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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단독] IOC "정관 번역 다시 해" 국가 망신

[취재파일][단독] IOC "정관 번역 다시 해" 국가 망신
한국 스포츠가 체육 단체 통합을 서두르다 국제적인 망신을 당한 것으로 SBS 취재 결과 드러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스포츠를 이끌고 있는 양대 산맥인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대한체육회의 한심한 행정이 확인돼 더욱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국에서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전말은 이렇습니다.

체육 단체 통합은 엘리트 스포츠를 맡고 있는 대한체육회와 생활체육을 담당하고 있는 국민생활체육회를 하나로 합치는 작업입니다. 법률이 정한 시한은 오는 3월27일까지입니다. 그런데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는 통합체육회 정관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승인 문제를 놓고 이달 초 충돌했습니다. 

대한체육회는 “IOC로부터 정관을 사전 승인받기 전에는 통합체육회 발기인 총회를 개최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문체부는 “국내법이 우선이므로 IOC의 승인에 관계없이 발기인 총회를 열 수 있다”고 맞섰습니다. 시간에 쫓기게 된 두 기관은 IOC에 정관을 일단 보내 검토(Review)를 받기로 했습니다.

문체부는 통합체육회 정관을 검토해달라는 영어 공문과 정관의 영문 번역본을 작성해 대한체육회에 전달하면서 IOC에 빨리 발송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대한체육회 국제 업무 담당자가 영어 공문를 보고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영어 표현 자체가 너무 직설적이고 수준 이하여서 도저히 그대로 보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문체부가 작성한 문서에는 “한국 법률 체계에서 다른 절차들이 있기 때문에 이달 안으로 검토한 뒤 의견을 알려주기 바랍니다.(Please give the reviews and comments by this month because of other procedures in the legal system of Korea)란 문장이 있습니다.

영문 정관은 총 27페이지짜리로 전문적인 용어가 많아 검토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문체부는 이 달 안에 답장을 보내라고 요구했습니다. IOC 담당자의 입장에서 보면 무례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또 ‘Please give’라는 말도 국제 기관간의 공식 문서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표현입니다. 전반적으로 영어 수준이 조잡하기 이를데 없고, 일부 문장은 문법에도 맞지 않았습니다. 대한체육회는 부랴부랴 문체부가 작성한 문서의 내용을 일부 수정해 IOC에 지난 18일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정작 더 큰 문제는 통합체육회 정관의 영문 번역본에 있었습니다. 번역본을 받아본 IOC 담당자는 바로 다음 날인 19일 이런 내용의 답장을 대한체육회에 발송했습니다. 정관에 대한 검토 결과서를 보낸 것이 아니라 정관을 제대로 번역해 다시 보내라는 주문이었습니다. 답장의 일부분을 옮기면 이렇습니다.

“대한올림픽위원회가 정관의 영어 번역본을 다시 신중히 체크해서 가능한 빨리 공식 최종본을 보내주기 바랍니다.  IOC가 정관의 모든 규정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정말로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정관의 최종본을 받게 되면 곧바로 검토에 들어가  IOC의 피드백을 드릴 것입니다.”

IOC 담당자가 예의상 직접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대한체육회가 보낸 영문 번역본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 번역본만 봐서는 분명하고 정확한 이해가 되지 않으니 제대로 번역을 해서 조만간 공식 최종본을 발송하라는 뜻입니다.  

저는 대한체육회가 발송한 통합체육회 정관의 영문 번역본과 한글 원문을 입수해 서로 대조해보았습니다. 영어의 수준은 둘째 치고라도 언뜻 봐도 누락된 부분이 바로 나타납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제5조(사업) 12항에 ‘그 밖에 체육 진흥 및 체육회의 목적달성에 필요한 사업’으로 돼 있는데 영문 번역본에는 'Any other activities that may be necessary for the fulfillment of the KSOC's mission'으로 돼 있습니다. ‘체육 진흥’이란 말이 영어 번역본에는 아예 빠져 있는 것입니다. 또 ‘제17조(총회의 소집)’은 ‘Article 17. General Assembly’로만 번역돼 있습니다. ‘General Assembly’는 총회이지 총회의 소집이 아닙니다.

이러니 각 나라 체육회의 정관을 전문적으로 심사해온 IOC 담당자가 함량미달로 판단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대한체육회의 고위 관계자는 SBS와의 통화에서 “영어에 능통한 국제변호사에게 이 번역본을 보여주었더니 법리적 부분은 말할 것도 없고 잘못 번역된 내용이 너무 많았다고 지적했다. 통합체육회 정관을 제대로 번역하려면 국제변호사와 KOC 관계자가 한 자리에 모여 상당한 시간을 들여 작업을 해야 하는데 문체부가 졸속으로 하다 보니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 한마디로 국가 망신이라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어제(22일) 대한체육회 정기 대의원총회장에서는 대한체육회 노동조합이 김정행 회장과 양재완 사무총장의 퇴진을 촉구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들은 체육 단체 통합 과정에서 드러난 김 회장과 양 총장의 무능과 무소신을 강력히 성토하며 하루빨리 사퇴할 것을 공식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문체부의 ‘갑질’을 즉각 중단하라고 외쳤습니다.

법률이 정한 체육 단체 통합 시한은 이제 한 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문체부와 대한체육회는 사사건건 서로 싸우느라 수많은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체육 단체 통합을 이끌고 있는 두 기관이 더 이상 국내외적으로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면 남은 기간 비상한 각오로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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