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꽤 자주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소비자원에 접수된 신고 건수를 보면 지난 2010년부터 최근까지 샤워부스 유리가 깨진 경우는 59건인데요, 이 가운데 절반인 30건의 경우 손도 대지 않았고 아무런 충격도 가하지 않았는데 유리가 저절로 깨졌다고 합니다. 깨진 유리에 사람이 다친 경우도 24건이나 됐는데요,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알고보니 문제는 '강화유리'에 있었습니다.
유리는 크게 3가지로 나뉩니다. 일반유리와 강화유리, 그리고 접합유리입니다. 일반유리는 말그대로 규석에 열을 가해 녹여 만든 '그냥' 유리입니다. 접합유리는 필름을 사이에 끼고 일반유리 두 장을 겹쳐 만드는 것이고, 강화유리는 일반유리에 다시 열을 가해 만드는 특수유리입니다.
앞서 잠깐 말씀드렸듯이 강화유리는 일반유리에 7백도의 고열을 가한 뒤 급속냉각시켜 만듭니다. 대장간에서 하는 담금질과 비슷한 과정을 통해 단단하게 만드는 거죠. 그런데 이 경우 유리 외부는 빠르게 식으며 단단해지지만, 내부는 사정이 다를 수 있습니다. 고열에 내부에 있던 황화니켈 입자의 부피가 팽창하게 되는데, 급속냉각 과정에서 유리 외부만 먼저 식고, 내부는 천천히 식게 되면서 늘어난 부피가 다시 줄어들지 않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부피가 팽창한 황화니켈 입자는 유리에 균열을 만들게 되고, 결국은 유리를 깨지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는 거죠. 일반유리보다 단단하게 만드려고 한 담금질이 아이러니컬하게도 오히려 강화유리를 내부에서 망가뜨릴 수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일반유리나 접합유리는 어떨까요?
이 유리들은 고열처리 과정이 없기 때문에 황화니켈 부피가 팽창할 우려가 없습니다. 특히 접합유리는 두 유리 사이에 필름이 껴 있고, 이 필름이 스티커와 비슷한 원리로 양쪽의 유리에 붙어 있기 때문에 2중의 안전장치가 됩니다. 만약 강한 충격에 접합유리가 깨지더라도 필름이 유리를 붙잡아주면서 파편은 거의 튀지 않게 됩니다. 상대적으로 덜 위험한 거죠.
하지만 강화유리는 정반대입니다. 필름없이 유리의 장력만으로 강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이를 넘어서는 충격이 전해질 경우 반작용으로 산산조각이 나 파편이 사방으로 튀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샤워부스 강화유리를 너무 믿으셔도 안되겠습니다. 말씀드렸듯이 근본적으로 제작과정에 결함이 있으니까요. 가능하다면 샤워부스는 접합유리로 제작하는 게 좋고, 여의치 않다면 강화유리에 필름을 바르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 경우 단가는 조금 더 나가게 됩니다. 접합유리 가격이 강화유리에 1.5배 정도 비쌉니다. 그래도 유비무환이라는 말처럼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이번에 취재하면서 실제로 강화유리 파손으로 다친 어린 여자아이를 만나 잠깐 당시 얘기를 들었는데 아찔하더군요. 저희 집 화장실도 바로 그 '강화유리 샤워부스'인지라, 저부터 그냥 마음놓고 있을 일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