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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애플이 탄생한 건 '반독점 규제' 덕분이었다 [스프]

[뉴스쉽] 미국이 플랫폼 기업을 규제하는 방식 - ② 경쟁법

✏️ 뉴스쉽 네 줄 요약

·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같은 빅테크 기업은 경쟁하지 않고 독점하려는 방식으로 이익을 극대화해 왔습니다.

· 바이든 정부 들면서 '아마존 저승사자'와 '구글의 적'으로 불리는 이른바 반독점 3인방이 정부의 반독점 정책을 좌우하게 됐습니다.

· 미국은 100년 록펠러 가문의 스탠더드오일 해체를 시작으로 AT&T, IBM,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독점 행위를 규제해 온 역사가 있습니다.

· 기업이 너무 커져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게 되면 정부가 막아서야 신생 기업이 성장하고 혁신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게 미국의 '반독점 전통'입니다.
 

전형우 뉴스쉽
테무나 알리 같은 'C커머스'(중국 온라인 유통 플랫폼)의 한국 침투가 무섭습니다. C커머스에서 물건을 사려고 보면 이렇게 싼값에 무료 배송을 해주면 어떻게 돈을 버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업 초기에 싼 가격과 편리한 배송으로 고객을 확보하려는 전략은 C커머스가 처음이 아닙니다. 그 전에 쿠팡이 있었고, 미국에는 원조 격인 아마존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적자를 보면서까지 고객을 위한 투자를 늘려 독점적인 지위를 구축하고, 그 지위를 이용해 나중에 돈을 벌어들이는 방식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싼 가격에 빠른 배송으로 편리하기까지 하니, 이커머스의 이런 전략이 나쁠 건 없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소비자한테 이득이 되면 독점이어도 괜찮다, 혹은 독점이 아니다.' 이것이 미국의 전통적인 반독점법(Antitrust law)의 원리입니다. 그런데 기존의 논리로는 구글, 아마존과 같은 빅테크, 플랫폼 기업의 독점을 포착할 수 없고 견제할 수도 없다는 목소리가 미국에서 커졌습니다. 이런 목소리는 '뉴 브랜다이즈 운동'이라고 불리는데 이번 뉴스쉽은 이 움직임에 대해 다룹니다.
 

미국 빅테크가 이익을 내는 법 "경쟁하지 말고 독점하라"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아마존. 주주들이 사랑하는 '매그니피센트 7' 주식 중 대부분이 빅테크 기업이고 온라인 플랫폼 기업입니다. 이들 기업은 필연적으로 독점하려 합니다. 테크 기업의 특성상 남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기술을 혼자 확보해야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온라인 플랫폼 기업은 많은 고객들이 자신의 플랫폼에 오랫동안 머물러야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실리콘밸리를 이끌어가는 '페이팔 마피아'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피터 틸은 저서 <제로 투 원>에서 대놓고 '경쟁하지 말고 독점하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독점은 천문학적인 이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은 독점하려 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독점은 시장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경쟁의 순기능을 없애기 때문에 정부는 독점을 막아야 합니다. 정부가 나서서 독점을 막고, 중소기업과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미국의 반독점법입니다. 유럽에서는 경쟁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국내에선 공정거래법이라고 부릅니다.
 

'아마존 저승사자'와 '구글의 적'…바이든 정부의 반독점 3인방

'빅테크의 독점을 막아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메타(페이스북), 아마존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아야 한다.' 이런 주장이 미국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나온 건 2020년 민주당 대선 경선입니다. 바이든이 당선돼 결국 대선에서 트럼프를 이긴 이 선거에서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민주당 경선 후보로 나왔습니다. 엘리자베스 워런은 버니 샌더스만큼 좌파는 아니지만 민주당 내 진보적인 목소리를 담당하면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으로 활약해 왔습니다.

2020년 민주당 경선 당시 엘리자베스 워런은 아마존을 쪼개는 계획을 대선 공약으로 발표해 호응을 얻었습니다. 학계에서 워런과 입장을 같이 하며 플랫폼에 대한 독점 규제가 필요하다고 외친 3인방이 있었는데,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들이 미국 정부의 반독점 정책을 좌우하는 자리로 임명됐습니다.

전형우 뉴스쉽
'반독점 3인방' 중 첫 번째는 리나 칸입니다. 2021년 당시 32살의 나이로 바이든 정부의 연방거래위원회(FTC,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 격) 위원장에 임명됐습니다. 영국 런던에서 파키스탄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리나 칸은 미국으로 이민을 왔고 2017년 예일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했습니다. 로스쿨을 졸업하면서 쓴 박사논문이 리나 칸을 스타로 만들었습니다.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Amazon's Antitrust Paradox)'이라는 제목의 96페이지짜리 논문인데, 2020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선 엘리자베스 워런이 이 논문을 인용하면서 빅테크 규제를 주장했습니다.

논문의 요지는 아마존의 '약탈적 가격 전략'을 기존의 반독점법 원리가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반독점법 원리는 시카고학파와 법률가인 로버트 보크가 만들어낸 '소비자 후생' 기준을 따랐습니다. 시카고학파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신자유주의 흐름과 함께 미국 경제학의 주류가 됐는데, 반독점법에서도 같은 흐름이 있었습니다.

