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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액트지오 아브레우 고문 귀국…가스전 남은 의혹은

동해 심해에 최대 140억 배럴의 석유나 가스가 매장됐을 것으로 분석한 미국 액트지오사의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이 6박 7일간의 한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11일 출국했습니다. 아브레우 고문은 지난 7일 언론 브리핑에서 "동해 울릉분지는 석유나 가스가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제반 요소를 갖췄다"며 "동해 심해 가스전 프로젝트의 유망성이 상당히 높다"고 밝혔지만, 의혹을 완전히 잠재우지는 못했습니다. 최대 140억 배럴이라는 매장량, 20%라는 성공 확률에 대해 납득할 만한 구체적 근거를 대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액트지오의 본사가 본인의 자택이 맞다고 인정하면서 액트지오의 분석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키웠습니다. 아브레우 고문의 방한으로 가스전을 둘러싼 의혹이 잦아들 것이란 정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미국으로 돌아간 셈입니다.
김지성 취재파일_사진1.미국 액트지오사 아브레우 고문

"동해 리스크 높아" vs "잠재 구조 단계에서 철수"


남은 의혹의 핵심은 동해 심해 가스전이 얼마나 사업성이 있느냐입니다. 2007년부터 16년 가까이 동해를 탐사했던 호주의 석유개발회사 우드사이드는 지난해 1월 동해에서 철수했습니다. 철수 사유로 우드사이드는 지난해 반기 사업보고서에 "장래성이 없다"고 적었습니다. 우드사이드의 이런 입장은 다른 문건에서도 확인됩니다. 우드사이드가 광물회사인 BHP와의 합병을 앞두고 외부 전문 평가기관에 의뢰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드사이드는 동해에서 '대게'와 '집개'로 이름 붙여진 구조를 새로 발견했는데, 이 두 구조에 대해 "리스크(위험성)가 높고 탐사 초기 단계"라고 평가했습니다. 우드사이드는 동해 8광구와 6-1광구 북부를 한국석유공사와 함께 탐사했으며, 2012년과 2015년 각각 '주작', '홍게'로 명명된 곳을 시추하기도 했습니다. '주작'에선 100m가 넘는, 석유나 가스가 저장될 가능성이 있는 사암층이 발견됐고, '홍게'에선 비록 양이 많지 않고 이산화탄소가 많이 포함된 편이었지만 가스가 발견됐습니다. 우드사이드 보고서만 놓고 보면, 동해 심해에 석유나 가스가 존재할 가능성은 있지만 사업성이나 경제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우드사이드가 전문 평가기관에 의뢰해 작성한 보고서. '대게'·'집개' 구조에 대해 "리스크가 높고 탐사 초기 단계"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부와 석유공사의 입장은 다릅니다. 먼저, 우드사이드는 2007년부터 10년간 동해 탐사를 진행한 뒤 계약이 만료되자 2019년 다시 10년간 조광권을 연장했는데, 조광권을 연장한 것 자체가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한 방증이라는 게 정부 측 해석입니다. 석유회사들이 같은 광구에서 조광권을 20년까지 연장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겁니다. 정부는 나아가, 우드사이드가 동해에서 철수한 이유를 장래성이 없어서라기보다, BHP 합병 과정에서 전반적으로 사업을 재조정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드사이드가 BHP를 인수하면서 거액의 자금을 지출하게 되자, '당장 돈이 되지 않는' 해외 탐사 사업을 일괄 정리하면서 거기에 동해도 포함됐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정부는 4,500㎢ 면적의 대규모 3차원(3D) 탐사 자료를 우드사이드가 제대로 분석하지 못했거나 아예 보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2021년 우드사이드와 석유공사가 공동으로 2,000㎢ 지역에 대한 3차원 탐사를 벌여 그해 말 전산 입력을 마쳤는데, 불과 3개월 뒤 우드사이드가 철수 의사를 밝히면서 이걸 분석할 시간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우드사이드가 공식 철수한 건 2023년 1월이지만 2022년 3월에 이미 철수 의사를 석유공사에 구두로 통보했다고 전했습니다. 또, 2022년에 석유공사가 독자적으로 사업권을 갖고 있는 6-1광구 중동부에서 2,500㎢를 3차원 탐사했는데, 우드사이드가 이미 철수 의사를 밝힌 터라 이 자료는 우드사이드에 보여주지 않았다고 석유공사는 밝혔습니다. 석유공사는 설명자료를 통해 통상 심해 개발은 1) 강한 탄성파 반응을 보여 저류층이 발달할 것으로 보이는 관심 지역을 도출하는 단계, 2) 전체 지층 구조를 분석해 잠재 구조를 도출하는 단계, 3) 석유 가스를 가두는 역할을 하는 트랩의 유효성이 인정되는 유망 구조를 도출하는 단계를 거친다며, "우드사이드는 유망 구조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잠재 구조 단계에서 철수한 것"이라고 부연했습니다. 잠재 구조 단계에선 매장량을 확인할 수 없어 리스크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도 했습니다.

정부는 우드사이드가 4,500㎢ 지역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고 떠났다고 설명했다.

