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편견'에 멍드는 어린이 환자들

[취재파일] '편견'에 멍드는 어린이 환자들
지난 해 말, 희소 난치성 질환에 대해 취재하다가 우연히 선천성 림프관종을 앓고 있는 민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선천성 림프관종이란 림프관의 기형으로 몸에 작은 주머니가 생기는 질환인데, 이 종양이 몸의 어느 부위에 어떤 크기로 생기느냐에 따라 환자들의 삶의 질이나 치료 여부가 완전히 달라진다.

목에 손톱만한 주머니가 생겼다가 자연히 없어지는 경우도 있고, 잘라내서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작은 림프관종도 있다. 한쪽 다리만 엄청나게 굵어지거나 혈관이 울룩불룩 튀어나와 치료가 어려운 환자도 종종 있다.

민하는 가장 안타까운 케이스다. 치료하기 까다롭고, 가장 눈에 띄는 부위인 얼굴에 림프관종이 자리를 잡았다. 의료진의 표현을 빌면 “얼굴에 림프관종 여러 개가 포도송이처럼 자라” 얼굴이 심하게 부풀어 올랐고, 식도와 기도까지 눌릴 정도다. 아이는 숨을 쉴 때마다 "쌕쌕" 소리를 낸다.

주치의인 서울아산병원 김대연 소아외과 교수의 소개로 민하와 민하의 어머니를 처음 만난 순간, 한 눈에 봐도 많이 힘들어하는 아이에 대한 안쓰러움과 함께, (부끄럽지만) 인터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사소한 질환이라도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하물며 내 아이가 아픈 모습을 방송에 내보내겠다는 부모는 많지 않다.

같은 질환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득해도, 대부분은 거절하고, 아주 드물게 몇몇 분만 모자이크 처리를 전제로 취재에 응한다.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민하 어머니도 취재를 사양하거나 모자이크를 요청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그런데 20대 중반인 이 젊은 어머니는 예상을 깨고 담담하게 말했다. 민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촬영해도 되고, 인터뷰에도 응하겠다고. 
민하는 입원할 때마다 1인실을 사용한다. 집안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니다. 지난 해 중순 갑자기 민하가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바람에 수술비가 부족해져서 수술을 몇 달 미뤘을 정도다. 그런데도 1인실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다. 주변의 싸늘한 시선 때문에 상처받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민하 어머니 박수지씨의 말을 그대로 옮겨본다.

"아이가 얼굴이 많이 부었잖아요. 많이 부어서 사람들이 쳐다보고 시선이 안 좋아요. 같은 아기인데도 그 아기가 민아 보고 울고 이상하다고 그러고. 한 번은 6인실을 썼는데, 민하가 사람들 눈치를 봐서 침대 밖으로 안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서 1인실을 쓰는 거예요."

"민하는 또래 친구들 보면 놀고 싶어하는데, 애들이 민하 보면 도망가요, 얼굴 이상하다고."

"다른 분들은 림프관종이 안 보이는 데 많이 있더라고요. 근데 민하는 얼굴에 있다 보니까, 더 많이 아픈 아기가 아니라 이상한 아기라고 하세요. 어떡해요, 아픈 건데."
태어난 날부터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해 6개월 만에 퇴원한 민하는 길지도 않은 2년 3개월을 살아오면서 각종 시술과 수술을 12차례나 받았다. 가녀린 몸으로 림프관종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편견'과 '냉대'라는 보이지 않는 적과도 외롭고 힘든 싸움을 해야 한다.

민하 어머니가 뉴스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저 민하는 이상한 아이가 아니라, 아픈 아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다른 아이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으로 민하를 봐달라는 거다. 민하의 사연이 나간 뒤, SBS 뉴스 사이트에 달린 댓글을 보면 사람들의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민하 가족에게 비싼 치료비보다 더 무서운 게 사람들 시선입니다. 태어나서 첫 여행에서 지역 상인 때문에 마음 상해 돌아오고. 단지 병 때문에 얼굴이 부어 있을 뿐인데. 따뜻한 말 한마디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냥 뒤에서 쑥덕거리지만 않아도 감사할 뿐입니다. 제 눈엔 항상 이쁜 조카라." 
층판상 어린선이라는 아주 드문 피부 질환을 앓고 있는 채진이도 비슷한 상황이다. 피부가 물고기 비늘처럼 갈라지는 질환이다. 건강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는 보습제를 매일 발라야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는데, 한 달에 보습제로만 40~50만 원씩 든다. 그러나 채진이 어머니가 경제적인 문제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게 바로 사람들의 편견과 따가운 시선이다.
"'어머 쟤 피부 좀 봐' 그런 말 다 듣잖아요. 지금은 알아 들으니까. '어떡하니, 피부가 너무 아프겠다' 그런 말 항상 들어요. 여자애가 일곱 살이면 꾸미기 좋아할 땐데, 상처를 받을 텐데, 제 앞에서는 되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해요."

 채진이 어머니도 이 희소한 질병을 알려 사람들의 편견을 없애고, 나아가 층판상 어린선이라는 질병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방송 출연을 택한 것이다.
 
 질병과 싸우기에도 벅찬 이들에게 치료비로 인한 경제적 부담은 물론이고, 편견이라는 또 다른 부담을 지우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가 아닐까. 민하와 채진이가 빨리 완치되는 것 못지 않게, 좋은 친구들과 따뜻한 이웃을 만나 존중 받고 사랑 받으며 행복한 아이로 자라길 바라고 또 바란다. 

▶ 희소한 병일수록 지원받기 힘들어 …무색한 제도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