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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숨이 턱∼턱∼ '살인 폭염' 막으려면…

'무더위 휴식시간제 의무화'는 최소한의 조치

[취재파일] 숨이 턱∼턱∼ '살인 폭염' 막으려면…
'사람 잡는 폭염'입니다. 사망자가 열 명을 넘어섰습니다. 뙤약볕 아래서 밭일하다, 비닐하우스 작업하다, 실외 공사장에서 일하다, 등산하다 아까운 생명이 스러지고 있습니다.

이런 날씨에 건강을 해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가급적 야외 활동을 자제하고, 야외 활동을 하더라도 가장 뜨거운 낮 시간대는 피하며, 정기적인 휴식을 갖고 충분한 수분 섭취를 해야 한다", 교과서에 나오는 정석과 같은 행동요령입니다. 폭염 관련 사망자, 그리고 질환자들은 이런 걸 몰라서라기보다는 이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방심해서 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어서 피해보는 것 같습니다. 제가 주목한 부분은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정부나 지자체의 폭염 대책을 살펴보면 빠짐없이 들어가 있는 게 '무더위 휴식시간제'입니다. 폭염주의보나 경보 같은 폭염특보가 내려질 경우엔 가장 뜨거운 낮 시간에 옥외작업할 때는 휴식을 취하도록 하는 제도로 낮 1시부터 3시, 2시부터 5시 등 조금씩 다릅니다만 이 시간을 통째로 쉬게 하거나 아니면 일하다 쉬다 하면서 3차례 이상 휴식시간을 주도록 하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잘 지켜지고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곳에 따라 다르다, 입니다.

대형건설사 시공현장의 경우엔 일단 표면적으론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실내외 작업장이 함께 있는 경우 폭염시엔 실내 작업 위주로 한다거나 점심시간을 30분~1시간 더 늘려 한낮 뜨거운 시간 작업은 피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탄력적으로 적용한다 하고 휴게실과 제빙기 설치, 아이스 머플러, 식염 공급 등을 통해 열사병 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어느 노동자의 말처럼("취재나오니까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그러네. 매일 취재오세요.") 방송 취재를 의식해 폭염 방지 조치를 더 과장해 포장한 측면도 분명 있을 것 같습니다. 또 하청업체의 경우엔 자체적으로 폭염 대책을 마련해 적용하는 만큼 더 열악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중소건설사나 규모가 작은 공사 현장은 상황이 많이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위에 열거한 폭염 피해 방지를 위한 각종 장비와 시설을 일일이 갖추기도 어렵고 체계적인 휴식 시간 보장도 쉽지 않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입니다. 또 올해는 유난히 장마가 길었기 때문에 실외 작업이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은 게 많아 이를 벌충하기 위해 폭염이라도 휴식시간을 충분히 줄 수 없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공사 현장에 고질적인 하청에 재하청 문제, 여기에도 적용됩니다. 하청을 거듭 주다보면 실제 공사하는 업체는 공사비의 30, 40% 정도밖에 받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비용도 아끼고 인력 투입도 줄이고 공기도 단축해야 하죠. 폭염 피해 방지 같은 데 투입할 예산이 없다는 거죠.

노동자 별로도 차이가 났습니다. 대형건설사 현장이라도 하청업체 직원의 처우는 좀 다를 것이라고 위에 적었는데 공사기간 내내 고용된 직원들은 그래도 월급 개념으로 돈을 받으니 조금 더 쉬더라도 문제 없지만 일당 받는 일용직 노동자는 일을 덜하게 되면 그만큼 수입도 줄게 되죠. 그렇다보니 불만을 가지기 어렵다는 게 이른바 '노가다' 하는 이들의 솔직한 답변이었습니다.

폭염휴식 캡쳐_50


'무더위 휴식시간제'가 이렇게 정부가 권고하고 있는데도 각 작업장의 사정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면, 그래서 폭염 피해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면, 정부에서 취해야할 조치는, '그래도 권고'가 아니라, '강제 적용'일 것입니다. 권고는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이를 무시해도 사실 정부나 지자체에서 할 수 있는 공식 제재는 없습니다.(비공식 제재야 있을 수 있겠지만 공식 업무 하기에도 바쁜 공무원들이 그 이상을 하기는 힘들테죠.)

한반도 기후가 계속 바뀌면서 폭염 문제가 더욱 더 심각해지다보면 관련 특별법이라도 제정될지 모르겠습니다만, 현행 법으로도 방법이 있습니다. 현재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보면 '온도.습도에 의한 건강장해의 예방' 중에 '고열작업'에 대한 규정이 있는데 그 세부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용광로, 평로(平爐), 전로 또는 전기로에 의하여 광물이나 금속을 제련하거나 정련하는 장소
2. 용선로(鎔船爐) 등으로 광물·금속 또는 유리를 용해하는 장소
3. 가열로(加熱爐) 등으로 광물·금속 또는 유리를 가열하는 장소
4. 도자기나 기와 등을 소성(燒成)하는 장소
5. 광물을 배소(焙燒) 또는 소결(燒結)하는 장소
6. 가열된 금속을 운반·압연 또는 가공하는 장소
7. 녹인 금속을 운반하거나 주입하는 장소
8. 녹인 유리로 유리제품을 성형하는 장소
9. 고무에 황을 넣어 열처리하는 장소
10. 열원을 사용하여 물건 등을 건조시키는 장소
11. 갱내에서 고열이 발생하는 장소
12. 가열된 노(爐)를 수리하는 장소

이런 고열작업을 할 때는 적절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고 휴게시설과 세척시설 등을 설치하며 소금과 음료수 등을 비치하는 게 사용주의 의무입니다. 상위법인 [산업안전보건법]의 시행규칙으로 규정돼 있습니다.

여기에 '폭염특보 발표 기간 동안의 실외작업'을 추가하는 방안을 노동부에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추진했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아직까지도 개정되지 않은 상탭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반대할 수 있습니다. 폭염시 실외작업은 폭염 특보가 발효되는 등 특정 조건 하에서의 한시적인 상황으로 볼 수 있는데 현재 고열작업으로 규정된 작업들은 모두 상시 작업입니다. 여름 한철에만 잠깐 필요한 시설과 장비 설치하는 걸 의무로 규정하면 기업들은 부담으로 느낄 수 있겠죠.

하지만 폭염이 사람까지 잡고 있는 상황에서 이 정도 부담은 감당할 만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더군다나 '무더위 휴식시간제'를 의무화한다고 해도 모든 현장에서 실제로 적용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규정은 규정일 뿐, 제대로 된 감시와 처벌 혹은 독려가 없다면 사문화되는 규정도 많죠. 휴식시간제 의무화는 '살인 폭염'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 같습니다. 조속한 개정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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