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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상임위 불참' 국민의힘의 진짜 딜레마

‘과반’ 민주당 11개 상임위 위원장 선출


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했습니다. 과반 의석을 확보한 정당은 국회에서 막강한 권한을 갖습니다. 국회 본회의 법안 통과(재적 과반, 출석 과반)를 단독으로 할 수 있습니다. 각 상임위원장 선출도(재적 과반, 출석 과반)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당은 의석 수 등을 고려해 11개 상임위원회 위원장직을 자당 소속 의원들이 맡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나머지 7개 상임위원회 위원장에 대해서는 국민의힘이 맡으라고 통보했습니다. 그리고 총선 민심에 따라 제1당이 된 민주당이 법제사법위원회와 운영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국민의힘 생각은 달랐습니다. 상임위원회 위원장직 배분은 관례에 따라 여야 합의로 나누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또 상호 견제 차원에서 제2당인 국민의힘 소속 의원이 법제사법위원장을 맡아야 하고, 운영위원장직 역시 여당의 몫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박찬범 취재파일 사진 1-1

여야가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한 가운데 민주당은 법사위, 운영위, 과방위 등 11개 상임위원회 위원장직에 대한 본회의 선거를 강행했습니다. 재적 과반, 출석 과반의 동의가 있으면 선출될 수 있는 만큼 민주당 출신 의원 11명이 상임위원장에 임명됐습니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박찬범 취재파일 사진 1-2

국민의힘, ‘상임위 불참’ 배수의 진

 
국민의힘은 민주당 단독으로 원 구성을 한 데 대해 즉각 반발했습니다. 국민의힘은 이후 의원총회를 열고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민주당이 남겨 둔 나머지 7개 상임위원회 위원장직도 맡지 말자는 게 당내 다수의 의견입니다. 차라리 민주당이 18개 상임위원장직을 다 가져가 ‘입법 독재’라는 점을 부각하려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이 같은 상황은 이미 21대 국회 전반기 때도 벌어진 바 있습니다.
 
박찬범 취재파일 사진 2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구성한 11개 상임위원회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여야 합의가 없었던 만큼 상임위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상임위에 참여하지 않는다 해도 상임위 일정을 강행하기로 했습니다. 정청래 법제사법위원장은 ‘열차는 정시 출발’ 이란 말을 남겼습니다.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가 당장 6월 12일에 열렸고, 국민의힘은 불참했습니다.
 
박찬범 취재파일 사진 3

국민의힘 15개 자체 특위 개설…한계성 뚜렷

 
국민의힘은 원 구성 협상 장기화에 대비해 15개 당내 자체 특별위원회를 꾸렸습니다. 상임위에 불참하는 대신 자체 특별위원회를 꾸려 민생 등 현안을 챙기겠다는 것입니다. 상임위 불참이 마치 일을 하지 않는 것처럼 국민께 비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국민의힘은 15개 특위를 하나둘씩 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특별위원회 내용 가운데 눈에 띄는 부분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자체 특별위원회인 만큼 입법권이 없어 한계성이 뚜렷합니다. 의원들이 특위 관련 법안을 발의할지언정 결국엔 공식 상임위에서 논의돼야 하고, 과반을 차지한 민주당 의원들의 협조 없이 통과도 불가능합니다. 더군다나 15개 특별위원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생기다 보니 국민의힘이 어떤 현안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지도 불명확해 보입니다.
 

<입법 강행 + 재의요구권(거부권)> 악순환


민주당은 과반 의석 무기로 각 상임위별 법안 발의를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21대 후반기와 달리 법사위원장직을 민주당이 차지한 만큼 법안 처리 속도는 더 빨라지게 됩니다. 민주당은 이미 21대 국회에서 재표결 끝에 폐기된 이른바 ‘채 해병 특검법’을 재차 발의했습니다.
 
박찬범 취재파일 사진 4

채 해병 특검법이 법사위를 걸쳐 본회의에 올라오면, 192석인 범야권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통과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되면 21대 국회 때처럼 대통령 재의요구권 행사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채 해병 특검법뿐만이 아닙니다. 21대 국회에서 민주당 주도로 통과됐다가 폐기된 법안들이 다시 22대 국회에서 부활해 올라올 것으로 보입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미 11개 상임위에서 올라온 법안이 본회의 통과되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22개 국회 초반부터 <야당 입법 강행+여당 재의요구권 건의>가 마치 중국집 세트 메뉴처럼 함께 붙어 다닐 위기에 처했습니다. 국민들은 이미 21대 때 이런 국회 모습을 봐왔기에 피로도가 상당한 상태입니다.
 