이들 시카고학파는 독점의 기준을 '소비자 후생'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기준을 세웠습니다. 어떤 기업의 행태가 결과적으로 소비자에게 싼 가격을 가져오면 좋은 것으로 보고, 자신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가격을 비싸게 올리면 나쁜 것으로 봐서 정부가 규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싼 게 장땡'이라는 시각입니다. 이런 전통적 시각으로 봤을 때 아마존은 독점으로 규제할 필요가 없습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아마존에서 싼 가격에 물건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리나 칸은 소비자 후생, 그리고 싼 가격이라는 기준으로는 플랫폼의 독점이 가져오는 악영향을 포착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마존이 적자를 보면서도 싼 가격에 파는 전략을 사용함으로 인해 경쟁하는 업체들이 살아남지 못하도록 하고 아마존에 입점한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들에게 정당한 가격을 쳐주지 않고, 플랫폼에서 일하는 근로자에게도 임금을 제대로 치루지 않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아마존의 사업 전략이 나쁠 게 없지만, 시장의 경쟁 시스템을 구조적으로 보고 소비자가 아닌 다른 행위자들의 관점에서는 아마존의 전략이 악영향을 끼친다는 겁니다. 또한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아마존이 적자 전략을 통해 독점적 지위를 구축한 뒤에 소비자 부담을 일방적으로 올릴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합니다. 이런 폐해들을 전통적인 반독점법의 원리가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리나 칸의 논문입니다. 이 논문을 통해 리나 칸은 '아마존 저승사자'로 불렸습니다.

3인방 중 나머지 두 명은 조나단 캔터와 팀 우입니다. 반독점을 전문으로 활동하며 '구글의 적'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던 변호사 조나단 캔터는 바이든 정부에서 법무부 반독점국 국장이 됐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장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전속고발권을 가지고 1차 조사를 담당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반독점과 관련해 연방거래위원회(FTC)와 법무부 반독점국(Anti-Trust Division)으로 이원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연방거래위원회는 행정 처분을 하고, 법무부 반독점국은 수사를 하는 식입니다. 바이든 정부 들면서 정부의 반독점 컨트롤타워 두 곳의 장을 플랫폼 기업 규제를 앞장서 주장해왔던 법률가들이 차지하게 됐습니다.

팀 우는 '뉴 브랜다이즈 운동'의 이론가였습니다. 컬럼비아대학교 로스쿨 교수였던 팀 우는 미국의 반독점 역사를 망라하면서 플랫폼 규제의 필요성을 정리한 저서를 썼습니다. 한국에는 『빅니스』라는 이름으로 번역됐는데 원제는 '거대함의 저주(The curse of Bigness)'입니다. '망 중립성'이라는 개념을 만든 사람이기도 합니다.

바이든은 팀 우 교수를 국가경제위원회(NEC)에서 기술과 반독점 정책을 담당하는 특별보좌관으로 임명했습니다. 이로서 뉴 브랜다이즈 운동의 대표적인 법률가 3명은 바이든 정부의 반독점 정책을 이끌게 됐습니다.
 

법원에서 막힌 반독점 소송…트럼프 정부가 들어선다면?

민주당 바이든 정부와 반독점 3인방은 빅테크를 견제했습니다. 연방거래위원회는 아마존이 경쟁을 억제하고 납품 업체에 자신의 서비스만 이용할 것을 강요했다고 보고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법무부 반독점국은 구글이 모든 안드로이드 폰에 앱을 탑재하도록 하고, 경쟁사의 진입을 막았다는 이유로 기소했고, 애플도 아이폰에 다른 기기와 호환이 되지 않는 앱을 깔고 앱스토어를 통해서만 다른 앱을 결제하도록 만든 것은 독점이라며 기소했습니다.

하지만 반독점 3인방의 주장과는 다르게 미국 연방대법원은 아직 시카고학파의 '소비자 후생 기준' 그러니까 전통적인 반독점법 원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때문에, 바이든 정부가 제기한 빅테크에 대한 독점 소송들이 제대로 받아들여진 사례는 아직 잘 없습니다. 또 만약에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돼 공화당 정부가 들어서면 상대적으로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통해 반독점 소송들을 취하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연방대법원에서 독점이라는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반독점 3인방의 기소 자체가 빅테크 기업이 독점으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예방 효과가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조사와 기소 자체가 빅테크로 하여금 적극적인 인수합병을 막고, 눈치를 보게 만들어 독점으로 나아가는 걸 막는다는 겁니다.
 

100년간 이어진 미국의 '반독점 전통'

미국이 독점 기업을 강하게 규제하는 것은 100년간 이어져 온 전통입니다. 현대에 와서는 민주당 정부가 들어설 때 독점 기업에 대한 반독점 규제를 강하게 하는 경향이 있지만, 반독점법의 본격적인 시작은 공화당의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이끌었습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1901년부터 1909년까지 미국 대통령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독점 기업의 폐해가 막 밝혀지면서 시민들 사이에서 '트러스트(Trust, 한국식으로는 재벌)'에 대한 반감이 커지던 시기였습니다. 이때는 미국에 전국적인 언론이 처음 등장하던 시기기도 합니다. 땅이 넓고 통신과 운송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데다가 연방보다는 주에 대한 정체성이 컸던 당시 미국에는 지역신문만 존재했습니다.

이때 '10센트 잡지'가 등장합니다. 10센트라는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잡지들은 미국에서 처음으로 연방 차원의 언론으로 등장합니다. 특히 『매클루어스 매거진』이라는 잡지가 가장 영향력이 컸는데, 여기에 소속된 기자 아이다 타벨은 3년에 걸쳐 스탠더드오일이라는 기업의 독점에 대한 탐사보도를 진행해 기사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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