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윤 전 총장의 말하기는 문제될 게 없었다. 검사와 검찰총장이라는 권위적인 위치와 뭔가 상반되는 '다변'은 소탈함 내지 친숙함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고 친숙한 사람들 위주로 이루어진 사적 말하기에서 논란이 생길 일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공적 말하기는 취임사, 기념사 등 쌍방향이 아닌 일방적 말하기이다 보니 사전 준비와 내용 정제가 가능했다.
'다변가'와 '달변가' 평가 속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말하기
이에 대해 윤 전 총장 캠프 측은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드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 또는 "취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결과" 라는 입장이다. 윤 전 총장 스스로도 해명을 내놨다. "검사 시절에는 재판부와 조직 수뇌부, 같은 팀원 분들을 설득하는 것이 직업이었다. 정치는 조금 다른데, 처음 시작하다 보니 설명을 자세하게 예시를 들어 하다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것 아닌가 생각한다." 국민을 상대로 한 공적 말하기에 서툴러서 벌어진 일이라는 취지다.
"화법에서 생긴 오해"...인식에는 문제가 없다는 윤 전 총장 측
하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대구 민란' 발언은 대구 현장 방문 분위기 속에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마음, 즉 파토스에 집중해 오버하다가 나온 실언으로 이해할 측면도 있다. 그런데 다른 발언들은 분위기에 취해 나온 발언으로 보기는 어렵다. '후쿠시마 원전' 발언에 대해 윤석열 전 검찰총장 캠프 측은 인터뷰 내용이 축약되는 과정에서 발언의 취지가 훼손됐다는 입장이지만, 즉문즉답식 생중계 인터뷰가 아니라 충분한 시간이 제공되고 발화자에 몰입하는 사전 인터뷰에서 발언의 취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잇따른 설화, 화법이 아닌 인식의 노출 때문은 아닌가
이야기를 하면서 타인의 발언을 인용하거나 예시를 드는 건 보통 2가지 상황에서다. 우선 자신의 생각을 구체화하거나 강화하기 위한 사례로 제시하는 경우다. 말하는 사람이 인용하거나 예를 든 사례에 대해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경우는 자신의 주장을 선명화하기 위한 비판 사례로 제시하는 경우다. 이럴 경우에는 보통 해당 발언이나 사례에 대한 비판이 뒤따른다.
논란이 된 이후 윤 전 총장이 '타인 발언 인용'이라는 취지로 해명한 '주 120시간'이나 '페미니즘' 발언은 전후 맥락을 살펴봐도 인용한 발언에 대한 비판은 없었다. 윤 전 총장이 '타인 발언'에 동의했거나 상당한 관심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윤 전 총장의 마음에 꽂힌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많은 이야기 중 굳이 그 이야기를 꺼낼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논란이 된 윤 전 총장의 발언이 '여의도 문법'에 익숙지 않은 초보 정치인의 실수가 아닌 인식의 노출이 아닌지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저출산 대책에 대한 질문에 '페미니즘'을 꺼내든 이유는
그런데 저출산 대책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페미니즘이 이성 간의 건전해 교제를 막는다'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인용한 건 어떤 이유 때문일까. 윤 전 총장이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데, 질문 내용이나 답변의 맥락 전체를 살펴봐도 해당 발언을 인용한 이유나 취지가 잘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부정식품' 발언은 다른 측면에서 의아함을 자아낸다. '부정식품' 발언은 규제의 역설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될 여지도 있다. 굳이 민감한 식품 문제를 예로 들어 논란이 커지기는 했지만, '이자제한법이 저소득층을 불법 사채 시장으로 몰수도 있다'는 이야기처럼 규제가 항상 선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해석될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발언 그 자체보다 해명이 더 큰 의아함을 자아냈다.
'중도·진보' 외연 확장을 노린다면서 '밀턴 프리드먼'을 인용
단순한 추정이 아니다. 윤 전 총장이 공식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2019년 7월, 윤 전 총장의 취임사에 대해 대검찰청 대변인실은 설명 자료를 배포했다. ' 신임 총장은 특히 시카고학파인 밀턴 프리드먼과 오스트리아학파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사상에 깊이 공감하고 있고, 자유시장경제와 형사 법집행의 문제에 관해 고민해 왔다'고 밝혔다. 최근 윤 전 총장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반복적인 강조가 프리드먼과 미제스의 영향이라고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의아한 점은 윤 전 총장이 왜 밀턴 프리드먼의 이야기를 인용했냐는 점이다. 프리드먼이 누구인가. 자유지상주의자에 가깝다고 평가되며 보수 안에서도 상당히 오른쪽에 서 있는 인물이다. '기본소득'과 '경제민주화'를 당의 강령에 넣고 있는 국민의힘 보다 훨씬 보수적 경제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프리드먼이다. 그런데 윤 전 총장은 보수를 넘어 '중도와 진보를 아우르는 압도적 지지'를 얻겠다고 반복해서 이야기 해 오지 않았나. 그렇다면 실제 자신의 생각이 프리드먼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숨기는 것이 '중도와 탈진보'의 지지를 얻는 데 유리할텐데, 굳이 반복적으로 노출시킨 이유는 뭘까. 프리드먼은 무조건 옳다는 자신감의 표출일까, 아니면 정무적 판단의 실수일까.
가장 중요한 평가의 잣대가 될 수도 있는 윤석열의 공약
하지만, 최근 정권 교체 여론은 지속적인 하락세, 정권 재창출 여론은 지속적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아직 정체 교체 여론 비중이 상대적으로 더 높은 상황이긴 하지만, 최근의 흐름은 '반문' 깃발만으로는 지지를 확장하고 유지하는데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는 시점이 다가 오고 있음을 암시한다.
윤 전 총장은 반문을 넘어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전대미문의 코로나19는 큰 정부의 시대를 불렀다. 코로나19로 인한 양극화의 심화, 그리고 산업 구조 변화에 따른 일자리의 감소 등은 정부 역할의 필요성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밀턴 프리드먼에 크게 감화를 받았다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이런 시대의 변화와 조응할 수 있을까. 어쩌면 윤 전 총장의 앞으로 내놓을 윤 전 총장의 정책(공약), 즉 윤석열의 생각이 윤 전 총장에 대한 평가의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이 또 다른 설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