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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공개·공정·공평과 공갈 그리고 공멸'…새정치연합에 닥친 '5공 시대'

[취재파일] '공개·공정·공평과 공갈 그리고 공멸'…새정치연합에 닥친 '5공 시대'
정청래 최고위원은 평소에도 언어 유희를 상당히 즐겨한다. 2월 전당대회에서 당당하게 2등으로 지도부 입성에 성공할 때도 정 최고위원의 일성은 '당 대포'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당 대표'는 다른 사람이 하고 자신은 '당 대포'로서 여권을 강하게 공격하는 공격수가 되겠다는 표현이었다. '지도부에 저런 사람 하나는 있어야지' 하는 분위기 속에 최고위원에 입성했다.

정 최고위원은 박근혜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듯한 '바뀐애' 같은 표현을 비롯해 박정희·이승만 전 대통령 묘역 참배를 히틀러 참배에 비유한 적도 있다. 막말 논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정 최고위원은 평소에도 자신의 그런 언어적 능력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SNS로 소통을 즐겨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촌철살인의 짧은 말로 상대를 공격하고 상황을 정리하는 것은 지지자들 사이에서 '속시원하다, 기발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자신만의 특별한 정치적 지평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 같다.

자신뿐 아니라 문재인 대표 체제의 최대 위기를 자초한 막말 논란도 바로 그런 순발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것이다.  비노계 주승용 최고위원에게 '공갈'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최고위원 자격정지 수준에 해당하는 '최고위원회의 참석 정지' 처분을 받았고 당 윤리심판원에 제소까지 된 상태다. 이번 주 1차 심사 결과가 나온다. 소명 기회가 있긴 하지만 1차 결론이 어떻게 나올지에 큰 관심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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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갈이라는 표현이 나온 과정은 이렇다. 그동안 재보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도부가 져야 한다고 밝혀 왔던 주승용 최고위원이 이른바 '3공 정신'을 들고 나왔다. 현재 당 운영이 '비공개, 불공평, 불공정'으로 운영돼 온 것이 문제라며 '공개, 공평, 공정의 3공 정신'이 있다면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을 했다. 이를 듣던 '2등 최고위원' 정청래 최고위원이 마이크를 받자마자 응수를 시작했다. 공개 공정 공평도 좋지만 최고위원 사퇴하지도 않을 거면서 사퇴한다고 공갈치는 것도 더 문제라고 맞받았다. 공이라는 앞글자의 운을 맞춰 표현한 것이다.

전국의 언론들이 보는 가운데 같은 당 최고위원의 발언을 '공갈'이라고 일갈해 버린 셈이다. 주승용 최고위원은 곧바로 사퇴를 공식 선언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가버렸다. 그리고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주 최고위원의 뒤를 따라가다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던 문재인 대표의 표정은 참혹했다. 그리고 이어진 최고위원회의에서 유승희 최고위원이 준비해 온 '봄날은 간다'의 한 소절을 열창하면서 '봉숭아 학당'으로까지 불린 그날 최고위원회의의 정점을 찍게 된다.

정 최고위원이 실제로 징계를 받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당 최고위원을 윤리위원회 (현 윤리심판원)가 징계한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최고위원에게 닥친 위기는 만만치 않다. 현재 당내 분위기로 보면 출당까지 거론하며 중징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상당히 높은데다 재보선 참패 이후 책임론이 거세게 일고 있는 상황에서 정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가 낮은 수위에서 끝날 경우 또다시 솜방망이 처벌, 봐주기 논란이 거세게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정 최고위원이 중징계를 받는다면 그것은 내년 총선 출마가 상당히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정치연합 당규 공직선거후보자추천규정에 따르면 공직선거 후보자의 부적격 심사 기준 가운데 2호에 징계 경력 보유자 조항이 있다. 제명과 당원자격정지를 받은 경우 공천 대상자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부적격기준에 해당하더라도 후보자검증위원회의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예외를 인정할 수는 있지만 총선을 앞두고 중징계를 받은 정 최고위원에게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정 최고위원을 구제할 경우 정 최고위원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세력과 언론이 총선을 앞두고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총선에서 이른바 '김용민 막말 사태'의 후폭풍을 겪었던 새정치연합의 입장에선 막말 논란으로 표심에 영향을 받는 선택을 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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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실제로 정 최고위원에 대한 중징계가 내려질 경우 친노 486을 중심으로 너무한 것 아니냐는 반발이 나올 수도 있다. 윤리심판원 결과에 따라 내홍이 깊어지고 있는 새정치연합에 또다른 분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이유다.

문재인 호위무사를 자청했지만 결국 정 최고위원의 발언은 문재인 대표를 끝없는 미로속에 가두고 말았다. 재보선 참패 이후 그 책임론을 지라는 비주류의 요구에 대책없이 당하고 있는 문 대표는 사태 해결은 커녕 점점 더 깊어지는 늪과 같은 리더십 실종 사태에 빠져들고 있다. 그리고 그 결정적 계기는 공갈 발언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소통의 중요성을 얘기하지만 SNS 식 말의 정치가 진정한 소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당내 갈등, 내홍이라는 기사가 끊이지 않는 새정치연합에선 당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그야 말로 공개, 공정, 공평을 말하지만 결국 공갈이라는 말과 공멸의 위기감만 남은 바야흐로 '5공 시대'라 할 수 있다. 이러다간 총선은 물론 대선에서도 다시 패배할지 모른다는 '공포'까지 더하면 '6공 시대'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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