"가이아나 유전과 동일한 '순차층서학' 활용해 분석"


석유공사는 "우드사이드가 넘겨준 데이터와 추가 탐사 자료 등을 액트지오가 종합적으로 활용해 7개의 유망 구조를 새롭게 도출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우드사이드가 넘겨준 데이터'는 앞에서 언급한 2,000㎢ 지역의 3차원 탐사 자료를, '추가 탐사 자료'는 석유공사가 독자적으로 추진한 2,500㎢ 지역의 3차원 탐사 자료를 말합니다. 액트지오가 이 모든 자료를 분석해 우드사이드가 시추했던 곳보다 더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석유공사는 2022년 2,500㎢ 탐사를 통해 대륭붕에서 대륙사면, 심해로 이어지는 울릉분지 전체에 대한 3차원 탐사가 비로소 완성됐다고 강조합니다. 대륙붕에서 심해로 퇴적물이 어떻게 공급되고, 저류층 역할을 하는 사암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체계적인 분석이 그제서야 가능하게 됐다며 우드사이드가 분석한 것과는 큰 차이가 난다는 게 석유공사의 설명입니다.

석유공사는 또 "액트지오는 우드사이드가 하지 못한 정밀한 탄성파 자료 해석과 액트지오 고유의 분석 기법으로 트랩 견고성 평가와 저류층 물성에 대한 정밀 분석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액트지오 고유의 분석 기법은 뭘까요. 이와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 최남호 2차관은 10일 브리핑에서 '순차층서학'을 언급했습니다. '순차층서학'은 해수면의 상승과 하강, 해안선의 전진과 후퇴 과정에서 퇴적상이 변하는 점을 바탕으로 층서를 해석하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최 차관은 "순차층서학은 1970년대 엑슨모빌에서 시작된 새로운 분석 방법 중의 하나"라며 "순차층서학의 권위자가 아브레우 고문"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액트지오의 이런 분석이 "순차층서학을 활용한 국내 최초 분석"이라고도 했습니다. 금세기 최대 심해 유전이라 불리는 남미 가이아나 유전에도 동일한 분석 방법이 사용됐다면서, 가이아나 유전의 성공 확률이 16%였고 동해 가스전의 성공 확률이 20%이기 때문에, 동해 가스전의 성공률이 상당히 높다는 게 정부의 논리입니다.

"7개 중 5개 시추…광구 새로 구획해 투자 유치"


정부는 예산 등을 고려해 새로운 7개의 유망 구조를 다 뚫지는 않고, 5개를 시추해 본다는 방침입니다. 성공 확률이 20%이기 때문에 다섯 번 뚫으면 한 번은 성공할 수 있다는 계산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최초 시추는 올해 12월 착수할 예정으로, 다음 달 중 시추 위치를 결정할 계획입니다. 최종 시추 위치는 석유공사가 결정하겠지만 액트지오의 자문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액트지오가 위치를 가장 잘 알 수밖에 없다는 건데, 다만 이전 계약에 자문 내용도 포함돼 있어 추가 자문료 지급은 없을 것이라고 정부는 설명했습니다.

정부는 동해 광구도 새로 구획하겠다고 했습니다. 지금 광구는 서해부터 시작해 남해, 동해 순으로 1광구에서 8광구까지 구획돼 있는데, 이런 구획이 새로 발견된 유망 구조와 맞지 않아, 해외 투자 유치를 위해서라도 새로운 구획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예컨대, 7개 유망 구조 중 가장 크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대왕고래'는 8광구와 6-1광구 북부, 6-1광구 중동부에 다 걸쳐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심해 유전 시추 경험이 없어 외국 메이저기업의 투자가 필요한 상항으로, 새로운 유망 구조 단위로 메이저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겠다는 구상입니다. 복수의 외국 메이저기업이 동해 가스전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도 정부는 해당 기업이 어디인지는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동해 광구

"시추해 볼 만"…"대통령이 직접 발표했어야 했나"


전문가들은 동해 심해 가스전이 유망하다고 분석 결과가 나온 데다, 이미 거액의 시추선 사용 계약 등을 마친 상황이라 시추 외에 다른 선택지가 거의 없다는 입장입니다. 석유공사는 지난달 초 노르웨이 시추업체인 '시드릴'과 4,776만 달러(약 657억 원)의 시추선 용선료 계약을 했습니다. 다만 한 번 시추에 1,000억 원 이상 소요되는 만큼 앞으로 신중하고 차분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합니다. 김진수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는 "석유공사의 경영 판단 또는 전문가들의 판단으로 시추공 한 곳을 뚫어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 곳만 뚫더라도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있기 때문에 이 정보를 바탕으로 평가를 진행하면서 신중하게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투자 리스크 심의 등 내·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프로토콜이 잘 마련돼 있다"면서 "특별융자 심의 시 전문가들의 판단을 충분히 받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시추 결과를 보면서 실제 매장량이 얼마인지, 경제성이 있는지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더라도 대통령이 직접 발표했었어야 했는지에 대한 논란은 이어질 전망입니다. 아직 개발 초기 단계인 데다, 석유나 가스가 존재하더라도 경제성 있는 상업 생산은 불가능한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시추공 한 곳을 뚫는데 1년 가까이 걸릴 것으로 예상합니다. 시추선 섭외가 쉽지 않고, 시추 결과 분석과 다음 시추 위치 선정 등에 몇 개월씩 소요된다고 합니다. 정부의 방침대로 5곳을 뚫는다고 하면, 단순 계산으로 최대 5년이 걸릴 수 있습니다. 물론, 처음 시추에서 석유나 가스가 바로 나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20%라는 확률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현 정부 임기 안에 석유나 가스가 발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석유공사 일각에선 '한 번 시추를 한 뒤 결과를 보고 대국민 발표를 했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습니다. 예정대로 시추가 진행될 경우 1차 시추 결과는 내년 상반기에 나올 예정입니다. 결과에 따라 정국이 다시 요동칠 수 있습니다. 당장 야당은 가스전의 사업성을 철저히 검증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시추까지 가는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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