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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암컷·수컷 성비(性比) 깨지는 거북, 이유는?

[취재파일] 암컷·수컷 성비(性比) 깨지는 거북, 이유는?
임신부가 따뜻한 남쪽에 살면 딸을 낳을 가능성이 크고, 추운 북쪽에 살면 아들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바다거북은 해안가 모래밭에 알을 낳는다. 작은 구덩이를 파고 알을 낳고 다시 모래로 덮는다. 알을 낳은 어미 거북은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올 때까지 알을 품어주는 것이 아니라 알만 낳아 놓고 그대로 바다로 돌아가 버린다. 새끼가 알을 깨고 나와 건강하게 바다로 돌아갈 것인지는 전적으로 주변 환경에 달려 있다.

어미가 얼마나 깊게 구덩이를 파 놓았는지, 알에 모래는 얼마나 덮어 줬는지, 모래 온도는 어느 정도인지, 알을 낳은 곳이 햇볕이 쨍쨍 내리 쬐는 곳인지 아니면 야자수 그늘 아래인지에 따라 새끼가 알에서 깨어나는 비율이 달라질 수 있다. 심지어 알에서 수컷이 많이 나올 것인지 아니면 암컷이 많이 나올 것인지 까지도 주변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실제로 지난 1980년대 바다거북(Green turtle) 보호 활동을 하던 과학자들은 아주 기이한 현상을 발견했다. 점점 사라져 가는 바다거북을 보호하기 위해 거북이 알을 낳아 놓은 백사장을 보호하기도 하고 부화장소를 만들어 부화를 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기이한 일이 생긴 것이다. 어떤 경우는 거의 모두 수컷만 나오고 어떤 경우는 거의 모두 암컷만 나오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사람을 비롯한 포유동물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성 염색체에 의해 성이 결정된다. 임신부가 사는 주변 환경에 따라 태아의 성이 결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거북의 경우는 물려받은 유전자에 의해 성이 결정되지 않는다. 주변 환경, 주로 부화 당시 주변 온도에 따라 성이 결정된다.
당시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보고된 연구 결과를 보면 부화장의 온도가 28℃ 미만일 때는 새끼 거북의 90%~100%가 수컷이었다. 반면에 부화장의 온도가 29.5℃를 넘어서는 상대적으로 고온인 경우는 태어난 새끼의 95%~100%가 암컷이었다(Morreale et al., 1982). 암컷과 수컷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간성(間性, intersex)이 태어나기도 했다. 특히 기온이 낮을 때 간성이 태어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더 높았다.

자연 생태계에서 어느 한 쪽 성으로 쏠림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결코 바람직스러운 일이 아니다. 성이 계속해서 한쪽으로 쏠릴 경우 결국은 자연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당시 점점 사라져 가는 바다거북을 살리기 위해 부화를 시킨 것은 어찌 보면 결코 자연 보호에 도움이 안 된 것이다.
어떻게 거북의 성비가 부화기 주변 온도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것일까? 어떤 유전자가 온도를 감지하는데 기여하고 또 어떤 유전자가 감지한 온도에 따라 수컷과 암컷으로 분화하도록 명령을 내리는 것일까? 오랜 궁금증이 최근에서야 조금이나마 풀렸다.

미국 노스다코타(North Dakota)대학교 연구팀이 ‘저온유도 RNA 결합 단백질(CIRBP, cold Inducible RNA binding protein)’이라는 유전자가 늑대거북(Snapping turtle)의 성을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부화기간 65일 가운데 초기에 거북의 배아가 온도에 아주 민감한 시기가 있는데 CIRBP 유전자가 이 기간에 외부온도를 감지하고 온도에 따라 배아가 수컷으로 분화할지 아니면 암컷으로 분화할지 결정을 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실제로 이번 연구에서 배아가 외부 온도에 민감한 시기 가운데 초기에 CIRBP 유전자가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특히 활성화된 CIRBP 유전자가 외부 온도변화를 감지하고 외부 온도를 신호로 바꿔 배아에서 난소(암컷) 또는 고환(수컷)이 발달하도록 명령을 내린다는 것을 밝혀냈다.

물론 연구팀이 찾아낸 유전자가 거북의 성 결정을 100% 좌우하는지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다른 유전자나 환경도 거북의 성 결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성이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진화론적인 측면에서 보면 종이 매우 취약하다고 볼 수 있다. 지구온난화처럼 일정 기간 지속적으로 따뜻한 해가 이어지거나 반대로 추운 해가 이어지면 성이 암컷 또는 수컷 한쪽으로 쏠림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환경변화에 의해 그만큼 멸종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물론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점점 올라가면서 성을 결정하는 유전자(CIRBP)에 변이가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특히 이 유전자의 역할이 좀 더 명확하게 규명된다면 늑대거북은 온난화로 기온이 올라가더라도 지구 상에 살아남을 가능성도 있다. 야생에서는 성비가 깨지더라도 인공적으로는 온도를 조절해 부화를 시킬 경우 최소한의 성비를 맞춰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바다거북이 기후변화에 적응하고 있다거나 새로운 변이 유전자가 발견됐다는 소식은 없다. 대신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올라가면서 성의 쏠림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미국 국립해양대기국(NOAA)과 야생생물보호국(USFWS) 연구팀이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푸른 바다거북(green sea turtle)의 성비를 조사한 결과 암컷이 수컷보다 3~4배나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Allen et al.,2015).

자연에서 태어나는 새끼 거북의 80% 정도가 암컷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지금보다 기온이 조금만 더 올라가면 거의 100% 암컷이 태어날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이다. 수 십 년 만에 찾아낸 유전자가 거북의 종을 보전하는데 기여할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급속하게 진행되는 지구온난화를 억제하지 않는 한 궁극적으로는 바다거북이 멸종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참고문헌>

* Morreale SJ, Ruiz GJ, Spotila JR, Standora EA, 1982: Temperature-dependent sex determination: current practices threaten conservation of sea turtles. Science, Vol. 216, Issue 4551, pp. 1245-1247, DOI: 10.1126/science.7079758
* A. L. Schroeder, K. J. Metzger, A. Miller, T. Rhen, 2016:  A Novel Candidate Gene for Temperature-Dependent Sex Determination in the Common Snapping Turtle. Genetics,  203 (1): 557 DOI: 10.1534/genetics.115.182840
* Camryn D. Allen, Michelle N. Robbins, Tomoharu Eguchi, David W. Owens, Anne B. Meylan, Peter A. Meylan, Nicholas M. Kellar, Jeffrey A. Schwenter, Hendrik H. Nollens, Robin A. LeRoux, Peter H. Dutton, Jeffrey A. Seminoff. 2015: First Assessment of the Sex Ratio for an East Pacific Green Sea Turtle Foraging Aggregation: Validation and Application of a Testosterone ELISA. PLOS ONE, DOI:10.1371/journal.pone.0138861       

(사진=게티이미지/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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