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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잡이'까지 동원, 조직화된 지하철 잡상인들

<8뉴스>

<앵커>

지하철을 타다보면 능숙한 말솜씨로 이런 저런 물건을 파는 상인들을 자주 보게됩니다. 그런데 이 물건을 의외로 고민없이 구매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알고보니 상당수가 이른바 '바람잡이'였는데요.

놀라울 정도로 조직화되어 있는 지하철 상인들의 실태를 정연 기자가 밀착 취재했습니다.

<기자>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

물건을 담은 가방 곁으로 잡상인들이 모여있습니다.

가방을 맨 사람들도 보입니다.

한 상인을 따라 전동차에 올라탔습니다.

손에 치약을 들었습니다.

[치약 상인 :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충치나 풍치, 잇몸 질환, 입 냄새도 없답니다. 투투라는 나무 잎사귀입니다. 이 잎사귀를 마치 껌 씹듯이 씹고 다니는데요.]

능란한 말솜씨로 치약을 선전합니다.

[치약 상인 : 나무 잎사귀 원액을 추출해서 이번에 국내특허를 받았어요. 하나 3천원, 두개 5천원. 써보신 분들은 압니다. 몇 개 드릴까요? (두 개) 두개드릴까요? 네, 감사합니다.]

한 여성이 기다렸다는 듯 돈을 주고 물건을 사고, 다른쪽에 앉아 있던 남자도 냉큼 치약을 삽니다.

[자 1만원 받았습니다. 5천원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치약을 산 두사람, 알고보니 모두 조금전 승강장에서 상인과 함께 있던 사람들입니다.

상인이 옆 칸으로 이동하자 이들도 서둘러 내리더니, 곧바로 옆칸으로 옮겨 탑니다.

이미 써봤다며 같은 치약을 또 삽니다.

[아 4개요. 써보셨네. 써보신 분들은 4개씩 사세요.]

바람잡이 들까지 동원해 구매를 유도한 겁니다.

비슷한 치약을 팔면서 서로 원조라며 짝퉁 시비까지 벌입니다.

[다른 회사 잡상인 : 00치약은 올해 처음 새로 나온 겁니다. 저희 치약이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팔아왔던 거예요.]

이게 둘 다 제가 지하철에서 직접 산 치약들입니다.

아프리카 원주민이 씹는 잎사귀 성분을 넣었다고 하는데 제품 이름이나 겉포장이나 거의 똑같습니다.

[박용덕/경희대 치과대학 예방치과학교실 교수 : 특히 치약의 기본적인 성분이라고 할 수 있는 불소마저도 빠져있다는 게 좀 놀랍네요. 우리가 1950년, 60년대 처음 치약이 우리나라에 도입이 됐을 때의 수준.]

별의별 상품을 다 파는 데 겨울철에는 의료관련 물건을 주로 다룹니다.

[복대 상인 : 허리를 딱 받쳐줘요. 그래서 편안해요.]

[파스 상인 : 25장인데 단돈 2천 원인 파스예요.]

지하철에서 상행위는 엄연한 불법, 단속에 걸리면 10만 원의 과태료를 물어야합니다.

[수입이 되든 안되든 하는거지 뭐. (걸려도요?) 응 걸려도. 되든 안되든 먹고 살아야하니까.]

서울 지하철 1~4호선에서 지난달 한 달동안에만 1천 2백 건이 신고될 정도로 지하철 잡상인은 적지 않습니다.

[정원택/서울 방학동 : MP3나 그런 거 듣고 있을 때도 너무 시끄럽고. 예의가 아닌 것 같아요.]

잡상인들끼리 자체 규약을 정해 임원도 뽑고, 남의 구역에서 팔다 걸릴 경우 벌칙 규정까지 정해 놓을 정도로 조직화돼 있습니다. 

영세한 잡상인들을 단속하는 게 가혹하지 않냐는 동정론도 있지만, 조직화된 잡상인들은 오히려 이런 여론에 기대 부실한 물건을 과대 광고하고 승객들의 불편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VJ : 김준호, 조귀준, 영상편집 : 최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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