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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표지와 바꾼 양심





매 학기가 시작되면, 대학가 서점은 분주해집니다. 수업에 필요한 전공 관련 책을 사려는 학생들이 몰려들기 때문이죠. 그렇게 새로 산 책.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표지와 저자 이름만 다르고 내용은 작년에 봤던 교과서와 같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일명 ‘표지갈이’ 수법으로 발간된 책입니다. 내용은 같고, 표지의 저자명만 바꿔 새 책처럼 출간한 겁니다. 배후엔 대학교수와 출판사가 있습니다. 

원래 책을 쓴 사람이 A 교수라고 합시다. 그런데 A 교수가 쓴 책이 더는 팔리지 않아 재고가 쌓입니다. 특정 과목 교과서일 경우 학기 초가 지나면 사실상 수요가 사라져 출판사로서는 재고를 처분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표지갈이입니다. 원고 작성에 전혀 참여하지 않은 B 교수로 저자를 바꾼 뒤, 같은 내용의 책을 표지만 바꿔 새 책인 것처럼 내놓는 겁니다. 

그렇다면 실제 저자인 A 교수 입장에선 손해가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이공계 전공 서적의 경우 출판하기가 쉽지 않은데, 원저자인 A 교수는 출판사가 자신의 다른 책을 출판해줄 거라는 사실상의 약속을 받고 '표지갈이'를 묵인해주는 겁니다.

책을 쓰지도 않고 표지갈이에 동참한 B교수는 왜 이런 짓을 하느냐고요?

쓰지도 않은 책을 판 대가로 받은 인세를 노리는 사람도 있고, 연구실적이 필요해 이런 범죄에 동참하는 교수도 있습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이렇게 표지갈이에 한번 동참한 교수들의 약점을 잡아 함부로 다른 출판사에서 책을 내지 못하게 붙잡는 효과도 있습니다. 결국, 원저자와 이름을 빌려주는 교수 그리고 출판사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표지갈이' 범죄가 벌어지는 겁니다. 

이런 교수가 얼마나 되느냐고요?

검찰 수사 결과 200명이 넘었습니다. 의정부지방검찰청은 오늘(24일) '표지갈이' 수법으로 책을 출간하거나 이를 눈감아준 혐의로 대학교수 200여 명을 입건했다고 밝혔습니다. 전국적으로 50개가 넘은 대학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심지어 이른바 '스타 강사'와 각종 '학회장'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런 책을 발간해 준 3개 출판사 임직원 4명도 입건됐습니다. 최근 해당 교수 200여 명을 소환 조사한 검찰은 늦어도 다음 달 중순까지 전원 재판에 회부할 방침입니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대학에서 쫓겨날 가능성이 큽니다. 각 대학이 논문 표절 교수와 법원에서 벌금 3백만 원 이상 선고받은 교수를 재임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사상 초유의 무더기 교수 퇴출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큰 겁니다. 

[김영종 / 의정부지검 차장검사]
공소유지에 큰 어려움이 없는 만큼 입건된 교수들은 법원에서 대부분 유죄판결을 받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학자로서의 양심을 저버린 교수들은 결국 자신의 명예를 저버렸고,직장도 잃게 될 예정입니다. 

그러나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구일까요? 학생입니다.

충분히 물려받거나 빌려서 읽을 수 있는 책을 '표지갈이'가 됐다는 이유로 돈 주고 새로 사들여야 했던 학생들, 그리고 학자의 양심을 저버린 교수들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했던 학생들이 가장 큰 피해자입니다.

기획/구성: 임찬종, 김민영
그래픽: 이윤주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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