‘상임위 불참’ 국민의힘 진짜 딜레마

 
상임위 불참을 선언한 국민의힘이 더 걱정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국민의힘이 21대 국회 때 주도했던 법안 혹은 국민의힘이 절대 반대할 수 없는 법안을 민주당이 상정하고 의결했을 경우입니다. 더군다나 이러한 법안이 민생 법안이거나 비쟁점 법안이라면 국민의힘은 더욱 난처해지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21대 국회 때 이른바 ‘모성보호 3법’이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절된 바 있습니다. 해당 법안들은 당시 여야 환노위 위원들 사이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한 법안들입니다. 여야 위원들이 각각 비슷한 내용으로 발의한 바 있습니다.
 
‘모성보호 3법’은 남녀고용평등법, 고용보험법, 근로기준법 개정안 등을 한꺼번에 일컫는 용어입니다. 해당 법안에는 육아휴직 최대 3년 보장, 배우자 유급 출산휴가 지원 확대 등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젊은 직장인 부부들이 환영할 만한 내용이 더러 담겨 있고, 민생법안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러한 법안이 민주당이 위원장으로 있는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돼 처리된다고 하면, 국민의힘은 여전히 ‘상임위 불참’ 선언을 할 수 있을까요? 하물며 이 법안이 본회의까지 통과한다면, 대통령 재의요구권을 행사해달라고 선뜻 건의할 수 있을까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민주당이 어떤 법안을 단독 처리하든 대통령 재의요구권만 믿고 있는 것은 안일한 처사입니다.
 
박찬범 취재파일 사진 5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특별법(고준위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당 특별법에는 고준위 방폐장 건립에 근거가 되는 내용들이 담겨 있습니다. 21대 국회 마지막까지 본회의 통과 여부에 관심이 쏠렸던 법안입니다. 윤재옥-홍익표 양당 원내대표 법안 의견차를 거의 좁힌 바 있습니다. 그리고 민주당보단 국민의힘 쪽에서 고준위법 처리에 더욱 공을 들였습니다. 원자력 관련 시설이 영남 쪽에 더 많이 위치해 있기 때문입니다.
 
고준위법의 소관 상임위는 위원장이 정해지지 않은 7개 상임위 가운데 하나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입니다. 만약 국민의힘이 나머지 7개 상임위의 위원장직을 맡지 않겠다고 하면, 이 몫도 민주당이 가져가게 됩니다. 만약 민주당이 이 특별법안을 역으로 통과시키려 한다면 국민의힘은 난관에 봉착합니다. 자신들이 통과시키기 위해 공을 들인 법안인데, 정작 모든 공이 민주당에 돌아가게 됩니다.
 
박찬범 취재파일 사진 6

연금개혁 역제안한 민주당


민주당은 이미 21대 국회 막바지 때 연금개혁안 합의 처리를 국민의힘에 역제안하면서 허를 찌른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이재명 대표는 모수개혁만이라도 먼저 하자며 역제안했고, 22대 국회에서 재논의하자는 국민의힘을 당황시킨 바 있습니다.
 
박찬범 취재파일 사진 7

민주당은 22대 국회 초반에도 이러한 역제안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국민의힘이 차마 반대할 수 없는 법안 처리를 추진해 명분과 실리를 챙기려 할 수 있습니다. 상임위 불참 선언을 한 국민의힘을 압박하는 카드로 쓰일 수 있습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정쟁용 법안이 아닌 민생 법안을 챙긴다는 점에서 ‘입법 독재’란 비판을 피할 수 있어 일석이조입니다.
 
“민주당에 18개 상임위 다 내주자”, “결기를 보여주자” “무슨 법안이든 대통령 재의요구권 건의하자”, “장외 투쟁이라도 하자” 등 주장이 국민의힘 내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무기력한 여당이 되기 싫기 때문에 나온 주장일 순 있겠지만, 민주당이 정작 여야 이견 없는 민생법안을 처리하려고 할 때 어떻게 대응할지를 국민의힘은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 딜레마부터 풀어야 합니다.
 
박찬범 취재파일 사진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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