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세계정책연구소 소장 미셸 부커는 다보스 포럼에서 '회색 코뿔소'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초원의 회색 코뿔소는 멀리 있어도 쉽게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오면 아무것도 못 하거나 일부러 무시하는 것을 비유한 개념이다. 가계 부채나 연금 개혁 문제처럼 위험성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지만, 대비를 하지 않은 채 위험성을 회피한 결과 문제가 현실화됐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 하는 경우 등에 쓰인다.
윤석열 후보 (측)에 있어 '배우자 이슈'는 오래 된 회색 코뿔소였다. 2019년 검찰총장 인사 청문회에서부터 윤 후보가 현재 몸담고 있는 국민의힘 측에 의해 제기된 의혹이다. 배우자의 학력 의혹과 배우자 및 장모의 법 위반 의혹 등이었다.
법률 이슈는 수사를 통해 진행되고 있어서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학력 및 경력 의혹은 자체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이슈였다. 2019년 조국사태 이후 여권에 의해 지속적인 문제제기가 있었던 만큼, 대선 의혹의 주요 이슈가 될 것이라는 개연성은 충분했다. 해당 이슈를 점검하고 대비할 시간도 충분했다.
회색 코뿔소가 된 배우자 관련 의혹
윤 후보 측 내부에서 위험성에 대한 경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선 경선 기간 전후로 윤 후보 측에선 배우자 이슈에 대한 철저한 검증 필요성이 제기된 걸로 알려진다. 윤 후보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를 수사한 만큼, 윤 후보에게 더 높은 잣대가 적용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검증 필요성에 대한 의견은 채택되지 않았다. 윤 후보는 해당 의견 제시에 부정적 의사를 강하게 피력했던 걸로 전해지는데, 배우자 문제 혹은 배우자와 연계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이슈에 비해 과민할 정도의 반응을 보이는 후보 개인의 성향이 반영된 결과로 추정된다.
레드팀 부재가 야기하는 집단 사고의 함정
윤석열 캠프 내에서 '배우자 이슈'가 회색 코뿔소가 된 건 어쩌면 캠프의 한 단면일 뿐이다. 윤 후보 캠프 내에는 후보에게 쓴소리를 하는 사람, 즉 레드팀이 없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쓴소리를 허용하지 않는 후보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겠지만, 분명한 건 캠프 내에 카나리아가 사라질수록 배우자 이슈를 포함한 여러 문제들은 더 큰 회색 코뿔소가 되어 더 가까이 다가올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