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이유는 총리의 설명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한 번 강연하는데, 웬만한 사람 월급보다 많은 5백만 원 넘게 돈을 받은 건 너무 과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의 기저에는 이렇게 돈을 쉽게 번 사람이 일반 국민들의 입장을 얼마나 이해할까, 그리고 얼마나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펼까라는 불신이 있었겠죠. 서민들의 눈높이를 모르는 사람이 최고위 공직자가 된다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금융위원장 후보자로 내정된 임종룡 전 NH농협금융지주 회장도 이완구 총리와 비슷하게 황제 강연을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지난 2013년 5월 27일, 제주도에서 열린 한 금융 컨퍼런스에 강연자로 참여합니다. 장관급인 국무총리실장 자리에서 물러난 지 두 달여가 지난 뒤였습니다. 금융회사 임원 등 60여 명이 모여 친목을 다지고, 강연을 듣는 이 컨퍼런스에서 임 후보자는 한국 경제 현황과 금융 기관의 대처 방안이라는 주제로 2시간 가량 강연을 합니다. 그리고 강연료로 520여만 원을 받습니다.
● 2시간에 520만 원…황제 강연료?
한번 강연에 520여만 원. 이완구 총리 후보자가 한 번 강의에서 받은 돈과 거의 비슷한 액수입니다. 황제 강연이라는 비판이 나올 법 하죠. 이완구 총리의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이 총리가 받은 돈에는 강연료에 더해 다른 행정 업무를 했던 것이 반영되어 있으니 임 후보자가 받은 돈이 더 황제 강연료에 부합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에 대해 임 후보자 측은 "컨퍼런스에 참여한 다른 강연자와 비교했을 때 크게 많은 액수는 아니었다"며, "장소가 제주도라는 장소적 특성이 고려된 것으로 안다"고 밝혔습니다.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입맛이 쓸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과연 이 분이 서민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금융 정책을 수립하는 데 서민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 때문일 겁니다.
눈여겨볼 점은 또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강연을 할 때 임 후보자가 연세대 석좌교수 신분이었다는 점입니다. 고위 공직자들을 위한 변형된 형태의 전관예우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는 바로 그 석좌교수입니다. 원래 탁월한 실력을 갖춘 사람에게 기금을 바탕으로 연구의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제도인 석좌교수제도가 국내에 들어와서 변질된 거죠. 원래 학자들 사이에서 석좌교수가 되는 것은 영예로운 것인데 국내에서는 일부 대학들이 고위 공직자 출신들을 석좌교수라는 이름으로 채용하고 이들은 대 정부 로비스트 역할을 하거나 연구나 강의는 하지 않고 다른 자리로 가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 석좌교수 임용 1달 후, 금융지주사 회장으로 선출
임 후보자 측은 "2학기에 2과목 강의를 개설하기로 하고, 강의를 준비하고 있었다"며, "농협금융지주 회장 자리는 6월 초 회장추천위로부터 후보에 올랐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석좌교수로 있으면서 다른 자리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등 소위 석좌교수를 보험용으로 활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개운치는 않습니다.
임종룡 후보자가 금융위원장 후보자 내정됐을 때, 금융노조는 이례적인 환영 성명을 냈습니다. 능력 있고, 크게 도덕적으로도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크게 작용했을 겁니다. 서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금융 정책의 수장으로서 당연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최근 위장전입, 다운계약서 작성 등 구태로 지적되는 의혹들이 임 후보자에게도 제기됐습니다.
이러자 정책 위주로 청문회를 준비하겠다던 국회 청문위원들의 전략도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의원은 "임종룡 금융위원장 후보자에 대해 위장전입, 황제 강연, 다운계약서 작성 등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후보자가 공정성과 청렴성이 필수적인 금융위원장 후보로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는지 자질과 자격에 대해 면밀히 검증하겠다"며 청문회를 단단히 벼르고 있습니다.
금융위원장, 통일부 장관, 국토부 장관, 해수부 장관, 국정원장까지. 자리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자리입니다. 특히, 남북관계, 경제가 어려운 지금 상황에서는 더 그렇죠. 그래서 후보자들이 어떤 정책을 펼지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청문회를 통해 검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번 청문회도 정책 검증보다는 자질 검증으로 갈 공산이 커 보입니다. 국정원장을 제외한 장관급 후보자 전원이 위장전입을 한 것으로 드러났으니 자질 검증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올해가 우리 경제, 나아가 우리나라의 골든타임이라는데, 부처 수장들에 대한 청문회에서 정책이 아닌 자질을 이야기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왜 이런 상황이 반복될까요? 그리고 누구의 잘못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