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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까칠한 완벽주의자 스티브 잡스, 힐링의 메신저가 되다? ①

화제의 전시 '마크 로스코'…잡스와 로스코

[취재파일] 까칠한 완벽주의자 스티브 잡스, 힐링의 메신저가 되다? ①
2011년,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직후의 일입니다. 인터넷 메신저 상태메시지를 “잡스처럼 살아봤자 돌아오는 건 암뿐이다”로 적었었습니다. 제 딴에는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천재에 대한 아쉬움과 세속적인 성공의 허망함을 함께 담은 표현이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메시지를 바꿔야 했습니다. 잡스를 신처럼 추앙하던 몇몇 지인들의 항의가 너무 거셌습니다. "잡스님의 수많은 장점을 제쳐두고 왜 하필이면 까칠했던 일면을 부각시키는 거냐?"고 볼멘소리들을 했습니다.

그동안 국내외 여러 언론을 통해 익히 보도된 내용을 보면 잡스는 정말 까칠한 완벽주의자였다고 하지요. 애플 직원들이 가장 끔찍해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엘리베이터에서 잡스를 만나는 것이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혹시라도 잡스가 업무에 대해 뭘 물어볼까 두려워서입니다. 제대로 대답을 못했다간 주변에 사람이 있든 없든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낄 정도의 엄청난 질책을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넘었지만, 전 세계 어딜 가나 잡스의 인기는 여전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아이폰 이전과 이후로 구분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 이들마저 있습니다. 그만큼 잡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창조와 혁신의 아이콘입니다.

잡스의 이런 성공이 가능했던 건 타고난 천재였던 잡스가 완벽주의자이기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잡스의 까칠함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가뜩이나 남들보다 세 수 쯤 앞을 내다보고 있는 사람이 끊임없이 완벽을 추구하며 자신을 다그치기까지 했으니, 그의 눈에 평범한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답답하고 모자라 보였을까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완벽주의와 까칠한 성격 탓에 본인 역시 아마도 평생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겁니다. 스트레스야말로 의사들도 인정하는 만병의 근원입니다. 그러니 잡스가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데는 그의 성격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릅니다. “잡스처럼 살아봤자 돌아오는 건 암뿐이다”는 그래서 적어 넣었던 문구였습니다. 말하자면, “워... 워... 릴랙~스!”하는 자기암시였던 셈입니다.
스티브 잡스
그래서일까요? 실제로 잡스는 젊은 시절부터 명상에 깊이 빠져 있었다고 합니다. 자택에도 명상을 위한 방을 따로 만들어 놓고 수시로 명상에 잠겼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선불교에 심취했었다고 하지요.

며칠 전 요즘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화제의 전시장엘 다녀왔습니다.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마크 로스코’전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사랑한 화가"라는 수식어가 붙은 바로 그 전시입니다.

마크 로스코는 미국의 대표적인 추상표현주의 화가입니다. 거대한 화면 전체를 단순한 몇 개의 사각형 색 덩어리로 가득 채운 그림들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선도 없고 모서리나 경계도 흐릿흐릿 무너져 있는, 말 그대로 거대한 색 덩어리들입니다. 이번 전시엔 로스코의 초기작부터 사망하기 직전 유작까지 총 50점이 소개됐습니다.

전시는 지난달 23일 개막했는데, 월요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개막 첫 날 전시장 문이 열리기 전부터 관람객들이 몰려들어 줄을 섰다고 합니다. 주최측의 말로는 “예술의전당이 생긴 이래 미술 전시로는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전시장은 초기부터 말기까지 로스코의 작품을 시대별로 배치한 작은 방들로 이뤄져 있는데,  특히 ‘로스코 채플’을 재현한 방이 인기입니다. 8각형 방 벽에 어두운 색조의 그림들이 걸려 있고, 그 아래 바닥엔 작은 방석이 놓여 있습니다. 관람객들이 방석에 앉아서 한동안 오롯이 그림을 쳐다보고 있는 광경이 종일 이어집니다.

로스코 채플은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종파를 초월한 예배당 이름입니다. 원래는 로마 가톨릭 예배당으로 설계됐던 건물입니다. 그런데 벽을 장식할 그림을 요청받은 로스코가 방문객들이 자신의 그림을 보면서 명상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원했습니다. 의뢰자가 이 뜻을 받아들이면서 특정 종교를 위한 예배당 대신 모두를 위한 명상의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로스코 채플은 로스코가 사망한 이듬해인 1971년 헌정됐습니다. 이후 '세계에서 가장 평화로운 공간'으로 불리며 명소가 됐습니다. 로스코의 그림을 마주보며 앉아서 명상하는 방문객들로 사시사철 북적입니다. 8각 벽면을 장식한 로스코의 작품 14점은 모두 검은 색조가 주를 이루는 어두운 작품들입니다.

1903년생인 로스코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인간 삶의 비극성에 집중하게 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념 때문에, 종교 때문에, 권력 때문에, 때로는 그저 생존을 위해서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생 자체가 비극이었습니다. 나아가 줄을 잇는 비극을 경험하며 비극과 고통에 둔감해져 가는 인간의 모습은 더욱더 비극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로스코는 자신의 그림이 관람객들에게 비극적인 삶 속에서 잊고 있던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 주는 ‘명상’과 ‘종교적 체험’의 도구가 되길 원했습니다. 최대한 단순한 색채만으로 비극, 숙명, 황홀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들을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관객들에겐 침묵하며 그저 자신의 그림을 오래오래 들여다보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림을 응시한다면 마치 음악이 그런 것처럼 당신은 그 색이 될 것이고, 전적으로 그 색에 젖어들게 될 것이다.” 로스코의 말입니다.

1943년 <예술에 관한 성명>에선 이런 말도 했습니다. “복잡한 생각을 심미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은 단순함이다....환상을 없애고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 평면을 선택했다.” 그런데 이 짧은 몇 줄 속에 아주 익숙한 단어들이 보입니다. ‘단순함’, ‘평면’.

눈치 채셨나요? 맞습니다. 단순한 사각형의 터치스크린으로 세상을 바꿔 놓은 아이폰의 핵심이 바로 단순함, 그리고 평면이죠. 서두에 장황하게 얘기했던 잡스가 로스코와 만나는 지점입니다. 

▶ [취재파일] 까칠한 완벽주의자 스티브 잡스, 힐링의 메신저가 되다? ①
▶ [오디오 취재파일] 문화부 테라스-'마크 로스코 전'과 스티브 잡스, 그리고 '미움받을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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