러나 원안위 대답은 "판단할 수 없다"였다.
▶ [관련 8뉴스] "안전하냐" 물으니 "라돈 침대 사용 줄여야"…원안위에 쏟아진 성토 (2018.05.10)
안전성을 판단할 수 없다는 원안위 입장에도 이유는 있다. 외부피폭선량이야 기준치 이하니까 위험한 수준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지만 연간 0.5mSv로 확인된 내부피폭선량에 대해서는 국내외적으로 기준치가 없으니까, 이게 어떻다고 판단하기 애매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소비자들이 이 답변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심지어 안전성은 판단할 수 없지만 "리콜에는 응하라"는 답변이 나왔다. 독자와 시청자의 직접 판단을 돕기 위해 해당 부분을 녹취 그대로 옮긴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0.5mSv에 내부피폭, 추가적인 내부피폭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얼마나 의미 있게 보고 얼마나 거기에 반응하느냐는 사실은 저희가 명확하게 안전하다, 아니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고요. 다만, 여러 가지 것들을 고려해서 하는데 가급적이면 줄이는 게 좋겠죠. 줄이는 게 좋기 때문에 사업자 분께서 리콜이 있다 그러면 리콜하시는 게 좋고. (리콜 해준다고 하면 받으라는 뜻) 그리고 또 그거를 꼭 써야겠다고 하시는 분들은 가급적이면 아까 말씀드린 토론의 속성이, 얼마나 이격되고,,,, 그리고 토론에서 나오는 방사선이 알파선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차폐가 굉장히 쉽습니다. 그래서 위에 시트 하나 더 깐다든지 그런 것들이 굉장히 큰 효과를 나타냅니다. 2개만 깔면 한 70% 이상의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그런 형태로 조금이라도 피폭을 줄이려는 그런 노력이 좋지 않겠나, 라는 그런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명확하게 안전성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가급적 줄이는 것이 좋기 때문에 침대 회사에서 리콜 해준다고 하면 리콜을 받고, 리콜 받지 않고 계속 사용하려면 시트를 깔아서 쓰라는 말이다. 소비자들은 과연 이 답변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당장 인터넷 포털에 "당신들 아이를 해당 침대 위에서 재워보라"는 격앙된 댓글이 쏟아졌다.
● 원안위 "브리핑 미숙했다"…국민 혼란만 키웠다
팩트가 뒤죽박죽 섞인 것도 모자라 애매모호한 발표에 결국 대량의 오보가 쏟아졌다. 대부분의 매체가 '기준치 이하'라는 제목을 달았고 심지어 '안전하다'고 제목을 단 매체도 있었다. 소비자는 개별 기사를 보고 판단할 수 밖에 없다.
이는 정확한 사실 확인 없이 쓴 언론의 책임도 일부 있지만 상당 부분 원안위의 책임이 크다. 중요한 팩트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복잡하고 어려운 전문 용어를 충분한 설명 없이 뒤죽박죽 배치했으며 편집과 구성마저 오해의 소지가 다분했다. 나름대로 여러 출입처를 거치며 많은 보도자료를 받아봤지만 이런 보도자료는 본 기억이 별로 없다,
발표 다음날인 11일, 원안위 관계자는 "내부 피폭 부분은 분명히 발생하지 않아야 할 추가적인 피폭이고, 따라서 모나자이트 등 원인물질 사용에 대한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것이 어제 브리핑의 핵심"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브리핑이 좀 미숙해서 제대로 전달이 안 됐다"고 덧붙였다. 정말 그게 핵심이었다면 전달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국민을 안심시켜야 할 원안위가 국민 혼란만 가중시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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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모를 방사성 물질, 제대로 알리고 관리해야
이번 이슈를 처음부터 끝까지 취재한 기자로서 생각하는 사태의 핵심은 "자연 상태에서 나올 수 있는 양 이상의 방사성 물질이, 나오지 않아야 할 곳(침대)에서 나왔고 그것이 건강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방사선을 쬘 수 있다. 병원에 가서 X-ray를 찍어도 방사선을 쬐고 CT를 찍어도 방사선을 쬔다. 그러나 침대는 방사선이 나오면 안 되는 물건이다. 날마다 오랜 시간 몸을 맞대는 물건이다.
위험성을 과장해 불필요한 국민 불안을 가중시킬 필요는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러나 국민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라면 제대로 실태를 파악해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관리를 강화해나가야 한다. 적어도 소비자가 알게끔 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번에 원안위가 추진하겠다고 밝힌 방사성물질 성분 함유 표시 의무화 제도 같은 개선책이 바로 그런 방향이다. 다만, 이번 중간조사 결과 발표가 과연 국민에게 충분한 정보와 판단의 준거를 제공했는지는 의문이다. 원안위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