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총기 소지가 허용된 나라입니다. 경찰로서도 누가 총을 들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대놓고 등 뒤에 총을 쏜 경찰은 변명의 여지가 없겠습니다만, 종종 관련 외신 기사를 접하게 되면 기자인 저로서도 경찰의 과잉 대응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외신 기사를 접하고 관련 화면을 보면서 경찰의 과실이 어느 정도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 보도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뒤집어 얘기하자면 한국에서 보도되는 사례보다 실제 미국에서 용의자가 경찰 총에 맞는 경우가 더 많다고 보시면 됩니다.
기자는 경찰 총에 맞아 죽는 미국인이 얼마나 될까 궁금해졌습니다. 취재를 해보니 지난 한 해에만 623명이 경찰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반대로 경찰은 체포하거나 대치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목숨을 잃을까도 알아봤습니다. 지난 한해 134명이 법 집행과정에서 숨졌습니다. 인종적으로 흑인이 백인의 숫자보다 적지만 아무래도 총을 가지고 다니거나 총을 쏴대는 사례가 많은 것은 사실인 듯 합니다. 경찰이 흑인과 맞닥뜨릴 경우 과잉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반대로 이런 선입견 탓에 억울하게 죽음을 맞아야 하는 흑인도 생기게 됩니다.
미국 경찰은 범죄 용의자와 대치 상태에서 어떻게 대응할지를 훈련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일종의 시뮬레이션 훈련인데 FOS (Force Option Simulator )라 부릅니다. 이 훈련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그리고 기자로서 간접적으로나마 체포 현장에서 경찰의 입장이 된다면 어떻게 대응하게 될지 궁금해졌습니다. LA경찰국에 취재를 요청했고 두 주 만에 취재에 응하겠다는 답변이 왔습니다.
취재팀이 찾아간 곳은 LA 외곽에 있는 경찰 학교(Police Academy) 였습니다. 이름은 경찰 학교지만 경찰 후보생이 아닌 현역 경찰들이 훈련하는 곳입니다. 개축 공사가 한창인 곳에서 우리는 인솔 경관을 따라 FOS 훈련장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큼직한 방안 벽면에는 대형 스크린이 걸려 있고, 그 앞에 4개의 무기가 놓여 있습니다. 권총, 테이저 총, 최루액 분사기, 그리고 곤봉입니다. FOS 뜻 그대로 이 네 가지 무기 가운데 현장 상황에 맞게 한가지를 적절히 사용하는 것을 훈련하는 겁니다.
우선 경관의 훈련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훈련장 뒤쪽 단상 위에는 컴퓨터 시스템이 있고 그 안에는 수 백 가지의 가상 상황이 저장돼 있습니다. 훈련에 참여한 경관들은 실탄이 든 총을 내려놓고 이 네 가지 무기를 허리 춤에 찹니다. 그런 뒤에 가상 프로그램이 실행됩니다.
화면이 커지면서 안내 멘트가 나오는데 ‘가정 폭력 신고가 접수된 가정집’으로 출동하라는 명령이 나옵니다. 화면에서 문이 열리고 경관들이 손을 허리 춤에 찬 권총에 댄 채 서서히 접근합니다. “경찰입니다. 지금 들어갑니다. 안에 누구 있습니까?” 등 계속 말을 하면서 전진합니다. 그 순간 화면에서 남녀의 모습이 보이고 여성을 다그치던 남성이 경관을 바라보더니 격앙된 어투로 말을 합니다. 경관들이 계속 말을 걸면서 진정시키는데, 갑자기 화면 속 남성이 방 안으로 사라집니다. 경관이 ‘거기 꼼짝 말고 서 있으라’는 명령을 하는데도 남성이 사라지자, 경관들이 총을 꺼내 듭니다.
잠시 뒤 남성이 불쑥 방에서 튀어 나옵니다. 놀라서 총을 쏠 상황인데도 경관들은 총을 쏘지 않고 남성에게 계속 말을 겁니다. 그 순간 남성이 칼을 빼 들고는 달려드는데 경관들이 “칼 버려!”를 세 번 외치더니 총을 발사합니다. 남성은 그 자리에 고꾸라집니다. 상황이 끝나자 본부에 무전을 하고 총을 집어 넣습니다. 한 프로그램이 끝나자 뒤에 서 있던 교관이 왜 총을 쐈는지 등 10여 개의 질문을 속사포처럼 던집니다. 경관들은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총을 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을 설명합니다. 그 일문일답 과정이 끝나면서 한 프로그램에 대한 훈련이 종료됩니다.
