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받아보고 있는 학술지 측에서 자꾸 스팸 메일을 보냅니다. 자기네 저널에 논문 좀 실어달라고. 보내지 말라고 해도 계속 보냅니다. 그만 화가 치밉니다. 스팸 메일에 항의하는 뜻으로 욕설이 섞인 문장으로 가득 채운 ‘논문’을 하나 구해서 메일로 보냈습니다. 내용이랄 것도 없는 ‘무늬만 논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 논문이 ‘덜컥’ 게재가 승인됐습니다.
며칠 전 컴퓨터공학 학술지 ‘IJACT(The International Journal of Advanced Computer Technology)’에서 승인된 이 논문의 제목은 ‘망할 놈의 당신네 메일 주소록에서 날 좀 빼주시오(Get me off Your Fucking Mailing List)’입니다.
그런데 이 논문을 투고한 사람은 원저자 2명이 아닌, 호주연합대학(Federation University Australia) 공대의 피터 뱀플루(Peter Vamplew) 교수입니다. 이 사람도 원저자들과 똑같이 스팸 메일에 시달렸습니다. 대개는 학술지로부터 ‘논문을 실어줄 테니, 심사비로 몇 백 달러를 보내라’ 같은 내용들입니다.
뱀플루 교수는 IJACT라는 저널에서 보낸 스팸 메일을 받고는 항의 차원에서 답장으로 이 논문을 보냈습니다. 메일 안에 다른 메시지는 하나도 없이, 논문만 덜렁 첨부해서 보냈습니다. 저널 담당자가 메일을 열어보고 읽기야 하겠지만, 게재를 해 줄 거라고는 당연히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널 측은 이 논문의 게재를 승인하면서 첨부 파일이 딸린 확인 메일까지 보냈습니다. 하나는 공식적 게재 승인서이고, 다른 하나는 심사 보고서였습니다.
승인 서류를 보면 논문을 보낸 뱀플루 교수에게 후속 안내가 포함돼 있습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테즈 팔 싱’이란 인물에게 미화 150달러를 보내면 논문이 게재될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학계에서는 논문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심사했을 그 ‘익명의 심사자’와 저널 측에게 한껏 조롱을 보내고 있습니다. 동료들이 논문의 질을 평가하는 ‘피어 리뷰(peer-review)’도 제대로 하지 않고, 심사료 몇 푼 받자고 모든 학자들에게 사방으로 스팸 메일을 뿌려대고, 어쩌다 돈과 함께 논문이 날아오면 엄정한 평가 대신 ‘기계적으로’ 게재 승인이 내려지는 학계의 어두운 현실이 제대로 까발려졌다는 겁니다.
과거에도 엉터리 논문으로 학계를 조롱한 사례는 몇 건 있었지만, 이번처럼 그야말로 아무 내용도 없는 이런 논문이 심사료 150달러 때문에 통과되는 사례는 전무후무했기에 학자들은 ‘과학사에 길이 남을’ 이 사건을 씁쓸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