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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케냐 마라토너 에루페 특별 귀화 7일 결정


지난 3년 동안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킨 케냐 출신 마라토너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28살)의 특별 귀화 여부가 오는 7일 오후에 판가름 날 것으로 SBS 취재 결과 드러났습니다. 대한체육회의 고위 관계자는 SBS와의 통화에서 “이날 제21차 법제상벌위원회를 개최해 대한육상경기연맹이 요청한 에루페 특별 귀화 안건을 심의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만약 대한체육회가 에루페의 귀화에 찬성 의견을 나타내면 이후 법무부의 승인을 거쳐 귀화가 최종 결정됩니다. 지금까지 관례를 보면 대한체육회의 승인 절차를 통과한 뒤 법무부에서 거부된 사례가 거의 없어 사실상 7일 법제상벌위원회가 에루페의 태극마크 여부를 가리는 최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에루페는 1988년 케냐에서 태어난 선수로 175cm, 61kg의 체격 조건을 갖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경주국제마라톤에서 2시간09분23초로 우승하며 국내에 알려졌고 이후 한국에서 열린 5개의 마라톤 대회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면서 세계 정상급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2012년 3월 서울국제마라톤에서는 2시간5분37초로 우승했는데 이는 국내 마라톤 대회에서 작성된 역대 최고 기록입니다. 이봉주의 한국 최고기록이 2시간07분20초인 점을 고려하면 에루페의 기량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해 3월에는 2시간6분11초를 작성했는데 이는 2015시즌 세계 10위에 해당하는 기록입니다. 올림픽 마라톤은 4년마다 열리기 때문에 기록보다 순위 싸움입니다. 에루페는 출전한 6개 대회에서 모두 우승할만큼 순위 경쟁에 강합니다. 특히 더위에 강한 면모를 갖고 있어 리우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당장 메달을 딸 수 있는 에루페를 한국으로 귀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3년 전부터 국내 육상계에서 제기됐습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황영조,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 이후 이렇다 할 한국 선수가 나타나지 않아 국제 수준과 현격한 차이가 났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마라토너를 몇 년 안에 육성할 수는 없기에 이대로 가면 올해 리우올림픽은 물론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의 성적도 불을 보듯 뻔한 상황입니다. 케냐의 에루페를 귀화시켜서라도 올림픽 메달을 따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런 배경에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 흑인 선수인 에루페가 실제로 태극마크를 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외국인 선수 영입으로 만든 메달과 기록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황영조, 이봉주의 영광은 한국 선수로 이어가는 게 맞다”는 국내 마라톤인들의 주장이 거세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특별 귀화로 국가대표가 된 선수는 모두 9명입니다. 문태종, 문태영(이상 남자 농구), 김한별(여자 농구), 공상정(쇼트트랙), 브록 라던스키, 브라이언 영, 마이클 스위프트, 마이크 테스트위드, 박은정(이상 아이스하키)이 당사자들입니다. 하지만 마라톤은 고 손기정 선생이후 우리 겨레의 혼이 담긴 ‘민족 스포츠’란 이미지가 강해 외국인 선수의 특별 귀화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만만치 않습니다.

또 하나의 난관은 에루페가 금지약물 복용으로 징계를 당한 점입니다. 그는 도핑테스트 양성 반응으로 2012년 말 국제육상경기연맹(IAAF)로부터 자격 정지 2년을 받은 뒤 2015년 1월 복귀했습니다. 현재 대한체육회 규정은 ‘징계 해지 후 3년이 지나야 대표 선수로 뛸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수영의 박태환처럼 현 대한체육회 대표 선발 규정이 바뀌지 않으면 오는 8월 리우올림픽 참가가 불가능합니다. 에루페 측은 그동안 “금지약물 복용은 실수이다. 케냐 이동식 버스에서 말라리아 예방 주사를 맞았는데 그때 문제가 생겼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과정이야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도핑으로 징계를 당한 것은 분명합니다.

에루페의 한국 이름은 ‘오주한’(吳走韓)입니다. ‘한국을 위해 달린다’는 뜻입니다. 또 에루페는 지난해 6월에 충청남도 청양군 체육회에 입단하는 등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 무대를 밟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나타냈습니다.  대한육상경기연맹은 에루페의 귀화가 “한국 마라톤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그의 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에루페가 리우올림픽에서 20년 만에 한국 선수단에 마라톤 메달을 선사할 기량을 갖고 있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단지 메달을 딸 수 있다는 이유로 한국 국적을 선뜻 부여하는 것은 자칫 두고두고 나쁜 선례를 남길 수도 있습니다. 대한체육회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실리와 명분 이 두 가지를 모두 감안한, 현명한 결단이 내려지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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