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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사라진 상태"…'가족 돌봄' 막중한 무게, 이제는 분담해야

<앵커>

인구 절벽 문제를 짚어보는 SBS 연중 기획 순서, 오늘(27일)부터는 우리 시대 가족의 모습을 진단해보겠습니다. 혈연으로 맺어지는 가족은 때로는 선택하지 않은 의무를 평생 떠안게 만들기도 합니다. 오늘은 먼저 가족을 돌보느라 자신의 삶은 전혀 돌볼 수 없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김지욱, 박하정 기자가 차례로 전하겠습니다.

<김지욱 기자>

2008년생 A 양은 고등학교 1학년입니다.

꿈 많을 나이지만, 학교를 마치면 친구들과 달리 마트를 가야 합니다.

장애가 있는 엄마와 언니 대신 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A 양 :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것 중에는 뭐 하는 거 있어요?) 떡볶이, 찌개 같은 거. 김치찌개.]

3년 전 아빠마저 집을 떠난 뒤부터는 소녀 가장이 됐습니다.

한 달 생활비라고는 160만 원 남짓.

[A 양 : (언니가) 킥보드를 타다가 (차를) 박아서 물어낸 적이 있어요. 생활비로 이렇게 빠듯하게 다 보내줬어요.]

하루하루 버티는 게 최선인 삶.

대학 진학이나, 동물 돌보는 일을 하고 싶다는 장래 희망은 말 그대로 꿈일 뿐입니다.

온몸을 닦고 자세도 바꾸고, 팔다리 관절이 굳는 탓에 하루에도 여러 번 펴 드려야 합니다.

[박은정 : 아우 아파. 많이 강직됐지. 그래도 풀어주셔야 돼 엄마.]

40대 박은정 씨는 교통사고를 당해 편마비와 치매가 온 어머니를 돌본 지 올해로 10년째입니다.

폭력적인 섬망 증세로 병원에 모시기도, 간병인을 구하기도 힘듭니다.

교통사고 합의금을 받아 이중배상이라는 이유로 장기요양급여도 제한됐습니다.

방문요양 서비스 등이 없으니 어머니 돌보는 일은 박 씨가 오롯이 책임져야 할 의무가 됐습니다.

본인 인생은 사라졌습니다.

[박은정 : 저도 원래 병이 있었거든요. 희귀병으로 말초 신경증. 근데 그거 병원도 못 다녔어요.]

친척들 도움과 대출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박은정 : 요즘에는 힘들어서 밤에 엄마 재워놓고 밤에 일 잠깐 뭐 아르바이트 나가고 그래요. 그냥 최대한 아끼는 수밖에 없죠, 방법이.]

17살 소녀 가장이나 아픈 어머니를 돌보는 40대 딸, 지금까지는 그저 효녀라 칭찬해왔습니다.

<박하정 기자>

하지만 미래를 준비해야 할 고등학생이거나 활발하게 사회생활을 할 성인이 사회에서 배제되다시피 하며 삶의 궤도를 이탈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어린 나이에 모든 걸 감당하고 있는 A 양은 말할 곳도, 기댈 곳도 없는 걸 가장 힘들어합니다.

[A 양 :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으니까 조금 힘들기도 하고 속으로 혼자 이렇게 해야 되니까 답답하기도 하고.]

그저 평범한 삶을 누릴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말합니다.

[A 양 : (꿈은) 그냥 직장인? (평범한?) 특별한 거는 좀 벅차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고.]

A 양 같은 처지의 청년들의 우울감 유병률이 일반 청년의 7배를 넘는다는 조사도 있습니다.

어머니 돌봄이 일상의 전부였던 박 씨, 이로 인해 쌓여가는 고립감은 세상에 나갈 용기마저 꺾어 놨습니다.

[박은정 :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 같고 그래요. 그게(사회에 나가는 게) 어느 정도로 긴장이 되냐면 이력서를 쓴다 그러면 팔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새로운 가족을 꾸리는 건 포기한 지 오래입니다.

[박은정 : (처음엔) 내가 어떻게 살아야지, 뭐 이런 생각 안 해. 그냥 엄마만 깨라, 깨고 나아라…. (나중엔 힘들어서) 너무 살기가 싫어서 엄마랑 같이 죽어야 될까, 이 생각까지 할 정도로….]

[석정호/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소진 단계에 도달하면 아무것도 감정이 느껴지지 않고, 왜 사는지도 모르겠고, 삶에 대한 의미를 상실하는 것 이런 것들이 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가족 돌봄을 개인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걸 분담할 수 있는 사회여야 인구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가 됐습니다.

[허준수/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한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전체적인 사회 문제로 생각하고, 분담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하고), 복지 서비스로 반영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영상취재 : 박대영·인필성·윤  형·양지훈, 영상편집 : 원형희, 디자인 : 장예은, 취재협조 : 월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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