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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그리스 국민들이 마음을 바꾼 이유는?

[취재파일] 그리스 국민들이 마음을 바꾼 이유는?
7월 5일 그리스의 향후 운명에 분수령이 될 중요한 투표 결과가 나왔습니다. 채권단 요구안을 따를 건지 안 따를 건 지를 묻는 내용의 투표였는데 결과가 매우 의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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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과 반대가 박빙을 이룰 것이라는 투표 직전의 사전 여론 조사 결과를 완전히 뒤집으며 압도적 반대로 결과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투표 이틀 전 여론조사업체 입소스가 1천 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선 찬성과 반대가 44% 대 43%였고, 블룸버그가 실시한 여론조사 역시 반대가 43%, 찬성이 42.5%로 박빙이었습니다.

그리스 일간지 아브기가 실시한 여론조사도 반대가 43%, 찬성이 42.5%, 찬반을 정하지 않은 미정이 9%였고, 또 다른 일간지인 에쓰노쓰 조사에선 찬성이 44.8%, 반대가 43.4%, 미정이 11.8%로 조사됐습니다. 그런데 막상 투표함의 뚜껑을 열자 여론조사 결과와는 완전히 딴판으로 반대표가 61%를 넘어섰습니다.

● "왜 이렇게 그리스 국민들 마음은 돌변한 걸까?"
전문가들은 일단 투표 직전 하루가 다르게 변해간 그리스 국민들 마음을 미처 여론조사와 언론들이 읽어내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사실 여론조사 결과 추이를 보면 그리스 국민들 생각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음이 보입니다. 투표 열흘 전 여론조사기관인 카파리서치가 조사했을 때는 찬성이 47.2%, 반대가 33%였고, 같은 시기 또 다른 여론조사기관인 GPO조사에서도 역시 찬성이 47%, 반대가 43%였습니다.

이렇게 일주일 전 조사만 해도 찬성이 최대 14% 이상 높았지만, 투표 날이 가까워질수록 격차는 좁아지고 투표 이틀 전의 조사에선 '초박빙선'까지 좁혀집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그리스 국민들 마음이 돌변했을까요?  전문가들은 일단 외부에서 그리스를 바라보는 정서와 그리스 자국에서 자신들을 생각하는 정서가 크게 다른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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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빚지고 안 갚는 게 잘하는 것 아니지만, 우리도 지칠 대로 지쳤다!"

외부에서 보기에 그리스는 엄청난 빚을 져놓고 탕감해 달라고 요구하는 도덕적 해이에 빠진 사람들로 보지만, 그리스 국민들은 2000년대 후반 미국발 경제 위기 이후 지속적인 긴축으로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라고 항변합니다. 또, 그리스의 엄청난 빚은 그 이전 정권의 무능과 부패에서 비롯된 바가 큰데 국민들이 고스란히 그 희생을 전부 짊어져야 한다는 것은 가혹하다는 생각이 적지 않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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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윗세대가 저지른 부패로 생긴 빚을 왜 우리가 갚아야 하나요?"

거기에다 유로존의 맹주로 그리스에 무서운 채권자 역할을 톡톡히 하는 독일과 프랑스에 대한 반감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합니다. 그리스인들이 독일과 프랑스에 대해 갖는 감정은 경제학자인 피케티가 최근 독일 언론과의 한 인터뷰에서 아주 정확하게 담아내기도 했습니다.

피케티는 인터뷰에서 "독일이 부채와 관련해 매우 도덕적인 입장을 유지하며 부채가 반드시 상환돼야 한다고 확신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대단한 농담'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합니다. "독일은 역사상 대외 채무를 갚지 않은 국가 중 단연 대표 국가"라면서 그런  "독일이 채무 상환문제와 관련해 다른 나라를 훈계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꼬집은 겁니다.

● "독일이 채무 상환문제와 관련해 다른 나라를 훈계할 입장이 아니다" (피케티)
피케티는 1·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갚아야 할 어마어마한 전쟁 부채가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탕감됐음을 지적하며 "독일의 보수주의자들이 역사에 대한 놀라울 정도의 무지 때문에 유럽과 유럽의 사상을 파괴할까 두렵다"고까지 말했습니다. 물론 피케티는 그리스를 옹호하는 것 만은 아닙니다.

그는 "그리스는 분명히 잘못을 저질렀다. 2009년까지 그리스 정부는 장부를 위조했다"며 "그러나 그리스의 젊은 세대에게 윗 세대의 실수에 대한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이런 피케티의 생각은 현재 그리스인들, 특히 그리스의 젊은 층들의 생각을 정확하게 반영합니다.

경제적 번영의 혜택을 향유라도 해본 장년층과 달리 현재 그리스의 젊은 층들은 자신들 삶 대부분의 기간 동안 경제가 계속 어렵다는 얘기만 귀에 못이 막히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빚도 어느 정도여야 갚겠다는 의지와 열의가 생기는 것이지 감당할 수 없게 엄청나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 "'반대'를 해야만 앞으로 채무 탕감 협상에 유리하다" (치프라스)
여기다 결정적으로 치프라스가 이끄는 '급진좌파' 시리자 정권의 사활을 건 여론전이 투표 직전 그리스 국민들의 마음을 반대로 돌리는 것에 주효하게 작용했습니다.

치프라스 정권은 "채권단에 세게 나가야 앞으로의 협상에서 유리하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했는데, 이 강력하고 확실한 메시지가 '이제까지 나름 긴축을 했는데도  별로 달라지지 않은 현실'에 진절머리가 나 있던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겁니다.

 그러나 상당수 전문가들은 대다수의 그리스인과 치프라스 정권 역시 유로존 탈퇴를 의미라는 '그렉시트'를 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분석합니다. 유로화가 아닌 자신들의 자체 화페로 돌아가면, 그때는 정말 경제가 회생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리스가 바라는 건 최대한 부채 탕감을 받고 유로존 국가로서 계속 존속하는 겁니다. 오는 20일 일단 유럽중앙은행에서 빌린 4조 원을 갚지 못하면 '사실상 디폴트'에 빠지는 그리스. 

이제 보름도 채 남지 않은 기간 동안 과연 그리스의 운명은 어떻게 결정될 지, 그리고 유럽 연합이라는 공동체의 운명은  어떻게 달라질 지, '돈'을 둘러싼 각 나라의 이해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유로존 국가들은 '유럽 통합이라는 대의명분'과 '자국의 실리'를  놓고 어떤 선택을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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