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는 기둥이다
아이의 세계관에서 부모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큽니다. 학대를 당한 아이들의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대개 내 아이가 학대를 당한 사실을 알게 됐다면, 부모로서 누구나 아이 앞에서 흥분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이 아닌 아이를 먼저 생각해본다면 어떨까요? 우선 학대를 당한 아이들은 어른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부모조차 어른이기 때문에 가장 시급한 일은 '부모로서 나는(혹은 우리는) 너를 학대한 어른들과 다르다'는 점을 아이에게 각인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학대로 인해 불안에 빠진 아이가 부모만큼은 안정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경기 안성시에서 보육교사가 아이의 팔을 부러뜨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5살 아이에게 다가갔을 때, 아이는 너무 놀라 부러진 팔을 붙잡고는 병실 구석에 몸을 집어넣으며 숨기 바빴습니다. 그 모습을 처음 보는 저 조차도 아이가 느꼈을 학대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당시 아이의 부모님은 흥분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아이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차분히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설득은 실패했고, 취재진은 모두 병실 밖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취재진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촬영을 하는 동안 아이는 조금씩 경계심을 풀었고, 나중에는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취재진을 바라보며 가는 길을 배웅해주었습니다. 만약 아이의 모습을 보고, 당시 부모님께서 똑같이 흥분하고 불안해했다면 어땠을까. 아이의 육체적, 심리적 회복은 더욱 요원해졌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지속적으로 학대를 당한 아이들은 가해자가 만든 '너는 매를 맞을만한 나쁜 아이야'라는 왜곡된 자아상을 갖게 됩니다.
이처럼 뒤틀린 아이의 세계관을 곱게 펴주고, 아이가 호기심을 갖고 다시금 즐겁게 삶을 배워갈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주체는 바로 부모입니다. 내 아이의 학대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 부모로서 억장이 무너지고 앞이 깜깜해지더라도 굳건한 기둥처럼 아이 곁에서 버팀목이 돼 주셔야 합니다.
어린이집의 CCTV 설치 의무화로 어린이집에서 학대 사실을 은폐하는 것은 이전 보다 어려워졌습니다. 학대가 의심될 경우, 부모는 어린이집에 CCTV 영상 열람을 얼마든지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입니다. 영유아보육법 제15조에 따르면, 보호자는 자녀의 안전을 확인할 목적으로 열람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어린이집 측에서 억지를 부리며 CCTV 영상 열람을 거부하는 사례들이 있습니다. 경기 고양시의 한 어린이집에서는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며 피해아동의 부모님이 CCTV 영상 열람을 신청하자 다른 아이들의 개인정보도 영상에는 담겨 있다며, 열람신청을 거부했습니다. 결국 부모는 경찰에 신고했고, 수사관과 함께 가서야 CCTV 영상을 열람할 수 있었습니다.
영상 내용을 확인한 경찰은 가해 보육교사를 입건했고, CCTV 영상을 증거자료로 가져갔습니다. 피해 아동의 부모님은 학대가 의심되는 시간대외에도 영상을 살펴보고 싶어 경찰서를 찾았지만 CCTV를 볼 수 없었습니다. 영상 내용은 그 자체로 피의사실이기 때문에 피해아동의 보호자라 할지라도 경찰의 증거자료를 자유롭게 열람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속사정을 모르는 부모님들은 수사관이 CCTV를 보여주지 않는다며 낙담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의 학대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은 곧, 아이가 그동안 얼마만큼 고통받았는지를 헤아리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수사기관이 아니라 어린이집에 요구해야 합니다. 실제로 영유아 보육법은 '자녀 또는 보호 아동이 아동학대, 안전사고 등으로 정신적 피해 또는 신체적 피해를 입었다고 의심되는 등의 경우'라면 얼마든지 어린이집에 요청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부 어린이집에서는 '개인정보가 담겨 있다' '경찰 혹은 변호사와 함께 와야 한다' 등등의 조건을 내세우며 CCTV 열람 요청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꼼수'입니다. 이런 경우 위축되거나 좌절할 필요 없이 영유아보육법을 보여주며 당당히 CCTV 영상 열람을 요청해야 합니다. 영유아보육법 어디에도 경찰이나 변호사를 대동하라는 등의 조건은 없습니다. 또한 영유아보육법 시행규칙 제19조에 따르면, 한 번이라도 학대가 의심돼 열람을 요청받은 경우에는 법에서 규정한 보관기관이 지나더라도 해당 영상을 삭제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해, 우리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학대를 받았다고 의심이 된다면 얼마든지 열람을 요청할 수 있고, 한 번 요청된 내용은 보관기관과 관계없이 계속해서 열람을 요청해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맞벌이 등을 이유로 뒤늦게 내 자녀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아동 학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지금이라도 그 과정에서 우리 아이도 학대를 당했는지 확인하고 싶은 경우에도, 보관기관과 관계없이 어린이집에 해당 영상에 대한 열람을 얼마든지 신청할 수 있습니다.
부산의 한 유치원에서는 교사 8명 중 7명이 수십 명이 넘는 아이들을 폭행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내 아이가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한 부모가 CCTV 영상 열람을 요구하자 유치원 측은 '누구누구 어머니가 극성이니까, 동요하지 마시고 우리를 계속해서 믿어 달라'며 대응했습니다. 열람을 요청한 부모를 다른 부모들로부터 고립시키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지속적인 노력으로 CCTV 영상을 열람하며 학대 사실을 확인했고, 그 과정에서 내 아이뿐만이 아니라 유치원에 다니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심각한 수준의 폭행을 교사들로부터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 날 이후 많은 부모님들이 유치원을 찾아 CCTV 영상을 살피며 혹시나 내 아이가 학대를 당한 것은 아닌지 떨리는 마음으로 확인하기 시작했습니다.
"내 아이가 맞은 것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에 다들 CCTV 영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영상을 지켜봤어요."
안타깝게도 당시에는 폭행을 당하지 않은 원생보다 폭행을 당한 원생의 수가 더 많았습니다. 부모님들은 교대로 보관된 CCTV 영상을 꼼꼼히 살펴보며, 교사들의 폭행이 시기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계속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CCTV 영상을 본다는 것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보육교사의 학대 행위를 적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동안 내 아이가 어떠한 학대를 당해왔는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둘 모두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CCTV 영상을 보는 것이 언제나 능사만은 아닙니다. 내 아이가 학대를 당하는 영상을 반복적으로 보게 될 경우, 부모 역시 심리적 충격을 받아 우울증을 경험하거나 심각한 경우에는 트라우마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학대 아동의 부모님들은 아이에 대한 심리치료를 병행하는 것에는 적극적이지만, 자신 역시 심리 치료를 받는 것에 있어서는 많은 경우 주저합니다. 그 안에는 내 아이가 고통받는 순간 정작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있을 수 있고, 먼저 아이가 회복한 다음에 내가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희생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 역시 치유가 필요합니다. 아동 학대는 내 아이만 경험하는 폭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동 학대와 관련해서 취재를 마칠 때마다 제가 드렸던 이야기는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를 위해서는 부모의 역할과 책임이 너무나 커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지켜봤던 몇몇 부모님들은 바람직하게 대처하며 일상으로 돌아갈 시기를 차근차근 앞당기고 있었습니다. 리포트에는 담을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이렇게 묶어 어딘가에서 고통 받고 있을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