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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정원, '경력판사'만 비밀면접…왜?

[취재파일] 국정원, '경력판사'만 비밀면접…왜?
국가정보원이 경력 판사 지원자들에 대해 '신원조사'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비밀면접을 해 온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해에는 세월호 참사에 관한 의견이나 노조사건과 관련한 지원자의 SNS 활동까지 추궁한 것으로 알려져 국정원이 사실상 지원자들에 대한 사상 검증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습니다.

문제가 불거지자 대법원은 신원조사는 보안업무 규정이나 대법원 규칙 등에 의거해 대법원의 요청으로 국정원이 수행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대법원은 또, 경력 판사 임용 과정뿐만 아니라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바로 판사로 임용되는 경우에도 국정원에 신원조사를 의뢰했다고 밝혔습니다.

● 국정원, 경력 판사만 비밀 면접…연수원 수료 후 즉시 판사 임용자는 안 해

그런데 면접 형태로 진행된 국정원의 대면 접촉은 경력 판사 지원자들만 대상으로 이뤄졌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같은 해에 임용되더라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바로 판사로 임용된 사람들은 면접을 하지 않고, 변호사나 검사로 활동을 하다가 판사가 되려는 사람들만 국정원 직원이 직접 접촉해 면접을 진행해 왔던 겁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재산사항이나 민감한 사항 등 개인정보 보호차원에서 지원자들을 직접 접촉하기는 한다면서도, 왜 경력 판사 지원자들만 대면접촉 형태의 신원조사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국정원과 대법원이 보안업무규정을 신원조사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경력 판사들만 면접형태의 신원조사를 했다는 점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우선, 보안업무규정은 국가관 등의 확인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검사로 활동했던 사람들도 면접을 보면서 아무런 사회 경험 없이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판사가 되는 경우가 다수인 즉시 임용 판사들은 면접 대상에서 제외한 점에서 그렇습니다. 국정원의 논리 대로라면 오히려 면접을 통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한 사람을 건너뛴 셈입니다.

또, 판사로 임용되는 숫자 면에서 즉시 임용 판사가 경력 판사보다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도 국정원의 행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단순 숫자만 생각하더라도 이적성이 있는 사람이 즉시 임용 판사 쪽에 있을 개연성이 훨씬 크지만, 그보다 훨씬 숫자가 적은 경력판사들만 대면 면접을 한 점에서 그렇습니다. 단순히 즉시 임용판사의 숫자가 많아서 대면 면접을 하지 않았다면 국정원이 업무를 소홀히 한 것이라는 뜻일 텐데, 국정원이 보안업무 규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그럴 가능성을 낮아 보입니다. 

● 왜 경력 판사만 비밀면접 했을까?
그래픽_국정원경력판
그렇다면 왜 국정원은 경력 판사 지원자들만 대상으로 비밀면접을 진행한 것일까? 그리고 왜 사상 검증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질문까지 했던 것일까?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것이 사법부의 폐쇄성과 보수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조일원화는 사실 법원이 반대해 온 제도"라며, "변호사 출신 등이 판사로 들어오면 법원의 위계 구조가 깨어지고, 논란이 되었던 소위 '튀는 판결'처럼 기존과 다른 방향의 판결을 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법원 내부에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법조계 인사는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바로 임용된 판사들은 첫 사회생활을 법원에서 시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법원의 조직 문화 등을 체화하는데 반해 다른 곳에서 사회 경험을 쌓은 경력 판사들의 경우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며, "보수적인 법원의 분위기를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을 걸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국정원의 면접이 활용됐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국정원이 사법부에 영향을 행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대면접촉 형태의 신원조사를 활용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특히, 경력 판사 제도가 앞으로 판사를 선발하는 유일한 방법이 되는 것이 예견된 상황에서 국정원이 사법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경력 판사 지원자들에 대한 면접을 통해 사법부에 암시한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현재로서는 국정원이 왜 경력 판사 지원자들만 대상으로 비밀면접을 진행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신원 조사 방식과 관련해 자신들의 고유권한이라는 국정원과 간섭할 영역이 아니라는 대법원의 입장에 근거해 국정원이 대면 접촉이라는 방식과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의견 등의 질문을 스스로 결정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을 뿐입니다.

다만, 국정원이 경력 판사 지원자들을 대면 접촉하고 있는 것을 대법원이 이미 알고 있었고, ( ▶[취재파일] 대법원, 국정원 '비밀면접' 항의 받고도 은폐 의혹)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사상 검증과 같은 질문들이 나왔던 점에 미뤄 사법부가 최소한 국정원의 경력 판사 지원자들에 대한 면접을 용인한 게 아니냐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실제로 국정원 면접을 용인했다면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그 이유는 앞서 소개한 주장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다음은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난 2011년 12월, 경력법관임용식에서 한 말입니다.

"법관은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여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양심의 의미를 여러분은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재판 규범으로서의 양심은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양심이 아니라 보편적인 규범의식에 기초한 법관으로서의 직업적이고 객관적인 양심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건전한 상식에 기초한 보편타당한 것이어야 하고, 다른 법관과도 공유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가치관에 근거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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