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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무적자②] 장애, 가족 해체, 무관심…무적자 만들어낸 키워드

[취재파일-무적자②] 장애, 가족 해체, 무관심…무적자 만들어낸 키워드
무적자(현재 창본창설) 강 씨
"우리 아버지가 목수였어요. 그건 내가 기억하는데, '강 목수 딸내미네' 그러더라고. 그래서 내가 강 씨인 거는 알아요."
무적자(현재 창본창설) 김 씨
"고아원에서 있다가 그 생활이 싫어서 그냥 나왔어요. 공장 같은 데서, 그때 당시에 어린애들도 일 시켰거든요."

무적자사실확인서

성과 본이 없는 사람들, 무적자((無籍者). 수십 년간 사회 변두리만 맴돌았던 이들은 주민번호와 가족관계등록부를 새로 만들 과거 기록조차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기억이라도 남았으면 가족이나 친척, 자라난 동네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기록만큼이나 기억도 희미한 이들입니다.

SBS는 서울시와 노숙인 보호시설 등의 도움을 받아 입수한 무적자 356명의 기록을 분석했습니다. 이 중에서 대략으로라도 삶의 궤적이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던 무적자는 불과 193명뿐입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남아있는 공식 기록은 총 746장이 전부입니다. 무적자 한 명에게 남아 있는 기록은 평균 3.86장밖에 되지 않습니다.

네 장이 채 되지 않는 기록에 담긴 이들의 정보는, 그나마도 대부분 공란입니다. 그만큼 사회는, 국가는, 시민들은 이들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또한 무적자 대부분은 사회의 제도권 내에서의 생활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들조차 한걸음 내딛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무적자가 된 이유가 있었을까요. SBS 취재팀의 의문은 여기서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이들이기에, 어떤 삶을 살았기에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됐는지 추적했습니다. 확보한 자료와, 또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한 조각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무적자 이 씨
머리가 아프고 정신도 내가 분열 일어나고 착란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하는 말도 또 하게 되고..

무적자의 삶 추적 연속보도, SBS 기자

장애, 그리고 사회 변두리의 삶


무적자들의 공통점을 분석했습니다. 무적자 193명 중 106명은 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중 63명은 망상 등 정신적인 문제, 또 대화가 불가능한 언어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는 기록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권'이라는 가치가 사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았던 먼 과거, 이들의 장애가 이들이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소외됐던 주된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는 가정을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사회 밖으로 내몰린 아주 오랜 기간의 고된 삶이 이들의 정신과 마음에 큰 충격을 줬다고 추정할 수도 있습니다.

무적자를 만나고 기록을 작성했던 복지사들의 보고서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취지의 기록입니다. 삶의 기록이 부족하면 증언을 통해서 연고지와 가족을 찾아야 하는데, 의사소통 장애가 사회와의 단절을 초래한 셈입니다.

가족 해체, 그리고 보육 시설

희미하지만 과거를 기억하거나, 또 기록이 남아 있는 44명은 어린 시절 가족과 헤어지는 가족 해체를 경험하고 보육시설에 입소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당시의 보육시설 생활에도 큰 어려움이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보육시설 생활을 경험한 무적자들의 상당수는 폭력과 가혹행위를 피해 시설을 탈출했습니다. 탈출한 이후에는 신원 조회가 없고, 이력서가 필요 없는 제도권 보호 밖의 일자리를 전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은 사회에서 없는 사람이고 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신원'이랄 것들이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적자 김 씨
"구속당한 사람 심부름 좀 하다가 나중에 신문도 돌리면 그래도 자기 좀 괜찮더라고요. 큰돈은 못 벌어도 생활은 되고, 그때 당시에 그래가지고 여인숙 같은 데 전전했죠."

이 과정이 길어질수록 무적자들은 악순환의 수렁에 빠져들었고, 이들의 삶의 질은 더 나빠졌다는 공통점도 있었습니다.

무적자 노숙인

사회의 무관심이 만든 이들

무적자 강 씨
"우리 아버지가 산꼭대기를 저만치 보면서 너 내년에는 초등학교 들어간다 그랬어 내년에 간다고. 그러니까 그렇게 따져서 내가 00년생으로 저거 한 거야. 생일은 기억 못 하는데 저 고아원에서 00월 0일로 해줬는데 00월 0일로 내가 바꿨어요."

학교 입학과 졸업, 또 취업, 그리고 결혼. 이런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과 장면이 없었던 무적자들에 국가는 관심을 준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중앙 정부 차원에서 단 한 차례의 실태조사도 없었고, 심지어 수감이 됐는데도 무적자인 채 출소한 사례도 많습니다. 사법기관에서 입건을 해도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000000으로 표기한다는 규정 외에 창성창본을 돕는 절차는 없습니다.

2023년 노숙인 관련 복지부 지침에도 임시 사회복지 전산관리번호를 지급해 지원하라는 것 외 이들의 과거를 찾아주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내가 태어난 날, 생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이 주위에 몇이나 될까요? 성도, 이름도, 생일도, 나이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면, 또 나를 증명할 수 있는 기록이 탄생 이후 하나도 없다면 그 사람은 이 사회에서 어떤 존재일까요. 실재하는 사람이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무적자는 멀쩡하게 실체적으로는 사람이지만 아무런 기록도 없습니다 법적 제도적으로. 그러면 사람인가요? 난센스죠. 보이고 말하지만 어디에도, 법에도 없어요. 그러면 사람이라고 볼 수 있나?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감각적인 실상과 현실과는 좀 많이 다른 이야기죠."
기재일, 서울시 자활지원팀장

무적자 나 씨, 염전에 발이 묶여 맞아서 생긴 상처

우리 곁에서, 같은 사회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던 무적자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어느 날 길에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을 때입니다. 병원에서 수술 또는 진료를 위해 이들의 신원을 조회하면서 이들이 아무 기록이 없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겁니다. 그제야 이들은 알려지고, 또 주위의 도움을 받아 성과 본을 만드는 창성창본 과정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주위에도 사회의 울타리를 경험해보지 못해 한 번도 제도권으로 들어올 상상을 하지 못한, 길에서 쓰러지지 않은, 수많은 무적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태어난 지 수십 년이 지나 자신의 이름과 생일이 담긴 신분증을 받고서야,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음을 느끼게 됩니다.
무적자 김 씨
"(누군가 도와줬으면) 방향이 좀 바뀌어서, 지금 어떻게 바뀌었을지는 모르지만 너무 허송세월을 많이 한 거죠, 결론은. 빨리했으면 (인생이) 바뀌었을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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