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대한체육회 산하 가맹단체 가운데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 포함되지 않는 종목이 많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대한민국에는 국가대표 선발규정이 37개보다 훨씬 많은 게 사실입니다.
정작 큰 문제는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규정 <제5조> 즉 결격사유를 명시한 조항을 언제부터 적용할 것인지가 경기 단체마다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박태환이 소속된 대한수영연맹 국가대표 선발규정을 보면 아래 사진처럼 돼 있습니다.
그런데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규정은 2014년 7월15일에 제정됐습니다. 박태환이 도핑테스트를 받은 날보다 앞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대한체육회 규정에 따르면 리우올림픽에 나갈 수 없게 됩니다. 쉽게 말해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규정과 대한수영연맹 국가대표 선발규정이 결격사유를 적용하는 시점이 달라 혼동이 생긴 것입니다.
박태환 측 법률 대리인도 바로 이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대한체육회 규정이 실제로 발효된 시점이 2015년 2월6일이기 때문에 박태환에게 <제5조6항>을 적용해 ‘이중처벌’을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순에 대해 대한체육회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해명했습니다.
“대한체육회가 국가대표 선발규정을 만든 뒤 각 경기단체에 공문을 보내 6개월 안에 각 단체의 특성에 맞는 국가대표 선발규정을 제정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대부분 대의원총회가 1월에 있다 보니 2015년 1월에 국가대표 선발규정을 만든 단체가 많이 있다. 대한체육회와 각 경기단체의 규정이 다를 경우 대한체육회가 상위 기관이기 때문에 당연히 체육회 규정에 따라야 한다. 그래서 박태환에게 결격사유 조항(제5조6항)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규정이 제정된 지 10일 만인 2014년 7월25일에 자체 선발규정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체육회 말과 달리 6개월이 지난 뒤에 선발규정을 만든 경기단체들도 꽤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한농구협회는 2015년 1월20일에, 대한수영연맹은 2015년 2월6일에 자체 국가대표 선발규정을 제정했습니다.
단순히 6개월을 넘겼다는 것보다 더 큰 논란은 경기단체마다 결격사유 적용 시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대한탁구협회 국가대표 선발규정은 2015년 1월19일에 제정됐습니다. 부칙 <제2조1항>을 보면 “제5조(결격사유)의 개정규정은 이 규정 시행 후 발생한 행위로 형벌 또는 징계를 받은 자부터 적용한다”고 돼 있습니다.
각 종목마다 국가대표가 될 수 없는, 즉 결격사유를 적용하는 시점이 다르다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입니다. 이에 대해 대한체육회는 “각 경기단체 규정은 효력이 없고 상급기관인 대한체육회 규정을 따라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만약 대한체육회의 주장이 맞는다면 최소한 36개 경기단체가 왜 이런 규정을 부칙에 넣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체육회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각 경기단체는 ‘쓸데없는 짓’을 한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한 점은 대한체육회가 1년이 넘도록 이 문제에 대해 그 어떤 시정 조치도 내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대한체육회를 관리 감독해야 할 문화체육관광부도 취재 결과 이런 사실 자체를 아예 모르고 있었습니다.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의 체육단체 통합에는 ‘감 놔라 배 놔라’하며 일일이 참견하고 간섭했던 문체부가 정작 규정 불일치에는 아무런 지식이나 정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스포츠는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종합 5위를 차지한 스포츠강국입니다. 경기력에서는 선진국이지만 체육행정에서는 낙제점을 면하기 어려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