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은 여러 가지 고민을 했습니다. 도발이라고 정의해두면 북한의 불법 행위를 부각시킬 수도 있고, 북한에게 사과를 요구할 수단도 하나 챙길 수 있습니다. 북한은 아직까지 사과 한마디 없습니다. 그 날의 사건을 포격전으로 정의해달라는 해병대에 요청에 국방부는 여론도 살폈습니다. 결론은 연평도 포격전이 아니라 연평도 포격 도발로 내려졌습니다.
![철모 외피에 불 붙은 것도 모르고 싸운 임준영 해병대원](http://img.sbs.co.kr/newimg/news/20151124/200889840_1280.jpg)
![북한의 포격을 뚫고 반격하는 7중대의 자주포](http://img.sbs.co.kr/newimg/news/20151124/200889839_1280.jpg)
연평부대 포 7중대는 북한의 집중 포격을 받으면서도 피폭된 K-9 자주포의 불을 끄고 또 고치며 13분 만에 반격했습니다. 군 교범을 충실히 따랐다면 포 7중대원은 한시 바삐 피신하고 반격은 다른 포대에 맡겼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연평부대엔 북한을 타격할 수 있는 화력이라곤 포 7중대의 K-9 자주포 6문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포 7중대는 맞으면서 싸우는, 교범에도 없는 전투를 펼쳤습니다.
1차 사격 때는 대포병 레이더를 운영했던 타군으로부터 도발 원점의 좌표를 받지 못했고 2차 사격 때는 표고(標高)가 안 나온 엉터리 좌표를 받았지만 북한군에게 사망 10 여명, 부상 20 여명이라는 타격을 입혔습니다. 누가 봐도 전투이고 이긴 싸움입니다. 포병 예비역들이라면 연평부대 포 7중대가 어떤 싸움을 했는지 잘 알 것입니다. 당시 포 7중대장이었던 김정수 소령은 “선제 공격 명령을 받으면 북한의 개머리 진지와 무도를 지도에서 지워버릴 수 있을 정도로 항상 준비가 돼있었다”며 포 7중대의 대비태세를 설명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어제 포격 5주기 행사에 보낸 영상 메시지를 통해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우리 영토와 국민의 생명을 지켜낸 연평부대 장병 모두가 우리 국민의 영웅”이라고 말했습니다. 포격전이 맞습니다.
![피폭 총격에 소나무에 박힌 고 서정우 하사의 정모 앵카](http://img.sbs.co.kr/newimg/news/20151124/200889841_1280.jpg)
일각에서는 포격전으로 명명하면 북한의 불법 도발의 성격이 흐려진다고 주장합니다. 괜한 걱정입니다. 포격전에는 북한의 불법 도발에 맞서 싸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NLL 인근 수역을 국제 분쟁 지역화하려는 북한의 전략에 말려들어갈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포격 도발이라고 말한들 NLL은 국제 평화 지역이 될 수 없습니다.
2010년 11월 23일 연평부대는 혼자였습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연평도와 연평부대는 버려졌습니다. 군 지휘부는 확전을 우려했는지 전투기를 띄웠지만 미사일을 탑재 안했고 연평도와 개머리 진지 사이 서해 해상에 있던 함정들을 대피시켰습니다. 연평부대에 사격 명령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연평부대는 군 지휘부 없이도 의연하게 싸웠고 이겼습니다.
군 지휘부는 북한의 기습 공격에 당황했고 당했습니다. 그래서 2010년 11월 23일은 군 지휘부에게는 연평도 포격 도발인가 봅니다. 연평부대원에게 훈장 하나 내리지 않는 이유도 이런 데 있는 듯합니다. 해병대 연평부대에게 2010년 11월 23일 사건은 북한의 기습 도발에 용감히 맞서 싸운 명백한 포격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