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Affirmative action.’
‘소수인종 우대정책’ 혹은 ‘차별 제한 규정’ 정도로 번역되는 이 단어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특히 주변에 미국에서 대학 입시를 앞둔 친지를 둔 분이라면, 아마 여러 번 들어보셨을 수도 있습니다. 이 정책은 ‘Positive discrimination’, 즉 적극적(긍정적) 차별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역사적으로, 구조적으로 차별받아 온 소수 집단을 사회가 구조적으로 우대함으로써, 배상하는 차원에서 시행하는 모든 정책을 일컫는 말입니다. 공식적으로는 카스트가 폐지됐지만, 여전히 문화적으로는 신분제의 잔재가 남은 인도에서 차별받던 계급 출신을 공무원 주요 보직에 최소 몇 명씩 채용하도록 한 직접적인 할당제가 적극적인 차별의 좋은 예입니다.
미국에서는 오랫동안 차별받던 유색인종에게 각종 선발 과정에서 가산점을 줍니다. 대학 입시가 대표적입니다. 노예제가 폐지된 지 100년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던 인종차별에 대한 각성이 일어나기 시작한 1960년대에 처음으로 이 단어가 쓰이고 관련 정책이 도입됐습니다. 이후 지난 수십 년간 논란과 부침이 없지 않았지만, 21세기 들어 우대받는 대상에 들지 못하는 인종 출신 학생들이 ‘역차별’을 받는다는 소송이 잦아졌습니다. 많은 부문에서 미국 사회의 ‘최종 심판’ 역할을 하는 대법원의 구도가 6:3 보수 우위로 재편되면서 소수인종 우대 정책이 폐지되는 건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많았습니다.
대법원 판결 앞둔 소수인종 우대정책
보수 우위 대법원이 그동안 내린 판결 중에는 미국인 다수가 생각하는 바와는 거리가 먼 결정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 관해서는 미국 여론도 현행 소수인종 우대정책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바로 이번 주에 퓨리서치 센터에서 내놓은 따끈따끈한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그렇습니다. 미국인들에게 대학 입시에서 인종이나 민족을 고려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지 아닌지 물었더니, 49%가 불공정하다고 답해, 공정하다고 답한 20%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둘 다 아니라고 답한 응답자는 17%, 모르겠다고 답한 응답자는 13%.) 그동안은 겉보기에 공정하지 않은 소지가 있더라도, 또 이른바 ‘역차별’ 논란이 있어도 역사적인 맥락에서 교육 기회를 얻지 못한 유색인종에게 기회를 주는 게 맞다는 주장이 우세했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진짜 다양한 학생들이 모이는 캠퍼스가 목표라면
지금의 소수인종 우대정책은 세월이 흐르면서 처음 취지는 빛이 바랬고, 점점 더 인위적인 할당제의 성격을 띠면서 제도를 향한 불만이 쌓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처음 정책이 도입되기 시작한 1970년대에는 유색인종(주로 흑인) 가운데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인종에 따른 빈부격차도 훨씬 컸죠. 즉, 그때는 인종을 보면 거의 틀림없이 계층이나 계급을 예측할 수 있었고, 학생뿐 아니라 가족 전체가 교육 기회를 어느 정도 받았는지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흑인에게 더 너그러운 잣대를 적용해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그동안의 잘못을 시정하는 최소한의 도리이자, 구조적인 경제적 불평등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데 기여하는 정책이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오랫동안 기득권을 누려 온 백인 중에도 상대적으로 교육 기회를 받지 못한 학생들이 자꾸 나옵니다. 물론 전체 인종을 기준으로 보면 흑인이나 유색인종에 비해 사정이 낫겠지만, 통계상 평균에서 벗어나는 사례—부잣집에서 자란 흑인 학생 혹은 가난해서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백인 학생—가 조금씩 늘어나면서 꾸준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립니다. 여기에 유색인종도 다양해졌고, 인종에 따라 처한 상황이 다르다 보니, 인종 전체를 하나의 집단으로 묶기도 어려워졌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교육의 힘을 믿습니다. 구색 갖추기가 아닌 진짜 다양성이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여전히 많습니다. 다만 이제는 바뀐 환경에 맞춰 인종, 성별, 출신 배경 등 여러 가지 다양성을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 더 정교한 방법을 써야 합니다. 매사추세츠주의 한 공립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소피아 람이 뉴욕타임스에 쓴 칼럼은 정확히 그 문제를 짚어냈습니다.
람의 주장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인종보다 더 공정하고 더 많은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는 겁니다. 바로 가계 소득과 부, 즉 출신 계층을 기준으로 다양한 학생들을 뽑자는 겁니다. 인종만 보고 계층을 예측하는 건 갈수록 어려워지고, 납세 기록 등 여러 방법을 통해 이 학생이 어떤 환경에서 공부를 해왔는지, 대학 생활에 필요한 지원을 (가족으로부터)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확인하기는 더 쉬워졌습니다.
대법원이 현행 소수인종 우대정책을 위헌으로 판결하더라도 람은 차라리 이번 기회에 소득 수준을 바탕으로 학생을 뽑는, 더 공정하고 더 나은 입시 제도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실제 정책을 바꾸고 제도가 정착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적어도 현행 소수인종 우대정책이 폐지된다고 재앙이 오지는 않으리라는 거죠. 실제로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미시간 등 아홉 개 주는 공립대학 입시에서 인종을 기준으로 삼지 못하게 한 뒤에도 그럭저럭 캠퍼스의 다양성을 유지해 왔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