상황을 지켜본 기자가 직접 해보겠노라고 했습니다. 훈련에 앞서 먼저 각 무기의 사용법부터 배웠습니다. 권총은 실제 권총과 똑같은 무게고 총을 발사하면 실제 권총과 똑같이 반동이 손에 전달됩니다. 교관은 기자에게 상황에 맞춰 4개의 무기를 써야 하며 무기를 쓰기 전에 반드시 상대방에게 경고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권총 노리쇠 부분이 움직이기 때문에 왼손 엄지 손가락이 닿으면 크게 다칠 수 있다는 점도 주지시켰습니다.
프로그램이 가동됐습니다. 은행에 무장 강도가 침입했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가상 상황입니다. 화면에 은행이 나타나고 한 남성이 뛰어나옵니다. 기자가 “꼼짝 마!”를 외쳤지만 계속 달아나던 남성이 갑자기 뒤돌아 서는데 손에 총이 들려 있었습니다. “꼼짝 마!”를 외침과 동시에 기자가 방아쇠를 당겼고 남성은 쓰러졌습니다. 강도보다 기자가 먼저 총을 쏴 저지했지만 멀리 승용차에 숨어있던 공범이 기자에게 총을 쐈고 기자는 총에 맞고 말았습니다. 기자는 현장에서 순직(?)한 겁니다.
그러자 남성은 목청을 높였고 오른 손을 계속 허리 춤에서 떼지 않았습니다. “손 들어!”라는 명령을 세 번 하는 순간 남성이 총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제 총에서 총성이 두 번 울렸고 남성은 뒤로 쓰러졌습니다. 상황이 종료됐다고 느끼는 순간 갑자기 화면 오른쪽에서 한 남성이 오른 손에 시커먼 물체를 든 채 기자에게 거칠게 소리치며 다가왔습니다. 기자가 곧바로 ‘꼼짝 마’라는 외침과 함께 총을 발사했습니다. 하지만 총을 쏘는 순간 기자는 뭔가 잘못됐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남성이 손에 들고 있던 것은 총이 아닌 휴대전화였던 겁니다. 무고한 시민을 사살한 겁니다.
이 두 프로그램을 거치면서 기자는 심장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대치 상황이 되자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시야가 좁아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기자는 교관에게 다시 한번 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교관이 ‘Sure! (물론이죠)’라면서 다시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살인 사건 신고를 받고 가정집에 들어가는 장면이 화면에 펼쳐졌습니다.
기자가 “LA 경찰입니다. 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라고 외친 뒤 거실로 들어가는데 소파에 여성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습니다. 또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주방 쪽으로 들어서는 순간, 한 남성이 울부짖으며 나타났습니다. 손에는 초록색 플라스틱 상자 (맥주를 여러 병 담는 상자 모양)를 들고 있었습니다. 자신은 여성이 죽은 것과 무관하다면서 울부짖었고 점점 격앙되는 모습이었습니다.
기자가 “진정하세요! 손에 든 상자를 내려놓으세요”라고 외쳤지만 남성은 계속 들고서 허공에 휘둘렀습니다. 기자는 총을 겨눈 채 ‘움직이지 말라’고 외쳤지만 남성의 거친 행동은 계속됐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 화면이 종료됐습니다. 아주 긴박한 상황에서 끝까지 총을 쏘지는 않았기에 잘했다고 판단했는데 교관은 기자가 잘못 대응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 남성이 경관의 명령을 여러 차례 듣고도 흉기가 될 수 있는 상자를 휘두르면서 끝까지 저항했던 만큼 최루액을 발사하든지 테이저 총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자는 잔뜩 긴장만 한 채 총을 쏠 것인가 말 것인가만 판단하려 했지 그 순간 다른 무기로 대응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깜빡 잊었던 겁니다.
최근 미국의 한 경찰이 흉기를 들고 덤벼드는 정신이상자와 대치하면서 총을 끝까지 발사하지 않았던 사례가 뉴스로 다뤄진 적이 있었습니다. 경찰의 과잉 대응이 사회적 이슈가 된 가운데, 이 경관은 뒤로 넘어질 때까지도 끝까지 총을 쏘지 않았고 정신이상자는 결국 흉기를 휘두르지 않고 뒤돌아 섰습니다. 이 경관은 자기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상황을 막아냈던 겁니다.
가상 훈련을 체험한 기자로서는 1초의 판단으로 자기의 생명이나 아니면 다른 사람의 생명이 엇갈릴 수 있는 상황에서 침착하게 행동한 이 경관에게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불어, 기자로서 미국 경찰의 총기 사용으로 인한 사망 사건이 일어날 때 더욱 신중하게 사실 관계를 파악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 점도 이번 훈련 경험이 가져다 준 교훈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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